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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호 2024년 3월] 기고 에세이

추억의 창: 그때 그곳에 우리가 함께였다

지나 오 성악가·칼럼니스트


그때 그곳에 우리가 함께였다



지나 오(오주영)
성악99-04
성악가·칼럼니스트


“저는 그저 적절한 때, 적절한 곳에 있었을 뿐이에요.”

올해 75세를 맞이한 영국 소프라노 엠마 커크비가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바로크 음악 해석의 선구자로 추앙 받으며, 100개가 넘는 음반을 남겼고, 2007년에는 여왕으로부터 작위까지 받은 이가 어찌 이리 겸손할 수 있을까. 한편,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대가의 인터뷰도 소개해본다. 베를린 국립오페라 궁정가수인 베이스 연광철의 인터뷰 중 정확한 워딩은 아닐 수 있으나 내가 이해한 바는 다음과 같았다. “높은 곳까지 올랐다 해도 그것이 자기 혼자만의 힘만은 아니니, 뻐길 일도 아니요, 설령 거기에 닿지 않았더라도 무시할 일은 아니다.”

위 대가들의 겸손한 자세는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치열하게 삶을 살아냈기에 얻어낸 지혜이자 겸손일 것이다. 그들의 시작 시점에서는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아득히 멀게 느껴졌을 것이다. 혹은 지금의 위치를 상상하는 것조차 사치였고, 그저 하루하루 당면한 과제를 해치우는 데 급급했을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20대의 그들은 지금처럼 찬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과 같은 온화한 아우라가 아닌, 날 선 젊음의 광선을 뿜어냈을 것이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17-23) 그래픽 디자이너


‘대학 시절 추억담’에 대한 원고를 청탁 받고 20여 년의 시간을 다시 감아보니 아득했다. 추억의 서랍을 아무리 뒤져도 우쭐댈 만한 근사한 이야기는 없고, 온통 찌질함 투성이였다. 당시 나는 여드름 피부를 열등감의 요인 중 하나로 갖고 있었는데, 아무리 공들여 화장을 해도 완전한 커버는 불가능했다. 그 시절 아무리 아닌 척한들, 조급함과 미숙함을 감출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여드름은 독일로 유학을 가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특별한 묘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독일 물에는 석회가 많아서 피부를 건조하게 만드는데, 그게 이유였을까? 아니면 그냥 인생의 어떤 때가 된 걸까? 애벌레에서 번데기가 되고 또 나비가 되듯이 애벌레 시절의 점박이 무늬 같은 것이 번데기가 되니 사라졌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보헤미안 예술가들을 그린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에는 아직 애벌레 단계인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시인 로돌포와 화가 마르첼로는 파리의 다락방에서 난방도 없이 손을 호호 불면서도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로돌포가 사랑하는 미미는 토할 듯한 기침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당시 ‘빈곤병’이라고 불렸던 결핵 환자임을 암시한다. 수놓는 직공인 미미가 4막에서 병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당시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렸던 하층민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미미가 죽음을 맞이하는 풍경은 마냥 서럽고 암울하지만은 않다. 친구들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가진 게 변변찮은 그들은 단 한 벌의 외투를 전당포에 맡기거나, 몸에 지닌 장신구를 팔아서 미미를 위한 약과 물품을 마련한다. 이별은 서글프지만 함께여서 견딜만했다.

‘함께’라는 것은 막강하다. 같은 해에 입학을 한 무리는 동기라는 인연으로 맺어져 ‘함께’ 추억을 쌓는다. 비록 그 추억이라는 게 아무리 미화한들, 결국은 찌질했다는 결론에 도달할지라도, 함께였기에 웃으면서 말할 수 있다. 파바로티를, 칼라스를 꿈꾸던 이들은 이제 각자의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서’ 삶을 살아내고 있다. 자주 연락은 못하지만, 또, 이런 말 꺼내기가 매우 면구스럽지만, 이 지면을 빌려 속마음을 끄집어 본다. 그대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는 것을.



*‘버터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라는 독일 언론의 극찬을 받은 메조소프라노 오 동문은 모교 졸업 후 독일 쾰른국립음대와 마인츠국립음대에서 오페라를 전공했다. 마인츠 국립극장에서 오페라 ‘리날도’의 타이틀롤로 데뷔한 후 한국과 독일에서 주역으로 활동했고, 2019년부터 ‘월간 객석’ 필진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지난해 첫 저서 ‘오페라의 여인들’을 출간했으며, 현재 모교 오페라사 강의와 함께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연주·강연 등 왕성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