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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호 2021년 6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출퇴근의 경제학

김영희 한겨레 콘텐츠총괄·본지 논설위원


출퇴근의 경제학



김영희

고고미술사88-92
한겨레 콘텐츠총괄
본지 논설위원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 8년 넘게 경기도 용인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에게 친정 옆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집 근처 광역버스는 늘 만석이라 아침마다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 줄을 서곤 했다. 하루 3~4시간을 길에 퍼붓다보니, 책이라도 읽겠다던 결심은 온데간데 없고 쌓이는 피로와 짜증에 우울해질 지경이었다.

실제 미국 워싱턴대 연구에서 장거리 출퇴근자는 잘못된 영양섭취와 불면, 우울증, 분노, 사회적 고립 등 증상이 클 것으로 예상됐다. 14년간 장거리 출퇴근을 한 여성 사망비율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54%나 높다는 스웨덴의 연구도 있다. 한국의 출퇴근 시간은 외국에 비해서도 긴 편이다. 조사기준과 기관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수도권 직장인의 경우 평균 100분 안팎이라는 통계들이 많다. 장거리 출퇴근은 개인 삶뿐 아니라 국가경제에도 마이너스다. 최근 민간 싱크탱크 ‘LAB2050’는 1997년에서 2019년까지 출퇴근에 소요된 직접비용(교통비)과 간접비용(시간이 갖는 기회비용)을 추산해보니 사회적 비용 총액이 27조8,700억원에서 88조8,000억원으로 3.2배나 늘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젊은층이 감당 못할’ 서울 집값이 통근시간 증가의 원인 중 하나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전엔 퇴직을 하면 살던 집을 팔고 좀 작은 평수나 가격이 싼 곳으로 옮겨 생활자금을 마련하려는 이들이 주변에 꽤 있었지만 이제 이런 ‘노후 공식’도 깨졌다. 베이비부머인 5060세대들이 앞장서 서울시내 ‘똘똘한 한채’를 놓지 않는 건 물론 갭투자에도 뛰어들었다.

남편 정년이 2~3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우리집도 은퇴 뒤 주거지를 고민 중이다. 솔직히 수십년간 서울에서 맺어온 대인관계를 다 떨치고 아주 낯선 먼 곳으로 귀촌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높은 서울 주거비용을 감당하며 노후자금이 바닥날까 걱정하는 건, 우리에게도 자식에게도 도움되지 않는다는 결론엔 어렵지 않게 이르렀다. 은퇴 뒤 서울 바깥으로 나가겠다는 우리 같은 결심이 직장인의 출퇴근 시간을 줄이는 데도 조금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