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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호 2015년 1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수저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권석천 중앙일보 사회2부장·본보 논설위원


수저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권석천(사법85-89) 중앙일보 사회2부장·본보 논설위원 







‘돈의, 돈에 의한, 돈을 위한 지배’가 성숙 단계로 들어선 건 아닐까
자유를 되찾기 위해선 우리에게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40대 초반인 K는 매주 토요일이 되면 부모님 댁에 가족들을 데리고 간다. 일요일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70대인 K 아버지가 손자손녀와 하루 같이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K의 아내는 시댁에 가서 늘 웃는 낯으로 시부모를 대한다.  


K는 현재 아버지 빌딩 관리 업체의 대표를 맡고 있다. K 아버지는 강남에 빌딩 두 개를 소유하고 있다. K는 대학을 마친 뒤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아니, 구하지 않았다는 쪽이 옳겠다. 입사 했다가 얼마 가지 않아 상사, 동료와 다투고 나왔다. ‘별 것도 아닌 친구들이 나를 무시해?’라는 생각에 참아야 할 순간에 참지 않았기 때문이다.


K의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불만이 많다. 아직도 부모에 매여 사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편은 사사건건 모든 일을 부모에게 물어보고 결정한다. 몸만 어른이지, 정신은 어린 아이다.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지만 참고 또 참는다. 빌딩 두 개가 눈앞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찾아뵈며 지극정성을 다하는데도 시부모는 재산 떼어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K의 아버지는 지금처럼 화목한 가정이 좋다. “재산 물려주는 순간 끝이야.” 그런 얘기를 친구들로부터 들을 때마다 설마 그럴까 싶다가도 진짜 그럴지 모른다고 고개를 갸웃거리곤 한다. 최후의 순간까지 재산을 손에 쥐고 있을 작정이다. 어떤 친구는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줬다가 낭패를 봤다. 며느리가 이혼 소송을 내서 재산분할을 해준 것이다.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며느리에게 나눠준 꼴이다. 아들 내외 사이가 좋은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잘 살펴봐야겠다. 


가사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로펌 변호사 L에게서 전해들은 얘기다. 그는 “부자 부모를 뒀다는 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저도 이혼 사건을 하면서 알게 된 건데요. 강남에 건물 가진 분들 보면 정말 많은 분들이 K 가족처럼 사는 거 같아요. 자식들이 부모에게 정신적으로 구속된 생활을 하는 거죠. 과연 그런 삶이 행복할까요?”


요즘 청년들 사이에 ‘수저 계급론’이 퍼지고 있다. 부모의 재산 정도에 따라 금(金)수저, 은(銀)수저, 동(銅)수저, 흙수저로 나뉜다는 것이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젊은 세대의 좌절과 분노, 자조, 반감 같은 것들이 압축돼 있다. 또한 아무리 자신들이 노력을 하더라도 계층 이동 같은 건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금수저도 불행하다. 그러니 가련히 여기자’는 게 아니다. 또는, ‘흙수저도 돈이 없는 대로 좋은 점이 있으니 대충 만족하고 살자’는 얘기도 아니다. 한국 사회가 전체적으로 병들어가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금수저는 부모의 돈에 예속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가 없다. 그들에게 허용된 자유가 있다면 쇼핑의 자유, 환락의 자유다. 은수저는 금수저를, 동수저는 은수저를, 흙수저는 동수저를 부러워하고 질투하면서 박탈감의 먹이사슬에 포박돼 있다. 어느 누구도 자유롭게 살 수 없는 세상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확산되기 시작한 ‘돈의, 돈에 의한, 돈을 위한 지배’가 이제 성숙 단계로 들어선 건 아닐까.


나는 금수저 청년들이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 저마다 가고 싶은 길을 가기를 꿈꾸길 바란다. 미국에는 ‘1대가 큰돈을 모으면, 2대는 정치를 하고, 3대는 예술을 한다’는 얘기가 있다. “골치 아픈 경영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부모 곁을 떠나 내 꿈을 펼치고 싶다”는 젊은이도 나와야 한다.


흙수저도 자존감을 버려선 안 된다. 금수저를 갑(甲)으로, 자신을 을(乙)로 여기고 산다면 영원히 달라질 게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격차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흙수저라고 정신적 노예로 살 이유는 없다. 영화 ‘베테랑’의 대사처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되물어야 한다. 금수저들이 가지기 힘든 패기로 실력을 키워간다면 변화의 계기는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금수저부터 흙수저까지, 돈에 따라 사회적 계급이 나눠지는 상황을 바꾸려는 노력들이다. 흙수저든, 금수저든 돈으로 인격의 값어치를 재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흙수저를 줄이고, 은수저, 동수저를 늘려나가는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나는 대학이, 특히 ‘진리는 나의 빛’(VERITAS LUX MEA)을 지향해온 서울대학교가 그렇게 세상을 바꿔나가는 전초기지가 되어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