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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호 2024년 4월] 기고 에세이

추억의 창: 학교 가기 싫다, 집에 가기 귀찮다 

 
학교 가기 싫다, 집에 가기 귀찮다 


김주락
지리04-10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대는 여러모로 가기 쉽지 않다. 먼저 많은 수험생이 선망하는 학교라 입학이 쉽지 않고, 입학하더라도 외진 캠퍼스까지 등교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서울대 가는(입학하는) 방법’ 질문에 ‘2호선 탑승’이라고 응답하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지하철을 타고 오더라도 서울대입구역이나 낙성대역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그곳은 출구 앞에 끝없이 늘어선 캠퍼스 행 버스를 기다리는 새로운 시작점이다. 

학부 시절, 서울 북쪽의 집에서 남쪽 끝 학교까지는 편도 100분 남짓 걸렸다. 입학만 하면 절이라도 하며 다닐 것 같던 수험생 시절의 마음가짐은 매일 계속되는 힘겨운 통학에 ‘대체 왜 캠퍼스를 이 구석에 몰아놓은 건지’에 대한 원망으로 변했다. 만원 지하철을 타고 힘겹게 도착한 입구역에서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등산스틱에 찔려가며 학교에 오는 길이 너무나 고돼서, 집에선 늘 ‘학교 가기 싫다’라고 생각했고, 반대로 학교에 도착하면 그 생각은 ‘집에 가기 귀찮다’가 됐다.

덕분에 학교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오전에 등교하면 퇴근시간이 다 지나고 지하철이 한가해지는 늦은 저녁이 돼서야 귀가했기 때문이었다. 하루 체류시간만 긴 것이 아니었다. 학부와 석, 박사과정을 거치고, 박사후연구원과 강사에 이르기까지 20여 년에 이르는 긴 시간을 관악에서 보냈다.

길지 않은 인생의 절반을 보낸 학교엔 곳곳에 켜켜이 쌓인 추억도 많다. 사회대 학생이었지만 문·이과를 넘나드는 ‘종합학문’인 지리학의 특성상 수업을 듣기 위해 인문대, 사범대는 물론이고 자연대, 공대, 환경대학원 등으로 종횡무진했고, 짧게나마 학보사 기자를 하며, 그렇지 않았다면 존재도 몰랐을 다양한 학내 동아리와 행사를 취재하러 다녔다. 대학원 시절 연구가 잘되지 않아 답답할 때면 셔틀을 타고 서울 시내 전망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302동 옥상에 올라가 마음을 다잡고, 큰비가 내린 다음 날엔 ‘관악의 나이아가라’ 공대 폭포에, 보랏빛 맥문동이 피는 계절엔 건축과 학생들이 만들었다는 한옥 하유재(何有齋)에 가 망중한을 즐기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도심에 있던 학교가 관악산 기슭으로 옮겨오면서 아주 넓은 캠퍼스를 가지게 됐고, 집에서 멀고 교통도 불편한 덕분에 학교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다. 거기에 남들보다 긴 학위과정을 이수하면서 더 오랫동안 캠퍼스 곳곳을 누비고 다닐 수 있었다. 여러 조건과 우연이 겹쳐 ‘관악구 관악로 1’은 인생에서 가장 많은 추억을 쌓은 곳이 됐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17-23) 그래픽 디자이너


학부 시절 언젠가, 정문 앞까지 지하철이 놓인다는 기사가 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당장 공사를 시작해도 졸업 전에 탈 일은 없다며. 대부분에게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캠퍼스에서 20여 년의 시간을 보낸 내겐 틀린 말이 됐다. 박사 졸업 후 여전히 학교에 적을 두고 있던 2022년 봄, ‘상상 속 신림선’이 개통했고, 정문 근처에 역이 들어섰다. 물론 그럼에도 서울대입구역의, 낙성대역의 버스 대기 행렬은 여전히 무시무시하고, 고갯길을 힘겹게 오르내리는 버스 안에서 학생들은 이리저리 부딪히며 등교한다. 미래 언젠가 도심항공교통(Urban Air Mobility)이 상용화되면 서울대 학생들은 더 이상 힘겹게 버스를 타지 않고도 산속 캠퍼스에 다다를 수 있을까. 유니콘 같던 신림선이 결국 개통한 것처럼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니콘의 현실화’와 관계 없이, 갈 곳도, 볼 것도, 할 것도 많은 서울대 캠퍼스에서 생활하는 모든 이들이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를 찾기를 바라본다. 벚꽃잎이 눈처럼 날리는 봄날의 캠퍼스는 또 얼마나 아름다웠나! 



*김 동문은 모교 지리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지리학의 가르침을 따라, 때론 여행으로, 때론 연구를 목적으로 국내외를 부지런히 오가며 ‘관광’ ‘장소’ ‘로컬’을 키워드로 논문과 칼럼 등을 써왔다. 지금은 여느 K-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주중엔 연구실에서 주어진 과업 수행을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주말엔 어디로 놀러갈지를 궁리하는 여행자이자 연구자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