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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호 2016년 8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나경원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 특별위원장 칼럼

저출산 대책, 애국심에 호소한다고 되나
저출산 대책, 애국심에 호소한다고 되나

나경원(사법82-86)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 특별위원장 본회 부회장


“출산휴가 60일 다 쓰면 안되는 것 알고 있죠?” 


내가 판사로 임관하던 날, 대법관이 건넨 첫 마디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내색도 못한 채 가슴 철렁했던 그때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관련 제도와 문화가 많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여성들에게 출산과 육아는 참 어려운 일로 남아있는 것 같다. 

그간 저출산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 2005년부터 5년 단위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대책’을 수립하여 발표해오고 있으며, 대통령 직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국회도 17대부터 이번 20대 국회까지 거의 매번 특별위원회를 출범함으로써 해법 찾기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되어 그간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과연 이것이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서는 ‘인구절벽’의 위기를 코앞에 둔 국가의 대책인가 안타까움을 넘어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출산, 보육, 교육부터 일자리, 주거 등 모두가 저마다의 해법을 내놓고 있지만 허울뿐인 정책과 허수 가득한 예산 투성이였다. 이제라도 말뿐이 아닌 실질적인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그간의 논리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접근부터 새롭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다음의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컨트롤타워의 신설이다. 주관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컨트롤타워라고는 하지만, 관계부처(청)만 20개에 달하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부처 내 담당 과에서 전담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각 부처가 ‘저출산 고령화’ 대책이라며 제출한 정책을 취합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기획재정부의 동의 없이는 예산 확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정책 및 예산집행에 있어서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10년간 약 110조원의 예산을 저출산 고령화 대책 마련에 투입했다지만, 여기에는 ‘CCTV 설치’, ‘템플스테이 활성화’ 등 저출산 고령화 문제 해결에 직접 연관이 없는 정책과 예산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올해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따라 신규 투입한다는 ‘향후 5년간 예산 약 198조원’의 세부내용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청년들이 일하기 좋은 중소기업 여건 조성사업(1조6,800억원)’, ‘보육인력 처우개선(2조4,286억원)’, 직업능력개발지원 인프라 확충(6조3,545억원)’ 등 각 부처에서 기 추진 중인 주요 정책 사업들을 억지로 끼워 넣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껍데기뿐인 정책, 주먹구구식 예산집행에서 벗어나 실효성 있는 정책에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권한과 책임을 가진 컨트롤타워를 신설하여 실질적인 정책을 주도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우리보다 앞서 저출산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일본이 ‘1억 총활약’ 담당상까지 신설해가며 국가차원의 대책마련에 앞장서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둘째, ‘저출산 기금’을 설치, 운영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저출산대책(출산장려정책)’이라 함은 보육, 일·가정 양립 등 직접적으로 가족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가족정책’과 고용, 주택 등 간접적으로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한 ‘사회정책’으로 구분된다. 물론 두 가지 정책이 유기적으로 동시에 발전해나가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초기 가시적인 효과 도출을 위해서는 당사자인 가족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가는 가족정책이 내실있게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가족지출비율(전체 GDP에서 가족정책에 투입된 예산)’이 현저하게 낮다.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국가들의 가족지출비율이 영국 4.26%, 프랑스 3.61% 수준인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1.16%에 불과해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마저도 서비스지원 및 조세혜택에 편중되어 있을 뿐 현금지원은 0.05%로 거의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출산지원금, 다자녀 지원금 등의 현금지원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다보니 지원규모조차 지자체 재정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인 실정이다. 이러한 지역적·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고 직접적인 가족지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예산 등의 문제로 각 지자체로 넘어간 지원사업들을 과감히 국가가 가져와 일괄 관리 및 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전국에 흩어진 지자체별 저출산 관련예산을 환급받고, 고용주의 분담금, 기여금 등을 취합하여 ‘저출산 기금’을 설치,운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셋째, 유연한 가정형태를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경우 1960년대 소위 ‘68 혁명’을 기점으로 가부장적 가족 문화와 결혼관에 큰 변화가 생기고, 1999년에는 정식결혼이 아니지만 세금공제, 보조금 등 결혼과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결혼-동거의 중간단계인 팍스(시민연대계약, Pacte civil de solidarite의 약자)를 도입, 혼인상태의 다양화를 꾀한 것이 출산율 제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팍스가 공식적인 법률혼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젊은 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담을 줄여준 것이 오히려 튼튼한 결혼과 가정으로 정착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아직 우리나라 정서상 쉽지 않은 부분은 존재하겠지만, 결혼을 늦게 하는 ‘만혼’, 아예 결혼을 포기하는 ‘비혼’이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은 이미 젊은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이 굉장히 버거운 일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저출산 당사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가족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때다. 게다가 이러한 유연한 가정형태의 수용은 한부모 가정이나 미혼모자가 좀 더 따뜻한 사회의 시선 안에 있을 수 있게 함으로써 결국 낙태건수도 줄어들게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와 같은 문화정책적 접근은 저출산정책의 본질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일개 정책 사안이 아니다. 과연 우리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을 갖고 시작해야 하는, 미래 대한민국의 존립이 걸린 문제이다. 지금까지 해왔듯 그저 그런 정책의 형식적 조합으로는 국가의 비상적 위기인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절대 극복할 수 없다. 기성세대의 틀에 갇혀 젊은 세대의 애국심에 호소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18세까지 성장하는 것을 국가가 제대로 책임지는 출산, 보육, 교육 정책은 물론 일자리, 주거정책에 이어 다양한 가정형태의 수용을 통해 우리의 위기를 극복해야 할 때다. 이는 물론 민·관의 협력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