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호 2024년 1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선거의 해, 선택은 국민의 몫이다
김형오 외교67-71 전 국회의장
관악논단
선거의 해, 선택은 국민의 몫이다
김형오
외교67-71
전 국회의장
한국·미국·인도·러시아 등 76개국 선거 앞둬
선거결과 따라 세계질서 재편…초미의 관심
올해는 선거의 해다. 한국은 물론 미국 러시아 인도와 유럽 각국 등 전 세계 76개국 40억 명이 선거판에 휩싸인다 한다. 선거철만 되면 희망과 우려가 교차하지만 올해는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승자독식(勝者獨食 Winner takes All)의 게임 룰은 당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만든다. 전체주의와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는 선거철을 만나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기승을 부린다. 전쟁과 테러, 보호무역주의와 세계 경제의 불황, 미·중 갈등과 국내 문제 우선 등 세계질서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우리의 상황은 더욱 예사롭지 않다. 북한의 안보 위협까지 더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나라의 미래를 이끌지 큰 지혜가 필요하다. 몇 가지 본질적인 문제점을 짚어본다.
더 이상 국민을 갈라치기 하지 말라
이번 선거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이다. 같은 언어·문화·역사를 공유하며 수천년을 함께 살아온 한 민족끼리 이렇게 갈등하고 분열하는 곳이 또 있을까.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면 설득과 타협을 해야지 왜 적(敵)처럼 제거 대상으로 삼는가. 국회에서도 소속 당이 다르면 대화가 없고, 같은 당에서도 계파가 다르면 밥도 먹지 않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사실상 정치적 내전 상태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 2년 역시 갈등과 분열의 연속이었다. 정부와 국회, 여당과 야당의 극한 대립은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가 돼 버렸다. 국회를 장악한 야당은 입으로는 ‘협치’를 외치지만 속내는 ‘정권 흔들기’를 계속했고, 소수 여당은 안목과 용기 부족으로 국면을 제대로 타개하지 못했다. 여권에서 최후의 카드랄 수 있는 한동훈 비대위가 등장한 이유다. 야권도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 체제로 선거를 치를 수 있느냐로 시끄럽다. 새로운 정당들도 꿈틀댄다. 증오·분열·선동이 표를 얻는 가장 쉽고 확실하다는 낡은 생각을 벗어던져야 헌 당이든 새 당이든 희망이 있으련만 현실은 반대로 간다. 선거를 치를 때마다 국민분열과 대결 증오로 촉발된 사회적 비용은 추산조차 힘들 정도다. 이 어긋난 국민 정서를 바로잡으려면 그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이 걸린다. 여야가 증오와 혐오의 정치를 넘어 화합·공존·공생의 정치로 언제쯤 가능할까.
나라와 여야의 운명이 걸려 있다
역대 어느 선거든 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없지만 이번 선거는 특별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은 당의 간판을 내려야 한다. 야당이 승리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그날부터 레임덕에 들어가게 된다. 걸핏하면 탄핵 카드를 꺼내 들었던 야당에 의해 임기를 다 못 채우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반면 여당이 승리하면 정국은 안정되고 이재명 대표는 정치 생명이 끝나고 다른 야당이 민주당을 대체할 수도 있다. 대선 지선에 이어 이번 총선까지 연속 패배한 정당과 그 대표에게 과연 설 자리가 있겠는가.
이번 선거는 체제와 이념의 대결이기도 하다.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한미 동맹과 안보를 중시하는 세력과 평등·분배·국가개입을 우선하고 대북 유화론을 주장하는 세력 간의 대결이다. 또한 집권당 심판론과 또 다른 기득권인 86운동권 심판론이라는 기득권 구도의 대결이기도 하다. 소위 세력교체의 문(門)을 여는 선거다.
국회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총선 때마다 매번 40~50%가 넘는 국회의원이 교체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물갈이를 해도 임기가 끝날 즈음이면 다시 대폭 갈아치워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는다. 왜 그런가. 물은 갈지 않고 물고기만 갈아치우기 때문이다. 국회의 제도와 운영, 관행과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뜯어고쳐야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국회는 ‘국회 개혁’은 입으로만 부르짖을 뿐 기본적인 ‘정상화’ 조치조차 하지 않았다. 자체 규제안도 의정활동 평가 기준도 없는 국회다. ‘특권 내려놓기’는 할 일 안 해도 괜찮은 관행부터 뜯어고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불법 비리 부도덕과 폭언 폭행 무례는 용납돼서는 안 된다. 잘못된 행위에 대한 제재를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해야 한다.
또 회기 비회기를 나눠 걸핏하면 휴회하는 국회가 아니라, 국회 문은 항상 열려 있어 나랏일 제대로 해야 한다. 의견이 대립하고 사안이 중대할수록 시간끌기 하다 얼렁뚱땅 해치워 버릴 게 아니라, 대화·토론·협상을 하는 회의체로 거듭나야 한다. 그런 의지와 능력을 갖춘 사람이 공천받고 선출되도록 해야 한다. 국회의원 윤리규정을 제대로 만들고 윤리위원회를 독립적 상설기관으로 해야 책임을 물을 수 있고 의원들이 정신을 차린다.
정당의 민주화가 중요하다
국회의원은 국가이익과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헌법46조). 그러나 과연 그런가. 주요 안건일수록 당 대 당의 대결이 심해지고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당의 대변인으로 전락한다. 그저 소속 정당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굳이 300명이나 두어 치열한 선거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법률상 보장된 소신투표를 했다가는 정치생명이 끝나고 만다. 소수가 밀실에서 정한 당론으로 사사건건 밀어붙이는 나라는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도 드물다. 당론에 비판적이면 다음 공천은 보장받지 못한다. 미국 같은 대통령제를 취하면서 미국에는 없고 의원내각제 국가에만 있는 당대표·사무총장·대변인 등을 한국 정당은 두고 있다. 공천권을 비롯한 모든 권한은 정당(구체적으로는 당 대표와 실세 몇 명)이 행사하고 책임은 국회의원이 지는 이중적이고 무책임한 정당 우위 체제가 고쳐지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꽃피지 않는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이른바 ‘민주헌법’에 의해 5년 단임 대통령을 여덟 명 뽑았고 정권교체를 네 번 경험한 나라다. 외형적으로는 민주주의 선진국이지만 내실은 자꾸 비어만 간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이 바뀔수록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은 오히려 높아져 왔다. 갈등·분열·대립과 진영논리가 판을 치고 ‘내로남불’이 영어사전에 등재될 정도다. 잘못된 정치인을 뽑았고 정치 구조를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정치가 염치를 잃었다. 공동체에 대한 사랑은커녕 ‘국민의 대표’라는 직분의 자존감마저 상실했다. 80% 이상의 제대로 된 정치인이 그렇지 않은 20%에게 휘둘리는 대한민국 국회다. 어떻게 해야 바른 정치인을 뽑고 국회의원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국회의 정상화와 정당의 민주화 없이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선택과 판단, 결과는 국민의 몫이다
가장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과학적인 국민으로 흔히 독일인을 꼽는다. 그 국민들이 인류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를 배출했다. 그는 쿠데타가 아닌 선거라는 형식을 통해 집권했고 종신 총통으로 추대됐다. 1차대전 이후 세계 5대 부국에 속했던 아르헨티나, 6·25 전쟁 전후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잘 사는 민주주의 국가였던 필리핀을 보라. 오늘을 만든 것은 그런 지도자를 선택한 그 나라 국민이다. 세계적으로 어둡고 험한 파고가 몰아치는 가운데 나라의 명운이 걸린 선거를 치러야 한다. 우리에게 내일은, 희망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