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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호 2023년 1월] 기고 에세이

추억의 창: 나를 키워준 것은 9할이 관악



나를 키워준 것은 9할이 관악



최의창
체육교육82-86
모교 체육교육과 교수


강원도 사북이 고향이었던 나는, 인왕산 자락의 이모님 댁에서 서울 생활을 했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빈곤했던 나에게 관악에서의 공부와 생활은 신세계 체험, 바로 그것이었다. 교내외에서의 시위는 일상사였고 휴강과 결강도 빈번했지만, 강의들은 그럭저럭 이루어졌고 나는 그것들로 안팎으로 비어있던 나를 채워나갔다. 시인 서정주는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던가?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나를 키운 건 9할이 관악”이라고.

관악에서의 배움은 행복이었다. 교양수업도 즐거웠지만, 체육과였던지라 스포츠 실기수업이 가장 재미있었다. 축구와 육상은 대운동장에서, 하키는 경영대가 들어선 작은 운동장에서, 야구는 실내체육관 자리에서, 양궁은 학군단 옆 간이운동장에서, 농구와 배구와 체조는 간이체육관에서, 테니스는 운동화를 누렇게 물들이던 클레이 코트에서 배웠다. 관악캠퍼스 곳곳의 운동장들을 구석구석 오가며 나는 이십대 초반을 진하게 꾹꾹 눌러 썼다.

수업 이외에 테니스부, 수영부, 배구부에서 활동하였다. 아마추어로 여러 운동부에 동시 참여가 가능했던 것이 관악의 장점이었다. 테니스는 대학 2학년에 시작하였으나, 가장 열심을 다하여 대학원 때 B조 복식 우승의 영예도 맛보았다. 수영부에서는 대회에 나갈 실력까지는 못되었지만 모든 영법을 배울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가졌다. 배구부에서는 몇몇 4학년이 의기투합하여 대학배구대회에 여러 차례 참가하였고, 중위권 입상의 뿌듯함을 누릴 수 있었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 4학년) 재학생


대학 시절 배운 스포츠는 조지아대학 박사유학 시 수업 조교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교양체육으로 배드민턴과 배구를 가르쳐 학비와 생활에 결정적 도움을 받았다. 유학생들과는 밤낮과 주말 없는 테니스 모임으로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달래며 체력과 우정을 쌓았다. 귀국 무렵에는 애틀랜타 교포들의 후원으로 주변 남부 여러 주의 대학들까지 참가하는 친선 테니스대회에도 참가하였다.

1982년 입학 당시 체육은 사회적으로 괄시받던 분야였다. 상전벽해라던가. 21세기 초 지금 대한민국의 어느 국민이 스포츠를 업신여기거나 천시하는가. 4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는 핵인싸 분야가 되었다. 관악의 교양체육은 수강 신청 시 광클릭 재능이 필요한 최고 인기 수업이며, 50여 개 이상 되는 운동부는 넉넉한 회원들로 늘 북적인다. 타 대학에도 흔치 않은 치어리딩과 피겨스케이팅 동아리까지 있다.

“학창 시절에는 국·영·수로 살았는데, 중년 이후는 체·음·미로 살아요”라는 말이 유행이다. 체육활동에 대한 때늦은 관심과 재능을 발견하고 열심인 중년들이 많아진다. 이렇게 좋은 운동을 왜 어렸을 때부터 배워두지 않았는지 만시지탄을 토로한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사람들과의 교류와 소통을 위하여 스포츠가 최고의 매개체임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늦깎이 운동마니아로 회심하여 자기 생활의 8할을 스포츠로 채우며 행복을 만끽하는 중년이 지천이다.

부모가 반 팔자라는 말이 있다. 내게는 학교가 나머지 반 팔자였다. 일상에서 배웠다면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었을 스포츠들을 관악은 내게 공짜로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것을 밑천으로 이후의 내 인생을 한 층 한 층 쌓아나갈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지금의 나를 키운 것은 9할이 관악임이 확실하지 않은가? 아니, 지금도 관악에서 녹봉을 받아 연명하고 있으니, 전부라고 해야 할까?


*최 동문은 건국대를 거쳐 현재 모교 체육교육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스포츠를 올바로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 소설, 시, 미술, 음악, 영화, 건축 등 인문적 지혜가 필수적임을 강조하는 인문적 스포츠교육을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다. 에세이 글쓰기를 선호하며 ‘한 장 글쓰기’, ‘스포츠 리터러시’, ‘스포츠 리터러시 에세이’ 등의 책들을 내었다.



최의창 동문이 낸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