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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호 2024년 1월] 기고 에세이

추억의 창: 서울대 나와서 대리운전 합니다

김경섭 미술작가·에세이스트

서울대 나와서 대리운전 합니다



김경섭 
조소99-04
미술작가·에세이스트


미술대학 조소과를 2004년에 졸업했다. 현재 본업은 미술 작가이고 그동안 개인전을 11번 했다. 얼마 전에는 '미친놈 예술가 사기꾼'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현대미술이 어려운 이유를 귀신같이 파헤치는 책이라고 자평하며 (타평도 있음) 홍보하고 있다. 그리고 한 3개월 전서부터는 부업으로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할 때 많은 저항이 있었다.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야야 빨리 해라...”
“그거라도 하는 게 낫지!”
...

거의 뭐 이런 생각들 이지 않았을까? 저항이 있었다면 구할 이상은 나의 내면의 저항이었을 것이다. 뭐라도 돈 되는 일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능력 없는 자의 특권의식이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입맛에 맞는 반찬 투정하고 있으면 밥주걱 귀싸대기가 날아올 판이었다. 무능함에 이혼당하고 더욱 궁지에 몰리기 전에 뭐라도 하는 척 액션이 필요했다.

대학 시절을 떠올려 본다.

철없던 학창 시절 학교를 함께 다니며 동문의 우월감과 자부심 스민 눈빛을, 애써 숨기는 뿌듯한 미소 속에 교환했던 동기 형이 있다. 작업하는 척 하다가 역시나 눈 맞으면 허구한 날 석조장에서 돌판에 삼겹살을 구웠다. 술 먹다 말고 그 형이 스피커를 가져와 분위기 죽이는 음악을 틀었다. 으음... 이 음악에는 돌판 사이로 기름 뚝뚝 떨어지는 삼겹살보다는 조각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쌈 입 안에 가득 구겨 넣고 소주 한잔으로 퍽퍽함을 희석시킨 후에 일어나 건들건들 걸어가서 작업 앞에 섰다.

노란 할로겐등의 조명을 받으며 잠깐 자세를 잡으면, 술도 취했겠다 예술을 하는 내 모습이 멋지게 느껴졌다. 공부만 하느라 낭만을 모르는 것 같은 타 대학 학우들에게 좀 재미나게 살자고 말하고 싶었고, 왠지 예술가의 멋을 동경할 것 같은 아리따운 순수 여대생이 내 모습을 한 번 봐주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는 것 같다. 미대 옆 석조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학교 안에서 항상 취해서 눈이 풀려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차고 한심하게 생각했겠지만, 나는 혼자 그 모습이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가장 순진하고 순수했던 나날들 이었으니까.

만약에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 것인가? 음 글쎄... 게으름을 반성하고 좀 더 열심히 살아보려 노력은 해 보겠지만, 가슴 시린 추억들까지 다 도려내기는 싫다. 어차피 불가능한 가정일 뿐인데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허세라도 부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렇게 서울대 뽕에 취해 우리의 밝은 미래를 함께 기대했던 동기 형은, 내가 대리운전을 하게 됐다며 우울해 하자 자기 친구 중에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어떤 친구도 부업으로 한다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열심히 사시는 대리기사님들의 일을 희화화할 생각이 전혀 없고 그 일을 무시하는 것도 분명히 아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당당하려고 애쓰지만 저 깊은 밑바닥에 남아있는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이 모순과 위선을 나로서는 어떻게 완벽히 해결할 수가 없다.

만약 세상이 나에게 다른 일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죽기 전까지 그냥 할 수도 있는 것이지. 하지만 그래도 나는 본업인 미술 작업을 하고 싶다. 아니면 이렇게 글쓰기라도...

어떻게 하면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닌 이 일을 빨리 끝내고, 내가 원하는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움츠리고 숨는 것보다는, 스토리화 시키고 드러내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매우 부끄럽다. 이것은 작가라는 직업이 갖는 태생적 모순이다. 부끄럽지만, 벌거벗고 단 위에 올라가 나를 팔아야 하는 일.

브런치스토리, 블로그와 유튜브에 올렸는데, 다양한 유형의 댓글들이 비 내렸다. 사실 다 예상했던 범주 안이었다. 매체의 특성상 유튜브 쪽의 반응이 더 날 것의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각 플랫폼의 분위기라는 것이 있는데 인간은 분위기에 지배당하는 동물이라, 대세적인 의견이 형성되고 있는 것 같으면 반대 의견을 표출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고, 인위적 검열 없이 그대로 두려 했다. 하지만 초반에 비난과 조롱의 분위기가 먼저 형성되면, 눈치 보면서 욕을 뱉을까 말까 망설이던 사람들도 용기를 얻어 돌 던짐의 행렬에 쉽게 동참할까봐 걱정이 됐다. 그래서 초반에 섬뜩한 기분이 드는 조롱의 댓글을 세 개 정도 삭제하기도 했다. 여론 조작 작업을 살짝 들어간 것인데, 그 일을 하면서 완벽히 공정한 여론이라는 것은 존재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 받으며 변질되어 가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얻어낸 반응들을 크게 추려 보면,
“열심히 사는 당신을 응원한다!”의 긍정적이고 감사한 내용들이 체감 비율로 한 70%정도?...

그리고 부정적 반응 중에 자주 나오는 의견들이,
“대리운전이 어때서? 서울대가 대수냐? 거기 나오면 대리하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냐?”
“근데 왜 자꾸 미대가 서울대를 강조하고 설치냐? 예체능은 좀 빠져야 하는 것 아니냐?”
정도...

옳든 그르든 그런 생각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세상에서, 비웃음을 받더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나를 드러내고 스토리를 파는 일이다. 당연히 모두에게 호응과 이해를 받을 수는 없는 것이고, 싫어하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존재하겠지만 유무형의 +와 -를 합쳐서 최종적으로 그것이 내게 결국 가장 이익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슬슬 일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글을 맺어야 한다.

인생 뭐 있나? 예술이 뭐 별건가?... 어차피 모두가 다 사라질 존재들이지 않나. 조선시대의 노비나 냉혈 주인의 마소로 태어나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오늘 하루 그냥 사는 거지.


*김 동문은 11회의 개인전과 40여 회의 단체전을 연 전업 작가다. 직업 예술가로서 예술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지 항상 고민하고 답을 찾아왔다. 그 결과물로 최근 첫 책 '미친놈 예술가 사기꾼'을 펴냈다. 유튜브 '서울대 나온 대리기사의 삶은 예술(바로가기)'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