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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호 2022년 5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엘리트’ 책임이 무겁다


‘엘리트’ 책임이 무겁다



홍지영
불문89-93
SBS 정책문화팀 부장·본지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 곳곳에 동문 인사
서울대인다운 정치·국정 고대


3월호 서울대 총동창신문 1면에 윤석열 동문의 대통령 당선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다. 총동창신문 편집회의가 있던 날, 신문을 받아든 논설위원들은 농반진반으로 “이번에는 드디어 ‘서울대 폐지론’이 안 나오겠구나.” 말하며 웃었다. 과거 몇몇 정권이 바뀔 때 서울대 폐지론으로 가슴 졸였던 기억 때문일 거다.

윤석열 신임 대통령은 철학과 47학번인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째 ‘서울대 출신’ 대통령이다. 새 정부 고위급 인선이 시작되면서 상당수 요직을 맡게 된 서울대 출신 인사들에게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서오남(서울대 오십대 남자)’, ‘서육남(서울대 육십대 남자)’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윤 대통령의 ‘엘리트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얼마 전 대통령 선거를 치렀던 프랑스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힘겹게 재선에 성공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여러모로 윤 대통령과 비슷하다. 대권을 꿈꾸며 몸담았던 정권과 결별한 엘리트 관료 출신으로, 정당 기반보다는 국민 대다수가 기성 정치권에 등을 돌린 상황에서 이념이 아닌 ‘시대정신’을 지지율의 원천으로 삼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의 모교인 국립행정학교, 에나(ENA:E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를 지난해 12월 31일부로 폐지했다. 엘리트 정치의 대표적 국가로 꼽히는 프랑스에서 에나는 그 중심에 있었다. 1958년 제5공화국 성립 이후 취임한 8명의 대통령 가운데 마크롱을 포함해 데스탱, 시라크, 올랑드 등 4명이 이곳 출신이다. 고위 공무원 양성을 목표로 설립된 그랑제콜 가운데 하나인 에나는 입학과 동시에 공무원 신분이 주어지고 2년간 실무 위주 수업을 마친 뒤 졸업 때는 100등까지 줄을 세워 가고 싶은 정부 부처를 골라서 간다. 덕분에 정부 고위관직을 독점하다시피 한 에나 동문들은 에나크(에나+모나크·monarque, 군주)로 불릴 정도로 프랑스 정관계를 좌지우지했다.

에나는 당초 고급 관료 양성을 목적으로 누구에게나 최고위직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드골 대통령 시절 설립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입학 경쟁을 물질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파리 부유층 자녀들만 입학할 수 있게 됐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결국 지난 2018년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노란 조끼’ 시위대의 사회 불평등 해소를 촉구하는 목소리에 마크롱은 에나를 폐지하고 “보다 개방되고, 보다 다양하고, 보다 활발한 공무원 양성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기관의 창설”을 약속했다. 에나 출신 마크롱이 여론에 밀려 에나의 문을 닫은 것이다.

반세기에 걸쳐 프랑스 정치와 관료사회를 위한 인력 공급에만 매달려온 에나와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육성해온 서울대는 대학의 지향점이 다르다. ‘엘리트’라는 말 한마디로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서오남’, ‘서육남’이라는 신조어 속에는 서울대를 향한 견제의 시선이 가득 담겨 있다. 그만큼 윤 대통령과 새 정부의 고위 공직을 맡은 서울대 동문들의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오래간만에 ‘노골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동문들이 서울대 졸업생다운 정치와 국정을 펼쳐주기를 고대한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저 대한민국의 발전만을 위해 일하는 것이 동문으로서 서울대의 명예를 높이고 서울대의 미래를 지키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