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8호 2024년 9월] 뉴스 본회소식
“미국 대선, 세계 권력 구조의 변곡점으로 바라보라”
윤영관 (외교71-75)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부 장관
조찬포럼
“미국 대선, 세계 권력 구조의 변곡점으로 바라보라”
윤영관 (외교71-75)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부 장관
미 대선 후보 판세·전략 설명
경영자, 안보리스크 주시해야
“정치의 세계에서 핵심은 권력입니다. 국제 정치도 마찬가지죠. 그 맥락에서 미국 대선을 보시면 재밌을 겁니다.” 9월 12일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2024년 미국대선: 전후 국제질서의 변곡점’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조찬포럼.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자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인 윤영관 동문이 강연자로 나섰다. 그는 미국 대선을 설명하기에 앞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권력 배분의 역사부터 개괄했다. 흥미진진하지만 마냥 흥미롭지만은 않은 이번 미국 대선의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1945~1991년)와 1극 체제(1991~2008년)를 거쳐, 2008년부터 지금까지는 러시아를 껴안은 중국의 도전으로 미국 주도 1극 체제가 약화된 상태에 놓여 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미국 경제가 휘청이는 틈을 타 중국이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에 도전하며 ‘다극 체제’를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란은 하마스·헤즈볼라·후티 반군 지원과 이스라엘 공격으로, 북한은 러시아와의 동맹 부활과 무기 지원으로 ‘권위주의 진영’에 진입했다. 미국의 대응은 대통령마다 달랐다.
“오바마 대통령은 두 번의 전쟁과 경제 위기를 겪으며 완전히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반응해야 할 때 제대로 반응하지 않아 중국, 러시아에서 미국이 리더십을 행사할 의지가 없다고 생각하게 됐죠.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적인 미국의 외교 라인과 다른 사람입니다. ‘고립주의’를 주장했어요.”
미국은 지정학적으로 태평양과 대서양이란 자연 장벽을 뒀다. 외침 걱정 없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우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고립주의 전통의 밑바닥에 있다. 이후 취임한 바이든은 트럼프와 정반대로 미국의 리더십 아래 규범 기반의 국제 질서를 회복하려 했다. 다음 대선에 공화당 후보 트럼프가 재등장하고, 민주당 후보 해리스가 강하게 맞붙으며 미국 외교 노선은 중요한 변곡점을 맞게 됐다. “고립주의로 되돌아가느냐, 국제 질서에서 미국이 리더십을 유지하느냐”의 기로다.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동맹국은 미국을 등쳐먹는 나라들이란 생각이 강해요. 동맹국과 관계가 약화되면 권위주의 세력은 더 강화되고 영향력이 커지겠죠. 해리스가 당선된다면 미국이 국제관계에 관여할 겁니다. 외교적으론 꼭 필요한 경우에만 군사적으로 개입하거나 하면서 절제된 외교 정책을 펼쳐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유지하려는 정책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고요.”
강연 당일 마침 해리스와 트럼프가 처음 맞붙었던 대선 토론 소식이 국내에도 대서특필됐다. 낙태 문제와 민주주의 유지에선 해리스가, 경제와 이민 문제에선 트럼프가 우위를 점하며 승리를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 결국 우리가 궁금한 것은 ‘누가 되든, 한국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북한과 협상을 재개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남북한 간, 미국과 북한 간 고조된 긴장을 약화시킬 수 있겠지만, 한국의 안보 우려를 얼마나 잘 반영할지는 미지수다. 윤 동문은 “트럼프란 사람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국내 정치를 상당히 의식하는 사람이에요. 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약하고요. 한국이나 동맹인 일본의 안보를 소홀히 하면서 미국을 위협하는 ICBM만 제거하고, 북한은 핵을 동결하는 수준에서 협상하고 제재를 풀어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단거리, 중거리 미사일의 위협에 노출된 상태가 지속되겠죠.” 철저히 ‘거래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인물인 만큼, 주한 미군, 한미동맹 등에서 변화도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 후보는 그 누구보다도 개인 간 인간관계에 많은 영향을 받기로 정평이 났습니다. 인간 대 인간 관계를 우리 쪽에서 어떻게 잘 활용하고 관리할지 연구해야 해요. 아베 전 일본 총리가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맨해튼으로 달려가 골프채를 선물하고 왔습니다. 당시 한국 사람들은 ‘그것 참, 체면이…’ 하는 반응이었지만, 사실 그러한 노력 때문에 한미, 나토 관계가 흔들릴 때도 미일 관계는 괜찮았죠. 어떤 면에선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리스가 당선되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하고 한미 협력과 한미일 3국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역시 한국이 우려할 점은 있다. 오바마, 바이든 정부를 이어 ‘전략적 인내 버전 3.0’이 나오지 않겠냐는 것이다. 중동 전쟁, 중국 문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 산적한 과제에 밀려 한반도 이슈를 등한시할 가능성도 있다.
윤 동문은 “한국은 한미일 삼각관계를 유지하고, 그것을 발판 삼아 전 세계 외교를 펼치는 동시에 경제 관계가 깊고 긴밀한 중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최대로 유지해야 한다. 이 두 개를 동시에 잘해야 훌륭한 외교”라고 말했다. 중국에 사업체를 둔 한 동문이 “중국에선 어떤 자세로 일을 해야 할까” 묻자 “미중은 결국 뿌리 깊은 패권 전쟁 중이다. 조만간 관계가 좋아지리라곤 절대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기업가들에게 주문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국제관계에서 정경분리 원칙이 유지됐어요. 정치는 정치고, 경제 수익을 만들 수 있다면 어디든지 가도 된다는 고정 관념이 있었지만 이제 완전히 깨졌습니다. 잘 봐야 합니다. 한국, 미국과 잘 지내는 나라인지, 못 지내는 나라인지. 이념적 안보적으로 충돌하는 나라인지, 아닌지. 잘 구분해서 리스크를 피해야 제대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어요. 기업 경영자라면 정치 리스크, 안보 리스크 분석 능력을 강화시켜 두시길 바랍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