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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호 2024년 6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땅에 빚지지 마라, 언제가는 땅이 이자를 요구해 올 것이다”

한상기 (농학53-57) 작물유전육종학자

동문을 찾아서

땅에 빚지지 마라, 언제가는 땅이 이자를 요구해 올 것이다


한상기
(농학53-57) 작물유전육종학자

아프리카 기근 해결에 젊음 바쳐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헌정

 

한국인 최초 아프리카 추장 칭호

알기 위해 매일 꿈도 기록

 

527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헌정식에서 한상기(농학53-57 91) 동문이 대통령명 증서를 받았다.

과학기술유공자 지정은 과학기술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큰 과학기술인을 선정해 예우·지원하는 제도다. 2023년까지 총 85명이 지정됐다.

한상기 동문은 초등학교 교과서와 베스트셀러 동화를 통해 까만 나라 노란 추장으로 어린 세대에 더 잘 알려진 세계적인 작물육종학자다. 안정된 모교 교수직을 버리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소 초빙까지 뿌리치고는 38세 되던 1971년 아프리카로 날아갔다. 나이지리아 국제열대농학연구소(IITA)에서 한 동문은 카사바, , 고구마 등 구근작물과 식용작물의 품종을 개량해 내병성과 수확량을 늘리는 데 청춘을 바쳤다. 무려 50명 가까운 아프리카 농학도들이 석·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고, 12명에게 포스닥 과정에서 수련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나이지리아 이키레읍 주민들은 한 동문을 세리키 아그베(Seriki Agbe 농민의 왕)’라는 칭호의 추장으로 추대했다.

67일 한상기 동문을 수원 광교 자택 인근 식당에서 만났다. 한 동문은 얼마 전 낙상으로 보행이 조금 불편했다. 그럼에도 지하철 입구까지 기자를 마중 나와주고, 후배에게 밥을 꼭 사줘야 한다며, (수원에 왔으니) 갈비 맛집으로 이끌었다. 보청기를 두고와 대화가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답은 명료했다. 미진한 답을 보충하라며 최근 출간한 아프리카 격언집을 비롯해 작물보다 귀한 유산이 어디 있겠는가’, ‘착한 꿈을 꾸면 착하게 산다’, ‘작물의 고향등 네 권의 책을 건넸다.

-과학기술유공자 선정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할 따름이죠. ‘럭키한 사람입니다. 삶을 뒤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행운 아닌 게 없습니다. 신께 감사합니다.”

-작물육종학자의 길을 걷게 된 동기는 어떻게 되십니까.

어릴 적부터 자연과 식물에 관심이 많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어른이 되면 우장춘 박사님과 같은 사람이 돼서 배고픔을 해결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 목표가 분명해 농학과를 입학했지요.”

-모교 교수로서 우리나라 농업을 위해서도 할 일이 많았을 텐데, 나이지리아로 가셨습니다.

한국에 남아 우리나라 농업발전에 기여하지 못한 점은 지금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당시 한국의 연구 환경이 너무 열악했고, 도전적이지 못했습니다. 내가 배운 식물유전육종학기술이 긴요히 쓰일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그 해답이 아프리카에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가지 마라고 하셨죠. 아내, 자녀들도 탐탁지 않아 했고요. 큰딸은 후배 교수에게 맡기고 세 남매를 데리고 갔지요. 나이지리아가 내전 직후라 치안도 불안하고, 말라리아를 비롯해 여러 가지 풍토병에 걸려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다행히 국제열대농학연구소는 포드재단과 록펠러재단에서 든든하게 지원하던 곳이라 생활 환경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큰딸을 돌봐주었던 김광호(농학61-65), 이석순(농학62-66) 박사에게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 인사 전합니다.”

한 동문은 국제열대농학연구소에서 23년간 하루도 결근 없이 구근 작물 개량 연구에 매달렸고, 지구를 20바퀴 돌며 세계 8대 작물 중 하나인 열대성 카사바의 내병다수성 품종 등을 개량해 냈다. 당시 나이지리아 재래종 카사바는 병충해에 약해 쉽게 쓰러지고 수확량이 저조했다. 카사바는 25개 나라 8억명이 주요 식량으로 삼는 주요 작물인데 우리나라 고구마와 비슷한 뿌리 작물이다. 말린 가루를 데운 물 등에 반죽해 먹는다. 버블티에 들어가는 타피오카가 카사바 뿌리에서 추출한 녹말이다. 소주 제조에도 타피오카를 쓴다.

527일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헌정식서 대통령명 증서를 받았다. 오른쪽은 카사바 모습.

-카사바의 내병다수성 품종 개량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

카사바 원산지인 브라질 캄파나스에 가서 카사바 재래종과 야생 근연종의 종자를 도입했습니다. 브라질에서 도입한 카사바 야생 근연종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병에 강했습니다. 이 야생종부터 내병성을 도입하고자 카사바 재래종과 교잡했습니다. 소위 이종간 교잡을 실시한 거죠. 또 그 차대를 재래종과 교잡했고 거기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에 강한 개량 카사바가 나왔습니다. 아주 특별한 행운이었습니다. 한 소스에서 두 병에 대한 저항성을 얻을 수 있었고 수량과 품질도 좋은 계통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연구에 집중하다 보면 가끔 이런 선물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추장 칭호까지 얻으셨죠.

영광스러운 일이죠. 나이지리아 요루바족 이키레 읍이 꽤 큽니다. 그곳의 추장으로 추대되어 세리키 아그베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현지어로 농민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요루바족은 자신의 얼굴을 칼로 긁어서 상처를 내는 방법으로 서로가 형제자매라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렇게까지는 안 했지만, 저도 추장이 되면서 그들과 가족이 된 셈입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에게는 평생 많은 기회가 옵니다. 그 기회를 잡는 것은 본인 자신입니다. 좋은 기회를 잡으려면 노력하면서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포착하는 지혜와 결단을 내릴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또 희생을 각오해야 하고요. 저는 운 좋게 그것을 잘했다고 봅니다.”

-나이지리아에서 은퇴 후 미국으로 가셨는데, 한국에는 언제 오셨나요?

“2013, 아내의 치매 요양을 위해 왔습니다. 임자는 20209월 먼저 저세상에 갔고요. 수원에 큰딸이 살고, 한국에 있을 때 오랫동안 거주했던 곳이기에 이곳으로 왔습니다.”

-한국에 오셔서 책을 많이 집필하셨습니다. 내용도 묵상집부터 학술서까지 다양합니다.

시간이 많았고, 기록한 노트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노트가 200권이 넘거든요.” 그는 나는 나이고 싶다’, ‘신비의 땅 아프리카’, ‘아프리카 사람, 아프리카 격언집’, ‘아프리카, 광야에서’, ‘500년간 잊혔던 뿌리와 정신 찾다’, ‘작물의 고향등을 집필했다. 그의 책 중 착한 꿈을 꾸면 착하게 산다는 꿈꾼 내용 600개를 기록한 책이다. 그 꿈을 붙잡기 위해 침대 옆에 종이와 연필을 두고 꿈꾼 즉시 기록해 뒀다. 90이 넘었지만, 페이스북을 통해 일상을 기록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꿈을 기록하는 이유가 뭡니까.

심리학자 칼 융이 꿈은 사람의 심연에서 나오는 것이라 했지요. 꿈의 세계를 모르면 일생의 절반을 모르는 것 이라고 생각해요. 기록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최근 아프리카 격언집도 냈지요.

예전에 썼던 것을 보완했습니다. 아프리카에는 문자가 없어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들의 고유한 철학을 기록으로 남겨 전수한 것이 없어요. 그러나 그들에게도 원천적인 깊은 철학이 있습니다. 그 철학이 자자손손 구전돼 내려온 아프리카 격언에 담겨 있습니다. 얼마 전 한-아프리카 정상회담도 하지 않았습니까?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데 격언집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저의 경험으로 아프리카는 매우 높은 수준의 정신과 영적 세계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순수함도 매우 높습니다. 현명한 사람들이라 현대인보다 훨씬 더 참된 행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개할 만한 격언이라면.

“‘땅에 빚지지 마라. 언제가는 땅이 이자를 요구해 올 것이다.’ 로버트 맥나마라 전 세계은행 총재는 이 격언을 인용해 아프리카 대륙의 지속 가능한 개발과 경제 성장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강조했지요. ‘빠르게 가고 싶다면 혼자 가고, 멀리 가고 싶다면 함께 가라는 격언은 널리 알려진 격언 중 하나지요.”

-구순을 넘기셨는데,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많이 걸으려고 노력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노인복지관에서 배운 단전호흡도 30분간 하고요. 모레 고등학교 동기 네 명과 점심을 하는데, 여기서 두 정거장 지하철 타고 가야 해요. 충분히 갈 만합니다.”

-젊은 농학도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가 작물을 재배하고 수확할 수 있는 농경지가 점점 줄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풍족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변화된 기후, 비옥함을 잃어버린 토양, 병해충 등으로 식량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후배 과학자들에게도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식량위기에 대한 진지하고 간절한 연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김남주 기자

 

1933년 충남 청양 출생 모교 농과대학(농생대) 학사·석사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식물유전육종학 박사 전 모교 농과대학(농생대) 교수 전 국제열대농학연구소(IITA) 부장 나이지리아 이키레읍 추장(농민의 왕) 전 미국 코넬대학교 명예교수 전 미국 조지아대학교 명예교수 영국 기네스(Guinness) 과학공로상 영국생물학회 펠로우 미국작물학회 펠로우 네덜란드 농업 생태계 환경 학술지 편집위원 인도 구근작물 학술지 편집위원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우수동창인상 자랑스러운 대능인상(대전고) 국제구근작물학회 회장 국제원예학회 최고위원회 위원 스웨덴 국제과학재단(IPS) 과학자문위원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 대한민국 건국대학교 상허대상 대한민국 농업기술 명예의 전당에 헌액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청주 한씨 참의공파 종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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