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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호 2022년 7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대학 익명 게시판 바로 보기

김영희 한겨레 논설위원실장, 본지 논설위원
느티나무 칼럼
 
대학 익명 게시판 바로 보기



김영희
고고미술사학88-92
한겨레 논설위원실장
본지 논설위원
 
언론에 과잉 인용돼 편견 조장 
이면의 진짜 목소리 들어 봐야
 
 
에브리타임. 일명 ‘에타’라는 약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시간표 작성 등과 함께 익명 게시판 기능을 제공하는 온라인 서비스로, 2000년대 후반 등장해 전국 400여 개 대학 재학생들이 사용하게 됐다. 

나의 대학 시절, 학생들 의사를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던 거의 유일한 통로는 집회 또는 대자보였다. 그에 비한다면 즉각적이고 학생들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직접 참여하는 소통의 공간이란 실로 어마어마한 변화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이 공간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얼마 전 트위터 등 SNS에서 화제가 된 연세대 나윤경 교수의 ‘사회문제와 공정’ 과목 수업 계획서가 대표적 사례다. 

나 교수는 장문의 ‘수업 목표 및 개요’에서 “일부 2030세대의 ‘공정감각’이 기득권의 ‘능력주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하며 혐오 발화의 온상이 되고 있는 에타 플랫폼 분석을 수강생들과 수업시간 내내 하겠다고 밝혔다. 에타를 직격한 셈이다. 

최근 연세대에선 재학생 3명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학내 청소·경비노동자들이 벌인 집회가 “수업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형사고발과 손해배상소송까지 했는데, 이런 여론이 조성되고 소송단이 모집된 공간 역시 에타였다.

지난 5월엔 서울대 로스쿨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 대표가 강연을 하게 되자 서울대 에타나 스누라이프에서 거센 반대가 일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누가 뭐라 해도 청년 시절은 정의와 불평등 문제에 가장 예민한 인식을 갖는 시기일 터. 그런데 학생들의 익명 게시판이 외려 혐오와 차별을 확산하는 구실을 한다니, 기성세대로선 당혹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언론에 나오는 익명 게시판의 이런 모습이 지금 대학생들의 진짜 목소리일까? 

실제 연세대에선 집회를 여는 청소노동자들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응원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한다는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고 받은 연서명엔 2000명 넘는 학생과 졸업생, 시민들이 참여했다. 

서울대의 경우도 당시 게시판 의견을 서울대 전체 의견인 양 언론이 과대포장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전장연에 연대하는 학생들은 600여 명의 서명을 모아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파리바게트에서 점심시간 1시간 보장, 아프면 휴가 쓸 권리를 요구하며 53일간 단식한 노조위원장 소식이 알려지며 벌어진 불매 캠페인에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인 이들 또한 청년세대였다. 

물론 이런 움직임 또한 절대 다수 학생들을 대표하는 건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다. 

다만 언론과 우리 사회가 대학 익명 게시판을 너무 ‘과잉’ 인용하며, MZ세대가 과거 청년들에 비해 ‘보수적’이라거나 ‘이기적’이라는 통념을 강화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의견을 드러낼 통로가 없었을 뿐이지, 과거에도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은 대학 내에 있었을 것이다. 

게시판에 가려진 학생들의 진짜 목소리는 무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