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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호 2016년 6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아버지와의 돈내기

허승호(경영79-83) 한국신문협회 사무총장


아버지와의 돈내기

허승호(경영79-83)한국신문협회 사무총장




약간 철지난 에피소드 한 토막.


난 이세돌에 대한 알파고의 승리를 축하하고 기뻐한다. 알파고 승리의 직접적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첫 대국이 있던 날 아침, 고향의 아버지에게 안부전화를 하다가 바둑이 화제에 올랐다.

 
“누가 이길 것 같노?”
- 전 알파고가 이긴다고 봅니다.
“택도 없다. 세돌이가 얼마나 잘 두는데.”
- 근데 요새 인공지능은 무섭다 캅디다.
“좋다. 내기 할까?”
- 예. 5만원 빵으로 하시죠.


이렇게 해서 아마 3단 실력의 아버지는 이세돌에, 난(약한 10급 쯤 되려나?) 알파고에 각각 돈을 걸었다.
3국 다음날 연결된 통화. 알파고가 이미 3연승 해버렸고 아버지는 패배를 인정하며 내게 물었다.


“니는 알파고가 이길 것을 우째 알았노?”
- 간단합니다. 제 친구들 중 인공지능 하는 사람이 두엇 있는데 갸들이 다 알파고가 이긴다고 했습니다(한 사람은 인공지능을 가르치는 교수로 대국 전 ‘알파고 승리’를 공개적으로 예측했으며, 승부가 결정되자 꽤나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세돌이가 이긴다는 친구들은 없더나?”
- 있었지만 갸들은 바둑만 알지 인공지능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지요. 반면 인공지능 전공하는 사람들은 바둑을 꽤 두는데도 이세돌이 진다고 했거든요.
“허허, 가들은 우째 알았으꼬?”
-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패(百戰不敗) 아입니까? 상대가 누군지 모르고 싸우는 자는 상대를 알고 싸우는 자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음하하~
“으윽, 그렇구나.(그리고 긴 침묵)
- (위로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근데 아부지, 5만 원은 서울로 부치지 말고 고마 용돈으로 쓰세요. 친구들과 밥이나 사드세요.
“야 이 넘아, 5만원 가지고 친구들과 무슨 밥을 묵노? 욕만 묵는다.”
- (앗, 이는 내게 불리한 국면! 잠잠~)


한동안 어색한 분위기, 그리고 얼렁뚱땅 통화가 끝났다.


@ 어쨌거나 이 일화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 아버지는 바둑을 잘 알았다. 나는 바둑에 대해서는 패와 축 정도를 겨우 알 뿐이지만 바둑과 인공지능을 다 잘 아는 친구를 가까이 뒀으며, 그들의 말을 찾아 경청했다. 나 역시 지피지기 하려고 애썼던 것. 웬만하면 질 수가 없다! 또한 이게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동아시아 최강 전력이었던 왜(倭)의 수군에 23전23승 한 핵심비결이기도 하다. 그는 이기는 전투만 골라 할 줄 아는 안목과 지략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 결론 : 내가 좀 아는 분야라 해도 섣불리 예단하지 말고 앞뒤를 잘 알아본 후 신중히 판단하자.


이상이 필자가 일군의 친우들과 공유하고 있는 한 폐쇄 SNS 공간에 올린 글이다. 댓글이 붙었다. 착한 친구들은 대개 “용돈을 좀 더 부쳐드려서 상황을 수습하라.” 류의 충고를 해왔다.
근데 며칠 후 생각지도 못한 댓글이 달렸다. 다음과 같은….


@ 이 일화에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 :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한 번의 실언, 한 수의 패착(“친구들과 밥이나…”)이 최종승부(앗, 이는 내게 불리한 국면!)를 결정한다. 친구여, 발언은 언제나 신중히!
곰곰 생각해보니 이 친구가 적출해낸 교훈이 내 맘에 훨씬 와 닿는다. 내가 좀 못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