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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호 2015년 9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실현되지 않은 정의

정재권(국문82­-87)한겨레신문 전략기획실장·본보 논설위원

실현되지 않은 정의


8월의 끝자락에 한편의 연극과 영화를 봤다. ‘헤이그 1907’과 ‘암살’. 광복 70돌의 한복판에서 아픈 역사와 마주하게 한 작품들이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흔해진다던가. 애써 덤덤하려 했지만, 불쑥불쑥 솟구쳐오는 안타까움과 분노, 미안함에 어느샌가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연극 ‘헤이그 1907’은 역사 교과서에 화석화된 ‘헤이그 밀사사건’의 온전한 모습을 복원해낸다. 이 준·이상설·이위종 세 밀사의 고뇌와 피땀 어린 활동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여러 사실도 상기시킨다. 일제의 압력에 굴복해 대한제국 법원이 어이없게도 이상설에게 사형, 이 준·이위종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사실, 이 준이 헤이그에서 병사한 뒤 이상설·이위종이 러시아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하다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했던 사실 등등….


이를 통해 ‘헤이그 1907’은 ‘정의’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무대에서 이 준은 거듭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외친다. 일본에서 법학을 전공한 이 준은 근대법과 국제법에 정통한 당대 최고의 검사였다. 실제로 그는 헤이그로 가기 직전에 쓴 ‘한국혼 부활론’에서 “동양의 공존영생(共存永生), 세계의 협화공존(協和共存)”을 역설했다. 이 준에게 헤이그행은 근대적 지식인이 자신의 가치철학을 구현하는 행위이기도 했던 셈이다.


하지만 이 준이 품었던 ‘보편적 정의’는 일본와 제국주의 열강의 탐욕 앞에서 물거품이 된다. 이 준은 “차라리 법을 배우지 말았을 것을”이라고 탄식한다. 이국 땅에서 이 준의 육신을 갉아먹은 것은 나라를 잃어가는 설움이었겠지만, 보편적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시대상황에 대한 절망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영화 ‘암살’의 주제도 정의다. 겉으로만 보자면, ‘헤이그 1907’과 달리 영화에서 정의는 ‘실현’된다. 상해임시정부가 경성으로 보낸 암살단은 대부분 일본군 총탄에 쓰러지지만, 조선주둔군 일본 사령관과 대표적 친일파를 저격하는 임무를 완수한다. 일제의 밀정 노릇을 한 독립운동의 배신자 역시 해방 이후 암살단에게 처단된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음을 우리는 안다. ‘암살’이 추구했던 정의는 이 땅에서 실현되지 못했다. 영화에서 일제의 표적이 됐던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이 해방 뒤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모진 고문을 당하고 북한으로 넘어간 것은 상징적 사례다.


흔히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고들 말한다. 그럼에도 미래를 알고픈 열망과 정반대로 역사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에 너무 게으른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일상에서 한발짝 벗어나 역사를, 정의를, 무엇보다 ‘실현되지 않은 정의’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