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61호 2024년 12월] 문화 신간안내

화제의 책: 임사 체험, 짧은 사랑, 긴 우정…이길여 총장의 첫 고백

이길여 회고록 길을 묻다


임사 체험, 짧은 사랑, 긴 우정…이길여 총장의 첫 고백

이길여 회고록 길을 묻다
김충식 가천대 특임부총장 대담
샘터 


“총장님도 영구 비자를 받기 위해 귀국하셨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지금 이야기는 처음입니다.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어요. 누가 물어본 적도 없었으니까요.”

최근 발간된 ‘이길여 회고록-길을 묻다’에서 이길여(의학51-57) 가천대 총장은 미 유학 후 한국으로의 귀국이 영구 비자를 따는 데 도움이 됐기에 돌아온 마음도 컸다고 고백한다. 

대담집에는 이 시대 최고 여성 리더이자 원로로 존경받는 이길여 동문이 그동안 어디에서도 말한 적 없는 이야기들이 눈길을 끈다. 맨해튼에서의 짧은 사랑, 다이빙대에서 잘못 입수해 죽음 가까이 갔던 일, 박지홍 동문과 오랜 우정, 경원대 인수 과정에서의 마음고생, 결혼에 대한 생각 등 그동안 언론 인터뷰나 자서전 등에서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남산의 부장들’의 원저자 김충식 가천대 특임부총장의 탁월한 대담 솜씨가 말하기 어려운 개인사를 끌어내는 데 한몫했다. 김충식 부총장은 동아일보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고 일본 게이오대에서 미디어저널리즘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언론인이기도 하다.  

2020년 9월 22일부터 2022년 9월 14일까지 성남 가천대 글로벌캠퍼스와 인천 가천의대 길병원, 그리고 인천 청량산 기슭에 있는 이 동문의 자택 등을 오가며 기록한 이 책에는 이길여 동문의 삶과 철학이 500여 쪽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책 발간 실무진들은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의 학제, 의료 제도, 관계 인물, 주요 사건 사고 등의 참고 자료를 마련하고, 실시간 검색을 통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비롯해 실명·직책·지명 위치 등을 파악해 이 동문이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선명하게 밝혀준다. 이런 노력이 내용을 풍성하게 하며 이길여 동문을 통해 본 ‘근현대사’로도 읽히게 한다. 출판사인 샘터의 적절한 사진 배치 등 유려한 편집은 가독성을 한층 높였다. 

책은 일제 강점기, 해방과 분단, 6·25 전쟁과 휴전, 전후의 폐허와 가난 등을 몸으로 겪으며 느꼈던 이 동문의 증언들이 생생하다. “일제강점기 초등학교의 모범생이었기는 한데 지금 생각해 보면 먹먹한 일입니다. (초등학교) 급장이어서 그랬던 것 같기는 해도 저는 ‘기미가요(일본 국가)’를 열창했습니다. 아이들이 납작 엎드리도록 하는 교육을 받은 거예요.”(p.63) 인천 구월동에 종합병원을 지을 당시 조직 폭력배가 연루된 업체와의 거래로 맘고생 했던 이야기도 기록돼 있다. 

병원 일밖에 모르고 자기 생활이란 건 전혀 없었던 그가 40대 중반 극도의 허무감이 찾아왔을 때 이를 극복한 방법은 번아웃에 빠진 사람들이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한 내용이기도 하다. 
“저는 인생의 어떤 고비나 숙제를 맞이하게 되면 사흘 밤낮을 안 자고 안 먹고 골똘히 생각만 합니다.(중략) 그럴 땐 내가 밤새도록 가시덤불 정글 속을 맨손으로 헤집고 빠져나오며 피투성이가 된 느낌이 들어요.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난한 고행길을 헤쳐 가며 화두를 좇다 보면, 막막한 어둠이 걷히면서 새벽같이 밝아오고, 내가 기어이 정글을 넘어왔구나, 하는 어슴푸레한 해답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러면 해결책을 찾은 거에요.(p.234)”

이길여 동문은 동창회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 총동창회 부회장으로 오랜 시간 봉사하기도 했지만, 의대동창회 첫 여성 회장으로서 그가 남긴 업적은 눈부시다. 동창회관인 함춘회관 건립, 함춘대상 및 장기려의도상 제정, 함춘미술전 등 현 의대동창회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그의 건강 비결도 짧게 나온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