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62호 2016년 9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김규원 약대 교수 칼럼

항생제 개발 세분화에 과학 단절 산재된 지식 통합하는 관점 필요
뇌의 문제가 장기에 있을 수 있다


김규원

(제약72-78)

모교 약학과 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인체는 100조개의 미생물로 구성
서로 서로 연결된 복잡한 생태계

항생제 개발 세분화에 과학 단절
산재된 지식 통합하는 관점 필요

우리는 현재 일상적으로 많은 약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약들의 종류와 양은 불과 1세기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빈약하여 지금 수준으로는 약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천연 물질상태였으며, 그 종류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불과 1세기 동안에, 폭발적으로 증가된 약의 종류와 다양함을 감안하면 아주 짧은 시기에 약은 크나큰 발전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단기간에 이런 획기적인 발전이 가능하였을까? 그것은 당연히 현대과학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약과 과학의 발전과는 어떤 상호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앞으로 미래 약에 걸맞는 새로운 과학이 어떻게 탄생할지를 예측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의 약 중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항생제를 예로 들어 약의 진화와 새로운 과학의 탄생을 예상해 보자.

1860~80년대에 현미경을 이용한 세균학, 미생물학이 발전하기 시작하여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균들이 발견되었고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이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 후 곰팡이 종류인 방선균으로부터 항생제들을 분리, 정제할 수 있는 천연물화학, 분석화학의 과학적 기술들이 발전하면서 1943년 왁스만에 의해 결핵균 치료제인 스트렙토마이신이 발견되었고 항생제들의 화학구조가 규명되었다. 그리고 소량의 천연항생제들이 미생물 배양기술과 합성화학, 그리고 약품제조화학이 발전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화학기술에 힘입어 항생제의 전합성과 반합성, 그리고 유도체 합성이 제약회사를 중심으로 눈부시게 발전하여 효능이 증가하고, 부작용을 감소시킨 새로운 유도체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었다. 이시기가 1940~1960년대로서 항생제 개발의 황금시기라 불리운다. 그러나 1970년 이후부터는 새로운 항생제의 발견은 급속히 감소하고, 그대신 항생제 사용범위가 주사용, 경구용뿐만 아니라 피부연고 등으로 다양화되는데, 이것은 약품물리학, 약제학 분야의 발전과 맞물려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개발된 항생제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세탈로스포린계 항생제의 진화과정을 살펴보면, 1953년 곰팡이의 일종인 Cephalosporium균에서 세팔로스포린 C가 분리되고 1959년 그 구조가 결정이 된 후 1960년대 제 1세대 세팔로스포린을 거쳐, 1970년대 제 2세대, 1980년대 제 3세대, 1990년대 제 4세대,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 제 5세대로 진화가 되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항생제가 만들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 항생제에 대한 내성균들의 출현 때문이다. 이러한 항생제 내성균의 출현은 그 빈도가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여러 종류의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다제내성 병원균에 의한 감염 질환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가장 시급히 추진되고 있는 대비책은 내성균에 항균효능을 가진 새로운 항생제의 개발이며, 이에 대한 다각도의 시도가 관련된 과학기술분야에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책은 항생제에 의한 내성균의 출현-새로운 항생제의 개발-또 다른 내성균의 등장과 같이 악순환의 고리를 계속 연장시키는 상황이 될지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항생제와 관련된 전혀 다른 측면, 즉 인간과 미생물과의 상호관련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몸은 약 10조개의 세포와 그 10배에 해당하는 100조개의 미생물로 이루어진 생명체로서, 피부에서부터 장내까지 수많은 세균과 곰팡이 등의 미생물들이 우리 몸의 세포들과 서로 정보를 주고 받으며 공생하고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항생제들은 병원균 뿐만 아니라 우리 몸 속 내장의 세균에도 항균작용을 나타내게 된다. 그러면 장내 유산균 등 유익균의 생존에 항생제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장내미생물 생태계의 교란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건강상 여러문제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장내미생물과 관련된 질병은 크론병 등 염증질환, 알러지 등 면역질환으로부터 아토피 등 피부질환, 비만, 그리고 우울증, 자폐증 등의 정신질환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이에 대해 스탠퍼드 의대의 소넨버그박사는 ‘건강한 장이 사람을 살린다’라는 책에서 장내미생물의 중요성을 역설하였고, 최근 미국을 비롯한 과학 선진국에서 유전체 염기서열기술을 활용한 장세균게놈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다양한 세균들이 우리 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우리 몸의 세포들과 공생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앞으로의 항생제 개발과 또 이를 실현시킬 과학기술은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항생제 개발 관련 과학기술은 극히 세분화된 특정 항생제를 목표로 하고, 이를 확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과학 영역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과 정보, 기술들은 세분화된 목표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들이기 때문에 서로 넓은 간격을 두고 분리된 상태이다. 앞으로는 이를 연결, 통합하여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관점의 새로운 과학 기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즉, 인간 유전체 정보와 장내 미생물 유전체 정보, 그리고 항생제들의 효능과 부작용, 독성에 관한 정보, 환자들의 임상정보, 항생제 내성균에 대한 정보 등 수많은 분리되고 산재된 정보들과 지식들을 종합하여 앞으로 항생제와 세균,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고와 이에 따른 과학기술의 창안이 필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소넨버그가 그의 책에서 뇌질환이 장내 미생물과 관련있다는 ‘뇌-장관’ 축을 제시하면서, 충격을 받은 듯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어디가 아플 때 꼭 그 장기에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버릴 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뇌 문제의 뿌리가 때로는 장에 있을 수 있다. 인체는 하나의 복잡한 생태계이고 모든 것이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현대과학이 불과 수 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인체 내 장기간 상호작용, 이는 우리 동양인들은 이미 오래전에 익숙하게 알고 있던 바가 아닌가. 인체 내 장기 뿐만 아니라, 더 넓은 범위의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항생제에 대한 개념의 변화와 새로운 과학의 탄생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