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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호 2024년 10월] 기고 에세이

추억의 창: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합니다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변호사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합니다


유재원
(국사98-04·법학03-10)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변호사


영화 해리포터의 주인공을 찾아 다니던 감독은 어느 꼬마를 만나서는, ‘왜 이제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순간 하늘이 두 쪽 나고 번개를 보았다는 느낌을 전하면서 “아! 성서의 계시를 받는 것이 이런 거구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 만남 덕분에, 배우(다니얼 래드클리프)는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라는 바이런의 일화를 다시금 재연하기에 이릅니다.

우리 사람(人間)은 계문강목과속종에서도 가장 세분화된 존재이며 지구마을에서 가장 자유롭고 당당하게 사람 사이에서 살면서도, 긴긴 삶 속에서 죽음까지 서로 만나지 못하거나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분명히 만났겠지만 서로의 방향이 달랐기에 한 시점 동일한 공간에서 있었음에도 서로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대학시절은 기쁘고 소중하면서도 때론 아픈 기억입니다. 행복하면서도 우쭐하면서 하늘이 두 쪽 나고 번개를 보는 느낌도 받았겠지만, 음울한 청년기를 스스로 가슴앓이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보고 싶은 것을 맘껏 보고, 사랑하고 싶은 대상을 넓게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인데도, 알을 깨야 하는 자아는 쉼 없이 고민과 인고를 통해 결국 성숙으로 나아갑니다.

‘독일 명작의 이해(전영애)’라는 강좌는 청강생인 제게 다른 학생들이 진지하고도 열정적으로 발표에 참여하는 모습들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중세사(노명호)’에서는 원고나 대본, 교재도 없이 오로지 매 2시간여 동안 ‘고려’라는 역사 속 나라와 그 중세시대를 정연히 읊어 가면서 화려하게 판서하시던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철학과 미학의 수업들은 몇몇 수강생밖에 없음에도 매 준비에 철저하시던 교수님들의 인상으로 깊이 기억됩니다. 강의실 창문 밖을 내다보며 쉬시던 교수께서 남긴 ‘헌법학원론(권영성)’에 감명받아 감히 불초한 제자가 그 책으로 사법시험까지 도전했던 용기도 새삼 떠오릅니다. 이뿐만일까요.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동기생들, 선후배들과 일으킨 여러 사건들(?) 속에서 새삼 싸우고 화해하고 또 어울리고 흥겨워했었던지요.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17-23) 그래픽 디자이너


떠오르십니까. 동문님들께선 자유를 만끽하던 대학시절에 더욱 많은 만남을 가지셨지요? 입학과 함께, 대학시절 내내, 복학과 졸업을 전후로도 어쩌면 우리들은 서로 많이 만났습니다. 기억 속에 있던 기억 밖이든 그렇습니다. 기억을 들여다 보아도, 쉼 없이 편지, 전화, 메시지를 남기고 여행과 활동을 준비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때에는 캠퍼스가 좁고 불편했습니다. 세상 앞에서 미래 속으로도, 우리는 영원히 계속 함께 있어도 무방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졸업을 하고 학교라는 공간을 떠났습니다. 여러모로의 사정으로 각자 점차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학교는 그 시공간에서 우리를 잡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기억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시인의 말처럼 “바람도 없는 공중에서 고요히 떨어지는 나뭇잎,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우리 기억으로부터 어디로 갔겠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그 많은 약속과 대화들은 또 어디 남아 있을까요. 동료의 풋풋한 모습들과 강단의 엄숙한 가르침들은 과연 우리의 미숙을 어찌 깨쳐주었을까요. 지금 우리는 어느 공간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성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동문님들이 지금 만나는 인연으로 현재의 시공간을 채울 수도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동문님들은 각자 기억 속에서 또렷하게 대학시절의 어느 시점과 캠퍼스공간을 채워놓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시(詩) ‘님의 침묵’中)”

그런데, 어느 날 우연하게도 캠퍼스 생활의 기억에 있었던 누군가를 다시 만나게 되면 그 느낌이, 모세가 성서의 계시를 받거나 하늘이 두쪽 나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합니다. 그런 설렘을 맞이했으면 합니다. 캠퍼스에서 다시 만나든 아니든, 서로 소식을 주고 받게 되는 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서로에게 오랜 기간 잠들어 있던 기억들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으면 합니다. 누구나에게 참고 참아왔던 ‘침묵’을 깨치는 그 순간을 말입니다.


*유 동문은 2003년 사법시험 합격 후 노동 전문 변호사로 활동해 왔다. ‘법률사무소 메이데이’를 설립하고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법교육과 인문학에 관심이 깊어 ‘리걸마인드로 바라본 법률이야기’, ‘인문학 두드림 콘서트’, ‘어린이 로스쿨 시리즈’ 등의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