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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호 2022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마스크 예찬론

하임숙 채널A 보도제작에디터 칼럼
느티나무 칼럼
 
마스크 예찬론
 


하임숙
영문91-95
채널A 보도제작에디터
본지 논설위원
 
예전엔 미처 몰랐다. 연예인들의 공항패션 사진, 혹은 몰래 찍힌 연애사진에서 절대 빠지지 않았던 검은색 마스크가 이렇게나 실용적일 줄은. 그저 얼굴 가리기용이거나 아니면 거꾸로 ‘나 연예인이요’, 은근히 드러내기용인 줄로만 짐작했었다.

하지만 팬데믹 시대에 강제로 착용하게 된 마스크는 여러모로 훌륭했다.

우선 겨울철에 달고 살던 폐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기침 감기가 최근 2년간 사라졌다. 손을 자주 씻고 수시로 항균 젤을 써댄 효과도 있겠지만 마스크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다. 건강 체질임을 자부하지만 그래도 찬바람이 불면 연례행사처럼 찾아왔던 깊은 기침을 더 이상 만나지 않는 생활은 즐겁다.

얼굴형이 수정되는 의외의 효과도 크다. 자기주장이 강한 광대와 턱이 평생 불만이었는데 마스크를 쓰니 얼굴이 그저 계란형으로만 보인다. 그러니 컴퓨터미인, 성형미인을 넘어서 ‘마미(마스크 미인)’들이 득세하는 건 일견 당연해 보인다.

평소 회사를 가지 않는 주말엔 화장은커녕 세수도 않고 하루 종일 뒹구는 게 일인데, 마트나 병원 등 꼭 나가야만 하는 일이 생길 때가 있다. 과감히, 뒹굴던 그대로 나가곤 했지만 사회생활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피차 민망해지기 일쑤였다. 그런 점에서 마스크는 게으른 자들에겐 신의 한수다.
 
감기 예방에 예뻐보이는 효과
팬데믹과 함께 익숙해진 것들

좋은 점만 있을까. 뜻하지 않은 비용도 들었다. 같은 ‘마미’라도 눈 모양에 따라 ‘더’ 미인이 결정되다 보니 대입수학능력시험 결과가 나오자마자 빛의 속도로 재수를 결정한 아이가 재수생의 필수 덕목이 ‘쌍수(쌍꺼풀 수술)’라는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딸과 오간 온갖 험난한 대화를 한 마디로 순화하자면 “아이야, 공부에 몰입해야 할 시기에 웬 쌍수 타령이니?” “어머니, 쌍수만 장착되면 재수력이 업그레이드돼 반드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것 같아요”였다. 자식에겐 영원한 ‘을’인 게 부모라, 채 3주를 못 버티고 아이를 고이 모시고 가서 쌍수를 시켜줬다.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초만 해도 매일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생활이 불편했지만 이제는 나처럼 생활의 필수요소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팬데믹과 함께 익숙해진 낯선 것들이 어디 마스크만일까. 20자 내외의 숫자 정보만 담고 있는 바코드의 350배 넘는 숫자 정보를 담을 수 있는 QR코드는 도입 초기엔 내 일거수일투족을 온갖 곳에 뿌리는 것 같아 영 찝찝했지만 어느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감기 증상이 조금만 있어도 손을 정갈히 씻은 후 자기 코를 깊이깊이 찌른 뒤 한 줄 나오나, 두 줄 나오나 지켜보는 일도 해본 지 얼마 됐다고 당연하게 느껴진다.

개인은 이처럼 적응이 빠르다. 어색해도, 때로 좀 불합리하다 느껴도 다같이 나라가 정한 방침을 따르는 게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시민의식이 기저에 깔렸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암만 봐도 한국의 행정은 적응력이라는 게 1도 없는 듯하다. 마스크 공급 부족 대란에서 아무런 교훈을 못 얻었는지 자가검진키트 대란, 병실 찾기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시장 매커니즘을 읽고, 과학적 근거를 찾아내 행정을 하지 않다 보니 배움이 쌓이지 않는다. 이러니 개인은 일류, 국가는 삼류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