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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호 2016년 6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한국 기초과학, 세계 일류가 되려면

금종해 고등과학원 원장

한국 기초과학, 세계 일류가 되려면
금종해(수학76-80)고등과학원 원장



매주 발간하는 국제 과학 학술지 네이처가 지난 6월 2일자 호에서 ‘왜 한국은 연구개발에 세계에서 가장 큰 투자를 하는가(Why South Korea is world's biggest investor in research)’ 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국이 노벨상을 받기 위해 큰 돈을 쓰고 있다. 하지만 야망은 돈만으로는 실현되지 않는다”라며 한국 과학계의 노벨상 콤플렉스를 꼬집고 현실과 한계를 분석했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던 문제점을 밖에서 지적받으니 불편하긴 하나 핵심은 정확하다는 생각이다.


우선 네이처는 한국의 연구개발(R&D) 예산 증가에 주목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는 2000년 2.2%에서 2014년 4.3%로 거의 두 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두 배 이상으로 늘린 나라는 1%에서 2.1%로 늘린 중국뿐이다. 주요 경쟁국들과 비교해보면 2000년에 이스라엘이 4%로 세계 1위, 일본이 3%, 미국 2.7%, 유럽연합 1.7%이었고, 2014년에는 이스라엘이 4.1%로 세계 2위, 일본이 3.6%, 미국 2.8%, 유럽연합 2%로 늘었으나 한국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나 성과는 실망스럽다고 지적한다. 2014년 한국이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수는 72,229편으로 일본의 63% 수준이고, 중국의 16%에 불과하며, GDP 대비 R&D 투자비중이 1.22%인 스페인과 같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네이처가 사용한 국가별 R&D 투자 비중과 국제학술지 발표 논문 수 통계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2000년부터 2014년까지 14년 동안 한국이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수는 4배 이상 늘었고 이 증가율은 일본보다 훨씬 크고 중국보다는 작다. 물론 국제학술지 발표 논문 수는 국가의 과학적 역량을 측정하는 양적 지표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일본이 2014년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수가 한국의 1.5배 정도이고 중국의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노벨상 수상자 수는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이다. 필자가 접해본 일본의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은 장인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었고 자기가 좋아하는 연구를 평생 지속적으로 수행한다. 큰 연구를 야심차게 하는 사람, 작은 연구지만 성실하게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는 환경에서 일본의 논문 수 증가율은 낮아도 꾸준히 세계 최고 수준의 업적들이 나오는 것 같다.


국가의 과학 수준이 발전하는 과정은 초기에는 국제학술지 게재 논문 수를 늘려 나가다가, 점차 최고학술지 게재 논문 수를 늘려가는 단계로 진입하고 이 중 일부가 세계적 업적으로 인정받아 노벨상으로 이어진다. 현재 모교인 서울대를 비롯한 한국의 선도 연구중심대학들은 교수 채용이나 승진심사에서 국제학술지 논문 수나 인용지수 같은 양적지표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해당분야 국제 석학들에 의한 동료평가(peer review)라는 정성평가가 더 중요한 요소로 인정되어 가고 있다. 동료평가를 통해 수행중인 연구의 질적 수준을 전 세계의 경쟁자들과 비교 평가받고 세계적 과학자로의 발전가능성도 진단받는다.


물론 이러한 동료평가는 매우 주관적이어서 정부, 언론 등 비전문가들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불평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의 연구업적을 인정해주는 국제석학이 많아져야 국제석학이 되는 것이지 국제학술지에 논문 많이 쓴다고, 또는 인용지수가 높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과학연구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우리나라가 정성평가를 통해 세계적 과학자를 발굴하고 양성하려는 단계까지 발전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R&D 투자는 성공하고 있다고, 또 한국 과학계가 국민의 혈세를 결코 낭비하고 있지는 않았다고 판단한다.


정부나 언론의 대학과 연구기관에 대한 평가가 객관적 자료인 논문 편수, 임팩트 팩터, 피인용도, 특허 수 등 숫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또한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기도 한다. 국가 경쟁력의 이해가 몇몇 투입요소 중심의 ‘지표’에 의존하고 있어서 실질적인 역량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경우 본부는 재정지원 또는 ‘명성’이 달려 있는 평가에 도움되는 ‘숫자적’ 성과를 내라고 연구자들에게 강요해왔다. 참신한 연구보다는 ‘생존’을 위해 논문 편수 맞추기에 급급하고 창의성 있는 연구 자체보다는 연구비 확보, 규모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논문이 많이 나오는 영역으로 몰리기도 한다. 결국 평가 체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숫자게임에서 자유로워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모교의 자연과학대가 소속 교수들이 큰 연구를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매우 고무적이며 기대가 크다. 양적 지표를 채우는 방식으로는 대형 업적이 나올 수 없고 따라서 세계적 일류 대학이 될 수 없다. 큰 연구는 실패의 위험이 따른다. 일시적으로 양적으로 감소하는 상황도 용납해주어야 한다.


과학과 기술은 분명히 다르다. 당연히 ‘과학자’와 ‘공학자’는 그 하는 역할도 다르다. 과학자는 ‘새로운 지식과 과학적 체계를 만드는 사람’이고 공학자는 ‘사람들을 편리하게 하는 산업적 기술을 만들어 돈을 벌게 해주는 사람’이다. 따라서 노벨상은 대부분 과학자들이 받는다. 매년 10월 노벨상 시즌이 되면 공학자들에게까지 왜 노벨상 받는 연구를 못하냐고 닦달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R&D 투자 중 일부만 기초과학에 투자되는데 마치 과학자들이 그 엄청난 돈을 다 쓰면서 노벨상 하나 못 받는 것처럼 오해하는 것도 잘못이다. 정부의 기초과학 예산을 구분하여 분명하게 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