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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호 2020년 11월] 기고 에세이

심상용 모교 미술관장 기고

온라인 타고 흐르는 동문 미술 74년
동문기고

온라인 타고 흐르는 동문 미술 74년



심상용

회화81-85
모교 미술관장


10월 20일부터 11월 20일까지 서울대 미술대학 온라인 동문전이 ‘Art on the line’의 제목으로 열렸다. 그 작품들은 아카이브 형식으로 보존돼 지금도 볼 수 있다. 약 400명의 동문 작가들이 참가하고, 작가별로 3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다니,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한 번에 모든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듯싶다.

작품들은 각 작가의 이름에 따라 가나다 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ㄱ’을 클릭하면, 처음으로 1952년생 강경구(회화73-81)의 대작 ‘흐르지 않는 강’과 마주하게 된다. 관람 동선은 이어 ‘ㄴ’과 ‘ㄷ’을 클릭하는 것으로 대체된다. 낯익은 이름들,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 짧지 않은 관람의 마지막은 1947년 출생해 66년 응용미술과에 입학한 황현숙 동문이다. 그가 출품한 세 점 중 마지막 작품, 그러니까 이 긴 여정의 종착지이기도 한 작품은 Pinching & coiling 기법으로 만든 작품 ‘옹달샘’이다. 우연일까. 전시의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의 주제가 이 전시가 의미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하는 듯하다. 아마도 이 여정은 ‘흐르지 않는 강’에서 시작해 먼 길을 걸어 ‘옹달샘’에 이르는 그것이라는 듯 말이다. 흐르지 않는 강, 앞뒤가 꽉 막혀 고인 웅덩이, 명치를 누르는 듯한 둔중한 체증, 어떻게든 그것을 뚫어낼 때에야 강은 비로소 다시 흐를 것이다.

그것이 강경구의 ‘흐르지 않는 강’의 시대 인식일 것이다. 하지만 이 서사의 결말은 부드럽고 온화한 빛이 감도는, 황현숙의 소담한 그릇 ‘옹달샘’이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한 채 이웃한 세 개의 크고 작은 샘은 이 어려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목을 축여주는 샘물을 담기에 적절해 보인다. 전 인류가 전례가 없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 상황과 마주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와중이기에, 역사와 기억을 다루는 이 전시의 의미는 더욱 새롭다. 디지털 네트워크 체계와 언텍트화 된 일상이 턱밑에 와 있고, 문화와 예술조차 나날이 진화하는 인공지능으로 매개되고, 예측하기 어려운 생태계 위기들이 줄줄이 예고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과 예술창작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도전을 품어야 하는가. 서울대 미술대학의 존재론에는 이 절박한 시대의 요청에 가장 먼저 답하는, 이 민족 공동체의 부름이 내포돼 있다. 최초의 주춧돌이 놓였던 1946년부터 자명했던 그 부름은 흐르지 않는 강 같은 동시대의 예술을 다시 흐르게 하고, 시대의 어두움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목을 축여주는 옹달샘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이 전시에는 서울대 미술대학의 역사와 기억이 새겨져 있다. 공화국과 고락을 함께 해온 지 어언 74년 세월이니, 왜 부침이 없었겠으며 공과(功過)인들 없었겠는가. 하지만, 이 위기의 시간이야말로 모든 것을 떨쳐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도록 스스로를 독려해야 할 바로 그 시점이다.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영감과 재능의 요소를 흐릿하게 하는 것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지성의 터전으로, 지각과 상상력의 비옥한 경작지로, 그래서 세계미술을 이끄는 예술의 미래 인재들의 산실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 이 유구한 역사로부터 들려오는 호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전시는 동문 모두가 고마워 해야 할 수고의 대가로 어렵게 성사되었음을 기억하는 것 또한 마땅하다.
동문 온라인 아카이브 snuar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