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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호 2021년 9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즐겁게 백세를 맞는 법

박상철
 
즐겁게 백세를 맞는 법

박상철
의학67-73
전남대 연구석좌교수·전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노화와 성장, 마음가짐에 달려
나이 탓 말고 평생학습 꾀해야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의 에자티 박사가 선진 35개국의 통계를 분석하여 미래인구패턴을 예측한 자료에 의하면 2030년 대한민국의 남녀 평균수명이 세계 최고가 된다고 한다. 

여성 평균수명이 인류사상 최초로 90세를 넘어서고 남성은 84세에 이른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평균수명이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이 가장 빠르고 높게 증가하여 세계 최장수국이 되리라는 예측은 매우 반가운 뉴스이기도 하지만, 한편 우리나라가 선도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초고령사회에 대하여 철저한 대처를 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행복의 다섯 가지 조건(五福) 중에 첫째가 장수이고, 불행의 여섯 가지 요인(六極) 중 첫째도 단명인 것은 오래 산다는 것이 인간에게 절대적인 소망이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가구나 용품들에 수(壽)와 복(福)자를 새기면서 장수를 축원해 왔다. 그러나 초고령사회가 현실화되면서 장수가 반드시 즐겁지만은 않은, 기대 반 우려 반의 상황이 되면서 나이듦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실제로 영어 ‘aging’을 번역할 때 늙음 또는 노화로 번역하지만 진정한 의미는 ‘나이듦’이다. 나이듦은 구체적으로는 ‘자람’과 ‘늙음’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더 좋아지고 더 커지면 자란다고 하고, 나이가 들수록 더 나빠지고 더 작아지면 늙는다고 생각하여 통상 10~20대는 한 살 더 먹으면 자랐다고 하고, 70~80대는 한 살 더 먹으면 늙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몇 살까지는 자람이고, 몇 살부터는 늙음이 되는가? 

사무엘 울만의 유명한 시 ‘청춘’에서 단서를 찾아본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자람과 늙음을 결정짓는 것이 외모에 비치는 형태적 변화가 아니라 내부에 깃든 마음의 상태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표현이다.

개인의 선택에 따른 행동이 나이듦의 핵심이라는 의미이며, 선택은 삶의 갈림길에서 과감하게 자신이 가진 꿈과 이성에 근거하여 판단하고 열정을 통해 구현된다. 자람의 시기에는 자신의 선택을 통해서 노력을 열심히 기울여 왔지만, 늙음의 시기에는 자신의 선택을 포기하고 피동적으로 밀려나버린 것은 아닐까 되새겨보게 한다. 

역사적으로 나이가 들면 더 훌륭해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기에, 일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면 노련하고, 멋진 리더십을 발현하면 노숙하다고 칭송했다. 노형, 장로, 노대가 등은 존칭의 대명사였지만 청춘 문화가 범람하고 기계 문명에 의한 이기가 등장하면서 나이가 든다는 것이 노둔(老鈍)이 되고, 노쇠, 노약으로 변질돼 가고 있다. 왜 나이듦에 대해 대립적이고 평가절하적인 사태에 이르렀을까 반성해볼 때가 되었다. 

나이를 표현할 때는 절대적인 연대적 연령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생리적 연령과 사회적 연령이 있다. 연대적 연령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지만 생리적 및 사회적 연령은 당사자의 노력에 의하여 얼마든지 개선하고 조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능동적인 노력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백세시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에게 나이듦이 끝없는 자람으로 이어지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나이든 사람들이 스스로 당당하게 나이 탓하지 말고, 남의 탓하지 말고, ‘하자’, ‘주자’, ‘배우자’의 의지로 자신을 책임지는 독립을 추구할 때이다. 나이듦의 의미를 되새기고 지속적인 자람을 통해 세상을 당당하게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는 배움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배움은 역량을 확대하고 삶에 보람을 가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들었다는 이유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배워서 무엇하겠느냐는 자포자기적인 핑계가 될 수 없다. 개인의 능동적 노력이 필요하고 사회는 이를 지원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이에 본인은 동료교수들과 힘을 합쳐서 서울대학교 노화고령사회연구소를 설립하여 제3기 인생대학, 미니 메드스쿨, 골드 쿡 과정, 우리 춤 체조, 장수과학최고지도자과정 등을 개발하여 고령사회를 대비하는 데 기여하려고 했다. 지역에는 순창군건강장수연구소를 통하여 전국적 교육프로그램으로 확장했다. 

프로그램 참여자는 이미 수만명에 이르고 있으며, 참여한 65세 이상의 나이든 분들은 한결같이 배움의 기쁨을 만끽하고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아무리 나이가 들더라도 배움을 통하여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당당하게 자람을 지속하는 나이듦을 통하여 백세시대를 맞이해야 한다. 배움을 통하여 더 이상 단순 수명 연장이 아니고, 진정한 ‘기능적 장수’를 추구하는 웰에이징 나이듦을 이루면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모범이 되는 최장수국이 되리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