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2호 2024년 3월] 뉴스 기획
‘의료 파동’을 보며 깜짝 놀란 것들
김민철 해양86-92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슈칼럼
이슈칼럼
‘의료 파동’을 보며 깜짝 놀란 것들
김민철
해양86-92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번 ‘의료 파동’을 보면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우선 정부가 한꺼번에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했을 때 좀 놀랐다. 불과 4년 전인 2020년 의대 정원 400명 늘린다고 해도 의사들이 들고 일어났는데 2000명 늘린다고 한 것이다. 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서울의대 홍윤철 교수의 연구를 근거로 늘렸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해당 논문을 쓴 학자들도 한 언론 좌담회에서 750~1000명 증원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다음으로 의사들이 너무 쉽게 집단행동을 하는 것에 놀랐다. 의사들은 의대 증원의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환자 생명을 투쟁 수단으로 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의사 파업으로 사망하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 환자들이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정부의 의대 증원 규모와 추진 방식에 동의하기 어렵더라도 환자 치료는 하면서 싸우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또 전공의들 90% 이상이 현장을 떠나면서 남은 환자들을 위한 어떤 배려 또는 조치도 취하지 않은 데 놀랐다. 최소한 응급실·중환자실을 위한 인력은 남는 것이 상식 아닌가. 간호사 등이 주축인 보건의료노조가 파업할 때도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등 필수인력은 유지하고 있다. 공공노조 중 가장 강성인 철도노조가 지난해 9월 총파업했을 때 파업 참여율은 20%대에 불과했다. 두 노조 모두 법에 따라 필수유지인력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이런 업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직접적이고 중요한 국민 생명을 다룬다. 법 이전에 의사라면 당연히 환자 곁을 떠나기 전에 기본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의대 교수들이 제자들을 지키겠다며 집단 사직서를 제출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놀랍다. 전공의들 집단행동으로 많은 병원에서 심각한 진료 공백이 발생했는데,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하면 국민 생명이 위협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교수들이 병원 현장을 떠난 제자들 복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파업에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환자 생명을 지키는 일은 제자를 지키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이 중대한 일이자 의사들의 기본 본분이다. 의대 교수들이 실제로 환자 곁을 떠나면 의사와 스승으로서 본분을 둘 다 저버리는 행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의사들이 왜 이렇게 나오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의사 친구에게 물어보니 “한꺼번에 2000명이나 늘리겠다는데 모욕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이후 나온 의사 인터뷰를 보면 “격무를 버텼는데 돌아온 건 ‘잠재적 범죄자’ 취급”, “낮은 수가 등 필수의료 현장에 누적된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는 말도 있었다. 그렇더라도 정부와 제대로 대화 한 번 해보지 않고 덜컥 집단행동부터 하는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 정부와 의사들이 충돌했지만, 중재 역할을 하는 곳이 없다. 이럴 때일수록 서울대 의대와 서울대병원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서울대 의대 김정은 학장은 이번 사태 초기에 교수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현 시점에서 서울대 의대와 서울대병원의 메시지는 ‘대한민국 국민 건강을 책임진다’여야 한다”고 했다. 다른 의대 또는 대학병원에서 의료계 내부적인 시각을 보인 데 비해 괜찮은 메시지였다.
서울대가 내년도 의예과 입학 정원을 현재 135명에서 15명 늘리면서 이와 별개로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50명 정원의 ‘의과학과’를 의대 학부에 신설한다고 발표한 것도 방향을 잘 잡은 것 같다. 그동안 나라의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 기여할 의사과학자 양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서울대가 그 역할을 앞장서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어가지만 이번 사태가 언제 어떻게 끝날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 입장에서 바라보면 해법 찾기가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해법을 찾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서울대 의대와 서울대병원이 리더십을 발휘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