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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호 2023년 8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러시아 승리 땐 약육강식 세계 될 것

윤영관 외교71-75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전 외교통상부장관 모교 명예교수
관악논단
 
러시아 승리 땐 약육강식 세계 될 것 


윤영관
외교71-75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전 외교통상부장관
모교 명예교수 

러-우전쟁, 자유주의 국제질서 타격
유럽인들 러시아 다음 표적 걱정 
 
작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나치 세력이 서방의 사주를 받아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심복이자 와그너그룹의 수장 프리고진은 그의 주장이 허구라고 비판했다. 프리고진은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취임 때부터 러시아와 합의를 이룰 준비가 돼 있었는데 러시아 측이 협상을 거부했고, 우크라이나 침공은 부패한 군부가 푸틴을 오판하게 만든 결과물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푸틴 대통령은 2005년 4월 의회 연설에서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은 소련의 붕괴”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그때부터 잃어버린 러시아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야심을 갖고, 그에 따라 2008년 조지아를, 2014년 크리미아를, 그리고 2022년에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 유럽인들은 러시아의 다음 표적이 어디가 될지 걱정 중이다. 수십 년간 중립을 지켜온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가입 결정이 그들의 긴박한 상황 인식을 드러내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차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만들어져 지속되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핵심은 국가 간에 영토주권, 자결권을 존중하고 규범기반(rules-based) 질서, 개방적 경제 관계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내 정치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에 기반한 민주주의, 자유, 인권 규범을 준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엔헌장에도 규정된 영토주권과 자결권 존중의 원칙을, 솔선수범해 지켜야 할 안보리 상임이사국 러시아가 노골적으로 유린했다. 

이는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 덕택에, 상대적 소국인데도 주변 대국들의 횡포를 걱정할 필요 없이 경제와 민주주의 성장에 집중할 수 있었다. 1950년 북한의 남침 때에도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정신 아래 미국을 비롯한 16개 참전국이 우리를 도와 함께 싸웠다. 또한 개방적 경제질서 덕택에 국내시장이 작은 한국이 세계 시장을 상대로 무역을 해서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 되었다. 그렇게 볼 때,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켜내는 데 그 어느 나라보다도 앞장서야 할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이 나토의 동쪽으로의 팽창 때문이었다는 설명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는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나토가 러시아의 세력권을 침범했고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논리를 받아들인다? 그것은 구한말 자국의 세력권 확대를 위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던 일본의 제국주의 논리를 인정해주는 꼴이 된다. 강대국 간의 세력권만 챙기고, 그 사이에 낀 소국의 국민들이 스스로의 정치체제나 외교 노선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철저히 무시하는 제국주의 논리를,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 사람들이 인정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무력을 사용해 국경의 변경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원칙을 무시했던 북한의 침략행위마저 인정해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혹자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란 서방 강대국들이 내세운 위선적인 정치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자국이 내세운 원칙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무시했다는 것이다. 일면 일리 있는 지적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또한 좀 더 깊이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2차대전 직후 미국의 경제력은 세계의 절반을 차지했다. 그러한 엄청난 권력을 마음껏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 미국이었다. 그런데도 자국의 권력을 국제무대에서 자의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전제하에,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한 국제 규범과 연합체를 만들자고 앞장섰다. 국력의 대소를 불문하고 모든 국가의 주권은 평등하다는 정신에 따라 다자주의적 국제협력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자유주의 국제질서였고 대표적인 연합체가 유엔이다. 

그런데 그러한 취지로 만들어진 유엔 안에서도 5대 강대국들에게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와 비토권을 준 것은 다자주의라는 이상이 완벽하게 실현되는 세상이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유엔마저도 다자주의라는 이상과 권력정치라는 현실 간의 타협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완벽한 규범적 국제질서가 존재하기 힘든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 우리 한국 사람들은 무엇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 때때로 외교정책의 이중적인 모습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다자주의와 자유주의 국제 규범을 계속 유지하자는 쪽으로 나아가는 미국을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주의는 죽었다”면서 노골적으로 강대국 권력정치에 몰입하는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를 지지할 것인가? 

이라크 전쟁은 미국판 ‘제국적 오만(imperial hubris)’의 결과였다. 그러나 그들은 민주주의의 확산을 말했을지언정, 러시아처럼 스스로의 영토확장을 꾀하거나, 무고한 시민들을 살육하는 전쟁범죄를 저지르거나, 핵 사용을 위협하지는 않았다. 만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미래의 국제질서는 규범이 아니라 힘의 논리가 난무하는 살벌한 약육강식의 세계로 변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