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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호 2016년 8월] 뉴스 본회소식

민주주의 발전 위해 국가중심세력 바로 서야

서정화 회장 발행인 칼럼
민주주의 발전 위해 국가중심세력 바로 서야

서정화 회장 발행인 칼럼


자유주의는 체제경쟁의 최종 승리자로서 20세기 말부터 세계에 군림해왔다. 혹자는 이를 두고 “자유주의가 역사의 종결이다”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자유주의가 최고의 체제라는 통념과는 달리 많은 지성인들은 그 미래가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고 지적했다.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의 권리를 평등하게 상호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통해 인권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대중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여 사회의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 자유주의의 효능이다. 그러나 그 평등지향성이 강박적이 될 경우 역설적으로 아무도 국가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무책임한 사회를 야기할 수 있다. 또한 군중보다 위대해지고자 하는 패기를 상실한 무기력증이 만연할 위험성도 제기된 바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겪는 위기를 보면 후쿠야마의 예언이 바로 이 나라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개인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대통령을 위시한 한국의 모든 권력들은 치밀한 감시와 견제를 받고 있다. 그 결과 국가 운영을 위해 소모되는 에너지는 늘어나고 있으나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는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또한 국가와 인류를 위해 창조적인 업적을 이루겠다는 도전정신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대신 기존의 체제 속에 안주하여 근근이 생존을 도모하려는 안일주의와 패배주의가 젊은 세대에서부터 만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혁신을 위한 역량도 혁신을 향한 의지도 상실해가고 있는 이때에,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시대정신을 따라 개인의 권익 보호를 우선하는 것이 과연 우리의 후손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겠는가?

인적 구심점은 체제 존속의 조건

자유주의는 민족이라는 새로운 권위를 창출하여 국가의 권력을 새로운 계층에게 분산시킴으로써 왕정 및 귀족정의 부패한 권력을 일소하고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근대 유럽인들이 창안해낸 정치사상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왕권신수설에 의거해 권력을 독점했던 왕과 귀족들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적 구심점을 만들려고 했을 뿐 권력 자체를 파편화시키려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조직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 구성원이 동의할 수 있는 권위를 제시하고 권력을 창출하여 창조적 소수에게 부여하는 것은 정치의 시초이며 본질이다. 권력자의 폭거를 방지하겠다는 이유로 권위 자체를 해체하고 권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에 다름 아니다. 유사 이래 창조적 소수의 능력과 헌신 없이 집단이 유지되고 발전한 전례는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주의 특유의 권력에 대한 불신과 견제는 역설적으로 안정적인 정치권력이 형성되어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현실적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평등지향성이 강박적이 되면 무책임한 사회를 야기할 수 있다

인류 최초로 민주주의 정치를 구현해낸 고대 아테네에서조차, 그 민주정이 가능했던 것은 데미스토클레스, 페리클레스, 플라톤 등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들을 배출한 명문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테네뿐만이 아니다. 명예혁명을 통해 의회 민주주의를 창출해낸 영국의 혁신적 귀족들과 젠트리 집단, 최초의 근대적 시민혁명에 성공한 프랑스 파리의 부르주아지들, 현대민주정치의 요체인 삼권분립개념을 구현해낸 미국의 ‘건국의 조상(Founding Fathers)’ 등 세계 민주주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국가들에는 모두 위대한 변혁을 책임지고 완수해낸 인적 구심점이 존재했다. 한국이 이뤄낸 산업화와 민주화 또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여 통합시킨 지도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조차, 체제의 존속과 발전은 항상 중심집단의 존재여부에 기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고대 아테네는 말할 것도 없이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특정인 혹은 특정 집단이 권력을 독점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인정받는 높은 수준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룩한 지금, 한국 사회가 염려하는 것은 독재자의 출현이 아니라 주권자의 부재다. 국가의 권력을 분산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아무도 권력의 집행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더구나 광복과 근대화 이후 우리 사회를 통합해왔던 국가정체성은 희석되었고 갈등은 심각해지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집단조차 자유민주주의 원리를 내세우며 스스로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일궈온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결실을 아름답게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민주주의에 대한 성숙한 지식과 함께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역량과 책임감을 갖추고 헌신할 수 있는 중심집단이 필요하다.

중심집단의 통합적 역량 필요

현재 우리 민족은 근대화 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있다. 이미 지나가버린 듯한 대한민국호(號)의 골든타임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전 국민의 역량을 모아낼 수 있는 인재들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물론 탁월한 역량이겠으나,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지고 있는 엘리트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정작 대한민국 중심집단의 구심력은 날로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어려움이 단순히 역량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탁월한 지성으로 비전을 제시하되 겸손과 봉사를 통해 국민을 설득하고 통합해내어 스스로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입증해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역사에 그 족적을 남긴 위대한 중심세력들의 공통점이며, 글로벌 자유주의의 난숙기(爛熟期)를 맞아 새로운 발전의 지평을 제시하기 위해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