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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호 2016년 10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현실에 발 디딘 학문이 중요한 이유

김광덕 미주한국일보 서울 뉴스본부장·본지 논설위원


현실에 발 디딘 학문이 중요한 이유

김광덕(정치82-86) 미주한국일보 서울 뉴스본부장·본지 논설위원





사회 엘리트 집단 앞장서는 서울대인의 공부는 

 ‘현실에서 출세하기’도 ‘현실과 거리 두기’도 아닌

 현실에 발 디디고 미래 위한 처방 내놓는 것이어야 






“누가 조국의 가는 길을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1971년 서울대 관악캠퍼스 기공식 날 정희성(국문64-68·당시 국문4) 시인이 낭송한 시의 한 구절이다. 조국의 미래가 서울대인들의 머리와 가슴, 어깨에 달렸다는 메시지다.  이에 대해 명문대를 과시하려는 발상이란 비판의 소리도 있다. 이 글의 의미는 서울대인들의 책임·소명 의식과 다짐으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서울대인들은 과연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같은 각오대로 책임을 다하고 있을까? 서울대 출신들은 각계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양적으론 우리 사회 엘리트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과연 질적으로 제대로 일하고 있느냐에 대해선 엇갈린 시각이 존재한다.


가령 신문과 방송 등 언론에는 각계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언론에 노출된 교수들 중에 서울대 교수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실제로 언론에서 서울대 교수들에게 현안에 대한 코멘트나 칼럼 작성 등을 요청하면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이런 이유를 거론한다. “신문에 코멘트를 하거나 칼럼을 쓰게 되면 선배·동료 교수들로부터 ‘연구는 제대로 안 하고 언론 플레이만 좋아한다’는 비판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연구와 강의 등 교수의 본분을 다하지 않으면서 언론이나 정치권, 관변을 기웃거린다면 문제가 있다.


하지만 속세와의 거리 두기가 현실과의 괴리로 이어져 학문의 현실 적합성이 떨어지는 결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순수 학문, 실용 학문 구분 없이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모두 현실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현실 적합성을 지녀야 한다. 서울대의 정치학, 경제학, 행정학 등 사회과학이 과연 한국 사회를 얼마나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가령 경제학자들은 우리 사회 저성장·저고용의 근본적 요인과 해법이 무엇인지 제대로 내놓고 있을까? 또 자연과학·공학 분야에서는 ‘논문을 위한 논문’을 쓰는 데 머물지 말고 산업·과학기술 발전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대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쨌든 현실 적합성이 떨어진 대학 강의 - 화석화된 지식 위주의 고시 공부를 거친 엘리트들이 한국의 관료 사회를 이끌어가다 보니 세월호 참사, 경주 지진 등의 위기 상황에서 역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란 아픈 지적도 있는 게 사실이다.


8년 전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였던 필자는 언론인 해외 연수의 일환으로 미국 듀크대학 정치학과에서 강의를 들었다. 그 중 하나가 ‘선거운동과 선거’(Campaigns and Elections)란 과목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선거 다큐멘터리 영화를  관람했다.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빌 클린턴 등 미국 역대 대통령의 선거운동 과정을 인물별로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학생들은 영화를 1시간 이상 보고 나서 다음 강의 시간 초반에 이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곤 했다. 이 강의는 정치부 기자의 취재에 큰 도움을 줬다. 그런데 한국 주요 대학들의 정치학 강의가 과연 실전에 얼마나 보탬이 되느냐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많은 게 사실이다.


서울대의 공부 방향은 ‘현실에서 출세하기’나 ‘현실과의 거리 두기’에 그쳐선 안 된다. 현실에 발을 디디고 미래를 위한 처방을 내놓는 ‘관악’의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