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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호 2023년 2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연금개혁 성공하려면 자동조절 공식 따라야

김상균(사회사업66-70) 모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연금개혁 성공하려면 자동조절 공식 따라야



김상균
사회사업66-70
모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이해관계 복잡해 개혁 합의 난관
여건에 따르는 기계적 개혁 필요
선진국·한국 데이터로 도출 가능

 
현행 국민연금 제도의 근간이 마련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에 ‘국민연금법’이 개정되면서부터다. 이후 24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역대 정부와 국회는 몇 차례에 걸쳐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결과, ‘김대중 법’의 주요 내용은 오늘도 유효하다. 9%의 보험료율과 노령연금 수령개시연령을 2033년까지 65세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예외가 있다면, 소득대체율을 기존의 60%에서 2028년까지 40%로 줄여나가는 2007년 노무현 정부의 ‘개정 국민연금법’이 손꼽힌다. 

지난 24년간 반복된 연금개혁의 실패는 절차상 문제인 ‘수동 방식’에서 기인한다. 수동 방식이란 변경하고 싶은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수령개시연령 등과 같은 수치를 정부나 국회가 먼저 제시하고, 이어서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찬반 논쟁과 협상을 벌인 끝에 합의에 도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합의는 없었다. 그사이에 국민연금의 건전성은 악화일로의 길을 걸었다. 
최근 발표된 윤석열 대통령의 연금개혁 드라이브가 가뭄의 단비로 환영받는 이유다. 희망이 되살아난 것은 천만다행이지만 성공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만약, 이번에도 수동 방식에 의존한다면 또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근원적으로 수동 방식은 개혁이 필요할 때마다 매번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단기성, 고비용 방식이다. 더욱이 ‘숫자 싸움’에 몰입하다 보면 근본 취지가 실종된다. 따라서 개혁에 성공하려면 수동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수동 방식의 유일한 대안은 ‘자동 방식’이다. 문자 그대로 인구변수나 경제변수 등의 변동에 따라 주요 수치가 기계적으로 변하는 형식이다. 물론 여기에는 특정의 함수공식을 관련법에 내장시켜야 하는 힘든 과정이 수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아닌 공식이 숫자를 제시하기 때문에 수동 방식의 약점을 비껴갈 수 있다. 자동조절 공식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적립배율, 목표연한 그리고 함수공식이다. 

노후에 받을 연금을 상상하면서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기금 소진 뉴스는 청천벽력이다. 이들을 안심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기금에 돈이 넉넉히 쌓여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적립배율이 그런 기능을 하는데, 특정 연도 말에 기금이 보유하고 있는 금액을 그해에 지급된 연금 총액으로 나눈 값이다. 예컨대, 어느 해 말에 100조원의 기금이 적립되고 그해에 연금으로 나간 돈을 모두 50조원으로 예측했다면 적립배율은 2가 된다. 적립배율의 크기는 1에서 5까지 나라마다 다양하다.

적립의 목표연한이란 향후 몇 년까지 기금을 쌓을 것인가를 표시하는 수치이다. 연한 설정의 한 가지 방법은 최초 가입 연령자의 기대여명에 연동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의 생전에는 기금 고갈이 안 일어난다. 일례로, 현재 18세 젊은이의 기대여명이 88세라고 가정한다면, 목표연한은 70년이 된다. 목표연한 역시 나라에 따라 적게는 30년에서 많게는 100년까지 여러 형태가 존재한다. 

함수공식이란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수령개시연령 등의 변동 값을 인구변수, 경제변수 등 주요 변수의 변화에 따르도록 설계한 방정식이다. 이 공식을 이용하면 매번 법 개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도 물가상승률에 따라 연금액이 자동으로 인상되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자동화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새로운 공식의 개발에는 다수 선진국들의 선행 사례들을 참고하면서 지난 30여 년간 축적된 우리의 고유 데이터를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자동화의 최대 장점은 인력 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 공장이나 농장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생산성은 오히려 더 높다. 마찬가지로 연금개혁에서도 자동화 장치를 활용하면 힘을 덜 들이고도 개혁을 반복할 수 있다. 문제는 최초의 자동화 공식에 합의하는 과정이 험난하다는 점인데, 이 또한 개혁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면 감수해야 한다.

연금개혁의 세계사를 보면, 20세기 후반에 제1세대 기술이 보급되면서 장기 재정계산 공식이 등장하였고, 그에 따라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수령개시연령 등에 대한 정기 점검이 의무화되었다. 그러나 정기 점검만으로는 개혁이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제2세대 기술인 자동조절 기제가 법제화되는 21세기가 열렸다. 그리하여 예측가능성과 건전성은 높아졌고 개혁의 사회적 비용은 줄어들었다.

지난 20여 년간, 다수의 선진국들이 제2세대 기술인 자동 방식으로 갈아탔지만, 우리는 오늘도 제1세대 기술인 수동 방식에 갇혀 있다. 이제라도 따라가려면, 이번 개혁에서 자동 방식으로 ‘환승’해야만 한다. 연금개혁에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 있다. 지금 윤 대통령은 필요조건인 개혁의지를 갖추었다. 충분조건까지 확보하려면 ‘국민연금법’에 자동조절 공식을 장착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