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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호 2025년 1월] 기고 에세이

추억의 창: 올드 타이머의 대학로 탐방기

윤재석(화학교육71-75)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올드 타이머의 대학로 탐방기


윤재석
화학교육71-75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오랜만에 대학로엘 다녀왔다.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에 볼일이 있어서였다. 1번 출구로 나와야 할 것을 실수로 4번 출구로 나오는 바람에 옛 서울대 교정이 미니어처로 남아 있는 마로니에 광장에서 잠시 상념에 잠겼다.

1970년대 초에 이 근처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몇 가지 공통점을 공유하기 마련이다. 우선 서울대 대학본부와 문리대가 있던 교정과 대학로를 연결하는 다리를 미라보다리라 불렀고, 대학로를 따라 흐르던 대학천을 센 강이라고 명명했었다. 프랑스 파리를 동경하던 불문과 학생들이 명명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치하지만 재기발랄한 작명이었다.

한편 맞은편 의대 정문(지금은 형체만 남긴 채 폐쇄)으로부터 혜화동 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엔 예나 지금이나 청춘들의 안식처인 학림다방이 건재해 있고, 역시 의대 정문에서 종로5가 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 있던 진짜 중국집진아춘은 이젠 성균관대 쪽, 그러니까 학림다방 쪽 명륜동 비좁은 골목으로 옮긴 지 벌써 14년째라 한다.

그 저녁, 두 곳에서 잠시 예전 일들을 떠올렸다. 우선 진아춘에선 삼선간짜장 한 그릇을 놓고 노닥거렸다. 내 등 뒤엔 연건동 시절의 화려했던 진아춘의 모습이 대형 사진으로 남겨져 있었다. 삼선간짜장은 여전히 맛깔스러웠다.

끼니를 때웠으니 다음으로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긴 곳은 배움의 숲’, 학림(學林). 들어가니 테이블 11개 중 딱 한 곳만 초로의 아줌마 두 명이 앉아 담소할 뿐 나머지는 모두 청춘 남녀들. 이런 분위기 역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광경이다. 나는 생강차를 시켜놓고 옛일을 떠올렸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17-23) 그래픽 디자이너


용두동의 사범대 캠퍼스를 주 무대로 활동했던 나는 이따금 본부와 문리대 캠퍼스를 접수하러 행차하곤 했는데, 그러면 캠퍼스가 왁자지껄해지곤 했다. 절대 조용히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대학본부(예술가의 집’) 한 귀퉁이에 들어 있던 향토개척단 본부에 들러 다가올 방학 때 시도할 농촌활동 계획을 논의하는 한편, 은근한 투쟁 논의를 하곤 했다. 물론 학원가에 출몰하는 중앙정보부 요원이나 동대문서(현 혜화서) 정보과, 또는 대공계 형사들의 날카로운 안광(眼光)을 피해가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안하무인 고성방가를 예사로 내질렀다.

그런저런 시절을 지나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옮겨간 1975년 이후 이곳은 한동안 무법천지가 된다. 불량 청소년들의 아지트로 날이 밝으면 콘돔과 부탄가스 캔이 즐비했다. 오죽하면 1990년대 중반 대학로에 거주하고 있던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 박사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마로니에 공원을 찾았다가 노학자의 진노하는 모습을 목도해야 했을까.

그 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CO)가 이곳을 접수하고 아르코극장을 세우는 등 예술인들의 활동공간으로 조성하면서 어느 정도 정서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있다.

사실 대학로엔 사라진 전설이 또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서울대 의대 및 치대, 성균관대 외에 우석대(현재의 우석대와 전혀 다름)가 있었고, 이 대학이 고려대에 흡수 통합됨으로써 고려대가 의대를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1990년대까지 고려대 의대 캠퍼스가 명륜동에 존재했었다.

각설하고, 대학로는 요즘 정말 다양한 캠퍼스로 군웅할거(群雄割據) 시대에 접어들어 있다. 가장 강력한 예술대학인 한국예술종합학교 명륜 캠퍼스가 옛 국립과학관 서울분원 자리에 둥지 튼 것을 비롯해 각 대학의 예능 관련 캠퍼스가 우후죽순 격으로 산재해 있는 것이다.

예전 문리대 운동장 자리엔 동덕여대, 상명대, 서경대, 한성대 등을 비롯해 생소한 대학의 예술센터가 각기 다른 주제로 자리 잡고 있다. 저 멀리 낙산만이 대학로의 변모를 말없이 내려다 볼 뿐이다.


*윤 동문은 중앙일보 국제부 기자, 노조위원장, 국제부 차장을 거쳐 국민일보에서 국제부장과 논설위원(국장급)을 지냈다. 잠시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시절인 1983타락의 끝으로 제1회 삼성문학상을 수상한 후 지금까지 수다한 콩트를 집필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