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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호 2023년 12월] 문화 신간안내

화제의 책: 박상설의 자연 수업 “산에 나를 버렸더니 산이 나를 살렸다”


“산에 나를 버렸더니 산이 나를 살렸다”


박상설의 자연 수업
박상설(기계공학49졸) 캠프나비 호스트
나무와달


한국을 대표하는 오지 탐험가이자 캠핑 선구자인 박상설 동문의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토네이도, 2014)가 ‘박상설의 자연 수업’으로 새롭게 복간됐다. 생전에 남긴 단 한 권의 저서가 절판돼 아쉬움이 크던 차, 2021년 겨울 93년간의 지구별 여정을 마무리하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박상설 동문을 추모하는 시간 속에 복간 작업이 이뤄졌다.

‘박상설의 자연 수업’은 저자가 손수 검수한 초판본 구성을 훼손하지 않되, 저자가 직접 쓴 글과 촬영한 사진만으로 판면을 재구성해 저자의 고유한 세계가 심플하게 드러나도록 집중했으며, 설산 트래킹을 즐겼던 만년의 삶을 기념해 화이트 에디션으로 단장했다.

박 동문은 익히 알려졌듯 자연주의, 심플라이프로 대표되는 아웃도어 세계의 대가다. 아울러 몸으로 뒹굴고 체험한 세계를 오랫동안 곱씹어 사유하고 기록하는 일에도 독하리만치 바지런했다. 십수 년 동안 ‘아시아엔(THEAsiaN)’ 등의 매체에 자연주의 칼럼을 기고했으며, 오대산 주말레저농원 ‘캠프나비’에서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숲속 인문학 강좌를 열정적으로 펼쳤다. 그런 그가 단 한 권의 저서만 남긴 이유는 무언가를 새로 짓고 만드는 일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는 않는지 스스로를 경계하는 실천 인문학자였기 때문이다.

2014년 86세 나이에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출간했을 때, 삶 자체가 오지 탐험의 궤적이라 할 정도로 드라마틱하거니와 생사의 기로에서 자연에 대한 회심을 고백하는 단호하면서도 진정 어린 글에 수많은 독자가 환대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조선일보와 신동아를 비롯해 주요 일간지에 전면 인터뷰 기사가 실렸고, KBS 등의 방송국에서 아흔 살 노인의 백패킹 현장을 밀착 취재해 다큐로 방영했으며,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에서 등산학교 및 숲속 인문학 강좌가 빗발쳤다. 노구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 사람들의 무수한 요청을 기꺼이 소화하며 눈을 감는 날까지 캠프나비를 찾는 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준 박상설, 그의 저서에 ‘자연 수업’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붙인 이유다.

박 동문은 ‘월든’을 쓰기 위해 숲속 오두막에 은둔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는 결이 다르다. 그는 도시와 시골을, 문명과 자연을 동시에 누리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편을 고민한 이 시대 유일한 자연주의 실천가다.

아울러 말과 글로 가르치려 들기보다 직접 행동하여 보이고 실천하여 증명하는 일에 필사적이었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모든 말과 글이 오늘 우리에게 귀감으로 남았다. 참 스승의 교육은 이렇게 스스로를 증명한다. 십수 년 전부터 캠핑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주말농장 및 세컨하우스 등이 주요 여가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어느 때보다 박 동문의 통찰이 긴요해졌다. “산에 나를 버렸더니 산이 나를 살렸다” “숲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운다” “텐트 안은 인생과 철학을 품은 우주다” 등의 단말마는 책상머리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야지에 뒹굴고 야산을 오르내리며 몸소 체득한 우주적 깨우침이다. 위기의 지구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나침반이요 망원경이다.

글=나무와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