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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호 2023년 6월] 문화 신간안내

화제의 책: 한국인 최초 아프리카 추장 된 과학자



한국인 최초 아프리카 추장 된 과학자

작물보다 귀한 유산이 어디 있겠는가
한상기(농학53-57) 조지아대 명예교수
지식의날개


한상기 동문의 90년 인생을 담담하게 돌아보는 자서전 ‘작물보다 귀한 유산이 어디 있겠는가’에서는 한 박사의 투철한 사명감과 함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난다.

한 동문은 초등학교 교과서와 베스트셀러 동화를 통해 ‘까만 나라 노란 추장’으로 어린 세대에 더 잘 알려진 세계적인 식물유전육종학자. 안정된 국립대 교수직을 버리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소 초빙까지 뿌리치고는 38세 되던 1971년 아프리카로 날아갔다. 나이지리아 국제열대농학연구소(IITA)에서 카사바, 얌, 고구마 등 구근작물과 식용작물의 품종을 개량하여 내병성과 수확량을 늘리는 데 청춘을 바쳤다.

무려 50명 가까운 아프리카 농학도들이 석·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외에도 단기 과정을 통해 각국에서 온 700여 명의 농업인들을 훈련시켜 보내, 그들이 고국에서 1만여 명의 현지 지도자들을 배출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한 동문은 그들 손에 병충해에 강하고 소출이 많은 신품종을 들려 보내 아프리카 전역에 증식·보급하도록 했다. 그 덕분에 한 동문 연구팀이 개량한 카사바 품종은 현재 41개 아프리카 국가에 보급되어 있고, 고구마 품종은 66개 국가, 얌 품종은 21개 국가, 식용바나나 품종은 8개 국가에서 재배되어 굶주림을 해소해 주고 있다.

아프리카 식량문제를 해결한 한 동문을 세계은행에서는‘아프리카 조용한 혁명의 기수’라고 칭송했고, 나이지리아 이키레읍 주민들은 한 동문을 ‘세리키 아그베(농민의 왕)’라는 칭호의 추장으로 추대했다.

자서전에서 한 동문은 “나이지리아 국민들의 배고픔을 덜어준 일로 제 이름이 신문 1면에 실리는 일은 아주 큰 영광이지만,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더 이상 배고프지 않게 된 것 그 자체가 오히려 더 큰 기쁨이고 행복이었다”고 밝혔다.

한 동문은 이 책에서 자신을 농학의 세계로 인도해 준 세 분의 은사님에게 특히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있다. 잡초학을 연구하던 시절 식물육종학을 공부할 수 있게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교환교수의 기회를 준 지영린 박사,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한 박사의 학문 세계를 한 단계 성장시켜 준 지도교수 존 E. 그래피우스 박사, 그리고 학문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가르침을 주신 성천 류달영 박사다.

“한 군이 단순한 농학자가 아니라 인생을 관조하고 따뜻한 인류애를 깊이 품은 것을 더없이 고마워했네. 나는 한 군의 값진 삶을 더없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네.” (성천 류달영 선생님 편지 중, 205쪽)

한편, 한 동문은 당시 아프리카행을 선택하며 희생해 준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도 표현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연구소 은퇴 후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아이들과 손주들 곁에서 신앙에 충만한 시간을 보내다가 2013년 치매에 걸린 아내를 보살피기 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젊은 시절 아프리카 식량문제를 해결하여 사람을 살리는 일에 몸 바쳤던 한 박사는 이제 한국에서 소중한 가족을 보살피는 일에 헌신했고, 2020년 9월 아내를 먼저 보냈다. 현재 수원 광교에서 페이스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