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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호 2015년 10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로봇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신예리 JTBC 국제부장· ‘밤샘토론’ 앵커·본보 논설위원

로봇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얘들아, 밥을 남기지 말고 다 먹거라. 중국과 인도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단다.”


예전 부모들이 저녁 식탁에서 자녀들에게 자주 했던 잔소리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자 국제문제 전문가인 토마스 프리드먼은 자기 딸들에게 그 대신 이런 조언을 해주겠다고 했다. “얘들아. 숙제를 마저 끝내거라. 중국과 인도 사람들이 네 일자리에 굶주려 있단다.”


지난 2005년 펴낸 저서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에서 프리드먼은 정보통신(IT) 기술의 발전과 아웃소싱 및 오프쇼어링의 확산으로 국경이란 공간적 제약이 허물어지는 현상에 주목했다. 이처럼 평평해진 세상에선 첨단 IT 기술로 무장한 중국과 인도의 청년들이 얼마든지 바다 건너 미국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말이다.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이고, 그의 우려는 한국에서도 현실화된 지 오래다. 요즘 우스갯소리로 대륙의 실수라 불리는 중국 샤오미의 제품들이 우리 안방을 야금야금 차지하는 걸 보면서 예전 프리드먼의 말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얼마 전 중앙일보 창립 50주년 기념 미디어 컨퍼런스에 연사로 나온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생생한 얘기도 가슴에 와서 꽂혔다. 대학원 시절 우연히 PC통신 화면을 접하곤 멀리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자료를 공유하는 놀라운 세상이 펼쳐질 거란 직감에 뉴미디어의 세계에 뛰어들었다는 김 의장. 삼성SDS-한게임-네이버를 거쳐 카카오톡을 세계인의 모바일 메신저로 키우는 성공 신화를 써냈다. 하지만 그 역시 중국에 공포심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3년 전만 해도 중국 IT 회사 간부들이 모바일의 미래를 배우기 위해 우리 회사를 방문했다. 그런데 1년 전 중국을 가보니 이미 우리를 앞서 있더라. 엄청난 중국발 해일이 조만간 대한민국을 덮칠 것이다.”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이라고들 한다. 몇 년째 취업 준비생에 머물며 정규직을 최대 소망으로 꼽는 젊은이들이 주변에 넘쳐난다. 정부가 갖은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하는 노동개혁도, 대통령이 솔선수범해 갹출하려는 이른바 청년희망펀드도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걸 누구나 안다. 저성장이 고착화돼 일자리 자체가 줄어든 데다 그 일자리마저 시시각각 무섭게 추격해오는 중국 등 경쟁 국가들에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고통스럽지만 틀을 깨고 판을 바꾸는 획기적인 구조 개혁 없이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대책만으론 이 문제를 결코 풀 수가 없는 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력한 경쟁자가 추가로 등장하기도 했다. 바로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 얘기다. 미국의 경우 10년 후인 2025년까지 로봇이 일자리 2270만개를 사라지게 만들 거란 섬뜩한 예측까지 나왔다(포레스터 리서치 연구 결과).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은 만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주장도 있긴 하다. 하지만 로봇 때문에 사라지는 일자리가 10개라면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1개에 그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돈다.


짐작할 수 있듯 단순 노동·비숙련직이 가장 위험하지만 로봇이 대체할 수 있는 직종은 갈수록 확대되는 추세다. 남의 일이 아니다. 숫자와 통계자료를 토대로 기사를 쓰는 로봇 기자가 이미 활약 중이다. ‘로봇 의사’, ‘로봇 변호사가 나올 날도 머지 않았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이 방직 기계를 부쉈던 19세기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을 본따 로봇 파괴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올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대세를 거스를 순 없는 노릇이다. 로봇이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는 자질과 능력을 키우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고도의 창의성, 탁월한 리더십과 판단력, 정서적 교감과 소통의 능력은 로봇이 판치는 세상에서도 그 가치가 더욱 빛날 터다. 그러니 이제 밥상머리 교육부터 달라져야 한다. 아들딸에게 무조건 의대, 법대 가라며 등 떠미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부모도, 자녀도 시대의 흐름에 예민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프리드먼은 평평해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배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새로운 일자리와 새로운 산업이 쉴 새 없이 생겨나는 이 때, 오늘 내가 아는 것은 내일이면 구식이 돼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IQ(지능지수)만 믿지 말고 CQ(호기심 지수)PQ(열정 지수)를 발휘해 새로운 일을 새롭게 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배워나가야 한다는 얘기였다. 내가 대학생인 우리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