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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호 2016년 7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반성하는 직업의 자긍심

김희원(인류89-93) 한국일보 사회부장 본지 논설위원

반성하는 직업의 자긍심
김희원(인류89-93) 한국일보 사회부장 본지 논설위원



일간지 기자는 매일 성적표를 받는다. 기사를 쓴 기자, 기사의 방향과 내용을 조율하는 데스크(부장 차장), 그리고 최종 편집 권한을 가진 국장을 가릴 것 없이 매일 아침 다른 일간지들과 비교해 보면 누가 승자인지 알 수 있다. 정량적인 영업실적은 아니어도, 정성적으로 자기 성적을 알게 되는 그 압박감은 엄청나서 나도 기자 생활을 시작한 후 만성 위장장애에 시달렸다. 매일 아침 내가 어떤 기사를 빠뜨렸는지, 이런 기획 아이디어를 왜 못 냈는지, 기사 내용 중 팩트와 표현이 뭐가 부족했는지를 비교 점검하고 반성하면서, 이렇게 입시생보다 자주 자기 등수를 확인하게 되는 직업이 또 있을까 궁금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신문사 한국일보의 독자권익위원회는 매달 회의를 열어 지난 한 달간의 보도에 대해 성적을 매긴다. 얼마 전 독자권익위원회는 한국일보가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정부의 책임을 어느 언론보다 앞서 부각시켰다며 이례적으로 칭찬을 했다. 하지만 2011년 사태 직후 언론으로서 제 역할을 못한 데 대한 반성이 없다는 비판과 함께였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불상의 폐질환 사망의 원인으로 처음 지목되고 나서 얼마 후 나는 사회부 차장 발령을 받아 데스크로서 관련 기사를 다루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이 사태가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을 갖지 못했다. 유독물질을 100% 다 검증하지 못하는 제도적 미비점과 부처간 엇박자를 내는 상황을 기자들의 보고와 기사를 통해 알기는 했지만, 산업화에 따라 새로 개발된 화학물질에 대해 제도가 미처 못 따르는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2011년 '가습기 사망' 사건 당시 심각성 인식 못한 부끄러움 커

뒤늦은 심층 보도는 '내 반성문' 자기성찰, 세상 바꾸는 '밑바닥 힘'


그러한 내 자신이 심히 부끄러워진 것은 올해 검찰이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나오는 여러 가지 팩트들을 접하면서였다. 제 손으로 사온 가습기에 어린 자녀를 잃은 부모가 얼마나 큰 대못을 자신의 가슴에 박고 사는지, 옥시레킷벤키저가 실험보고서를 왜곡 발췌하는 등 자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들였는지, 그리고 사전에 유독물질을 철저히 관리감독하지 못한 정부가 사후 피해자 실태조사와 보상에도 얼마나 게으르게 책임을 방기했는지를 하나씩 알게 될 때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안방의 세월호’와 다름 없음을 절감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그랬다. 내가 세월호와 관련해 잘못 보도한 적도, 관련 분야를 담당한 적조차 없건만,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죄책감에 시달렸다. 또래 자녀를 둔 엄마로서, 참사를 낳은 사회 구조적 문제에 N분의 1의 책임이 있는 기성세대로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기자들의 아침 보고에 눈물을 글썽이고, 오후에 들어온 기사를 울면서 데스크를 보고, 다음날 아침 신문을 펼쳤을 때 다시 울음을 쏟으며 참사 보도를 다루던 그 즈음 나는 꼭 우리 신문이 아니어도 꼭 지적해야 할 기사거리를 어느 언론이라도 보도하면 좋다는 생각마저 했다.


뒤늦게나마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만나 인터뷰를 싣고, 정부의 책임을 부각시키고,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은 3·4단계 피해자들의 문제를 부각시킨 한국일보의 보도는 바로 나의 반성문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조직화된 세력이 아니어도, 자기성찰은 가끔 세상을 바꾸는 밑바닥 힘이 된다. 이제, 반성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게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