기사보기

Magazine

[464호 2016년 1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육아휴직 가는 후배에게 했던 말

전경하 서울신문 경제정책부 차장, 본지 논설위원


육아휴직 가는 후배에게 했던 말


전경하(독어교육87-91) 서울신문 경제정책부 차장, 본지 논설위원



아이가 참 귀하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 되면서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각종 병폐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래서인지 최근 몇 년 사이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12개월을 붙여 15개월을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가끔은 여기에 안 쓴 연월차도 붙인다. 나는 이렇게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여자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네가 15개월을 다 쉬고 와도 상관없다. 공연히 좀 일찍 나오겠다는 생각으로 12개월 해놓고는 출근날 앞두고 며칠 전에 전화해서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못 나오겠다고 하지마라.”


참 모진 소리다. 내가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쌍동아들을 둔 워킹맘이어서 그럴 거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여자가 더 모질게 군다고들 하기도 한다. 글쎄 난 그런 서운한 소리를 할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싫은 소리를 해야 할 상황에 놓여서도 행여 성차별적 발언으로 보일까 입을 다무는 관리자들을 종종 봐서다. 성차별이 아니라 ‘행동규범(code of conduct)’이기 때문이다.


직원의 육아휴직은 권리이지만 직원들에게는 직장에 충실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 회사에서 직원을 직원 이전에 육아휴직 가능자로 보지는 않는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말이 일하다가 분명한 이유 없이 갑자기 집으로 가도 된다는 소리는 아니지 않는가. 또 직원은 동료들을 배려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직장 내 어린이집은 때로는 조직에 말 못할 고민을 주기도 한다. 직장 내 어린이집이 있어 가끔 가서 아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심이 된다고는 하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30분 이상 사라지는 동료가 황당할 수 있다. 실제 그런 고충을 털어놓는 관리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이런 사례들이 모여 나중에 신입사원을 뽑을 때 여성에게 부당함이 가해지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그런 여자 선배를 보고 함께 일한 후배 여성들이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을 할까 고민스럽다. 그 후배 여성이 관리자가 되어 함께 일할 동료로 여성을 배척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남성도 분명히 육아휴직을 해서 아이를 돌볼 권리가 있음에도 이런 분위기에서 아이는 여성이 돌보는 거라고 편견을 더욱 굳히지 않을까.


직장 내 배려가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에서 걱정을 앞질러 하고 있다고들 할 거다. 하지만 육아휴직이 늘고 있는 이즈음 인사 정책, 정부 지원 등을 처음부터 되짚어 봐야 한다. 육아휴직 2년이 보편화된 시중은행의 경우 가임 여성 직원의 10%가 육아휴직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인력을 운용한다. 일반 기업에서까지 이럴 수는 없지 않는가. 10%까지는 아니어도 약간의 가용인력을 두는 것은 기업으로서 부담이다. 정부부처는 대체인력뱅크를 이용한 한시임기제공무원제도가 있다. 기업별로는 힘들어도 대기업집단 정도에서 이같은 제도를 운영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련 제도를 개발해주거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법도 있을 거다.


육아휴직 간 직원을 위해 내야 하는 건강보험료도 문제다. 직원이 육아휴직을 갈 경우 회사 몫의 국민연금과 고용보험료는 내지 않지만 건강보험료는 해당 직원이 국내에 있는 한 내야 한다. 육아휴직 당사자는 복직할 경우 나중에 몰아서 낸다. 이 건강보험료의 일부나마 정부가 내주면 어떨까. 이왕이면 남자 육아휴직의 경우 기업의 부담을 더 덜어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성차별적이라고? 아직은 남자가 여자들보다 더 번다. 그런데 육아휴직은 덜 간다. 성차별적인 대책은 성차별적인 상황을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은 돈이 최근 10년간 100조원이라고들 한다. 정부가 예산을 짤 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제로베이스 검토.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점검한다는 뜻이다. 저출산 예산, 제대로 쓰였는지 원점에서 검토하고 다시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