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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호 2016년 2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지도자는 누구인가

김형오 부산대 석좌교수, 전 국회의장


지도자는 누구인가

김형오(외교67-71) 부산대 석좌교수, 전 국회의장



지도자는 누구인가? 서울대 출신이면 지도자인가?


고대 아테네에 알키비아데스란 인물이 있었다. 돈 많은 명문 귀족으로 좋은 스승 밑에서 배웠다. ‘얼짱몸짱이어서 뭇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지략과 웅변 솜씨도 뛰어났다. 승승장구 출세 길을 달려 최고위 직인 장군에까지 올랐다. 처음에는 평화노선을 주장했으나 라이벌에게 그 공이 돌아가자 주전론자로 바뀌었다. 스파르타와의 전쟁을 부추겼다. 치명적 실수로 재판을 받게 되자 스파르타로 망명했다. 자신에 대한 스파르타 사람들의 의혹을 씻으려고 스파르타인보다 더 스파르타적으로 행세하며 그곳 풍습을 따랐다. 아테네의 약점을 알려주면서 아테네를 멸망시키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신임을 얻은 뒤로는 왕비를 유혹해 임신까지 시켰다. 스파르타에 더는 머물 수 없게 되자 그리스의 적국인 페르시아로 도망가 이번에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양쪽을 모두 괴롭히는 전략을 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말기에 역사를 교란했던 이 희대의 인물은 결국 비참한 최후로 생을 마감한다.


다시금 묻는다. 지도자는 누구인가? 최근의 국회 모습을 보면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마디로 무기력 그 자체다. 입법부란 글자 그대로 법을 만드는 곳이건만 정부가 애타게 원하는 법을 안 만들고 있다심지어는 국회의원 선거 관련 법마저도 차일피일, 나 몰라라 한다. 자기들 지역구가 없어진 위헌 상태를 방치하고 있다. 여당이 요구하는 건 야당이 반대하고, 야당이 원하는 건 여당이 퇴짜를 놓는다. 19대 국회 4년 동안의 입법 실적이 역대 국회 중 가장 저조하다. ‘선진화법으로 식물 국회가 돼버린 탓도 있지만, 더 큰 원인은 대화와 타협이라는 본질적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독립된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의 자율적 권능도, 국회를 움직이는 지도부의 리더십도 찾아볼 수 없다. 정녕 한국의 지도자는 어디에 있는가?


올해 11월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는 세계의 눈은 착잡하다. 금세 사라질 것 같던 트럼프 돌풍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다. 직설과 막말, 막가파식 행동이 오히려 정치에 식상한 유권자들에게 카타르시스 효과로 나타나고 있는 모양새다. 점잖고 교양 있는 젭 부시는 일찌감치 당선권에서 멀어졌다. 자칭 사회주의자라는 버니 샌더스는 젊은 층의 지지를 업고 힐러리 클린턴과 예측불허의 게임을 연출하고 있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지 미국이 세계의 지도국 역할을 하기는 어렵게 생겼다. 경륜과 권위, 품격과 도덕성 등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 이들에게선 별반 안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올봄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내년엔 대통령 선거, 내후년엔 전국 시도지사·교육감 등등을 동시에 뽑는다. 3년 연속으로 전국 규모의 선거가 있다. 후보만도 수만명에 이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정치 공해에 시달려야 하며, 얼마나 심각한 포퓰리즘과 국론분열, 유언비어와 흑백논리가 판을 칠까. 이래서야 과연 국민이 제대로 된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긍정적 답변이 나오지 않는다. 지난 4년간의 국회 모습과 정치 행태가 우울한 미래를 짐작케 한다. 더구나 가장 중요한 대통령 선거는 후보의 윤곽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아무도 차기 대통령을 얘기하지 않는다. 불과 20개월도 안 남았는데 말이다. 물론 임박한 국회의원 선거에 집중하느라 그런 면도 없지 않겠지만, 먼저 이름이 입에 오르면 몰매도 먼저 맞을까봐서인지 하나같이 몸을 숙이고 잔뜩 움츠린 모습이다.


지도자들의 떳떳하지 못한 언행을 어제 오늘 듣고 본 것이 아니다. 현직 대통령의 장악력이 클 때는 쥐 죽은 듯 조용히 있다가 나사가 조금만 헐거워지면 서까래라도 뽑을 것처럼 덤벼드는 모습 말이다. 4월 총선 뒤 청와대 나사못이 하나둘 빠지기만을 기다리는 지도자들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를 요즘 자주 듣고 있다.


정치는 현실이다. 지도자는 수입해 올 수 없다. 지금 적어도 1%의 지지율이라도 가진 사람 중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정치다. 비겁하고 무책임한 지도자라 할지라도 지도자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인 국민이라면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지도자여, 깨어나라고 말이다.


알키비아데스처럼 모든 걸 갖추고도 신념을 저버리고 나라를 배신하기를 식은 죽 먹듯 하는 지도자, 국가 현안이 산더미같이 쌓였는데도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지도자, 눈치 보기로 바짝 엎드려 있다가 입으로만 나라 걱정하는 지도자, 정치 혐오증에 빠진 국민 정서에 교묘히 파고들어 궤변과 변칙을 자행하는 지도자는 먼 옛날 남의 나라 얘기만이 아니다. 바로 오늘 여기, 우리나라의 얘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지도자가 다스리고 이끄는 국가의 운명은 너무도 뻔하다. 나라는 망가지고 국민은 불행해진다.


그런 비극을 막으려면 결국은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그들의 도덕성을 회복시키고, 공동체적 정의가 깃들게 해야 한다. 지적 능력과 통찰력, 상생하고 공존하는 마인드를 갖게 해야 한다. 그들이 나라를 진정 사랑하고 국민을 위하도록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 그들이 떠난 뒤에도 우리는 남아서 지키고 살아야 하는, 대대손손 물려줘야 하는 내 나라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깨어나고 또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라의 진정한 지도자는 바로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