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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호 2022년 2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화합이 혁신보다 강할 수 있다

오정환 MBC부장 본지 논설위원 칼럼
느티나무 칼럼
 
화합이 혁신보다 강할 수 있다


오정환 
공법83-87
MBC부장 
본지 논설위원
 
칭기즈칸은 어릴 때 부족에게 버림받았다. 적에게 붙잡혀 노예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관습과 신분보다 능력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몽골 고원을 평정했을 때 처음으로 부족의 개념을 뛰어넘는 통일국가가 탄생했다. 

몽골의 기병은 말을 갈아타며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했다. 상상도 못 했던 장거리 원정이 가능해진 것이다. 기만과 유인 기습 포위까지 전술 변화에 능했고 심리전도 강했다. 정복지에서의 악행을 제외하면 혁신의 대명사로 찬사받을 만하다. 

13세기 중엽 베트남 국경에 다다른 몽골군은 그곳에서도 놀라운 사고의 유연성을 보였다. 질병과 기아로 1차 침략에 실패하자, 다음에는 중국인 의사들을 데리고 가고 15km마다 식량 기지를 세웠다. 3차 침략 때는 사막의 군대가 바다로 보급품을 나르기도 했다. 

반면에 베트남은 청야전술과 지구전밖에 아는 게 없었다. 말의 기동력도 활의 사거리도 뒤떨어졌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단결이라는 비밀무기가 있었다. 무자비한 독재자 쩐투도는 백성의 신망을 받던 최대 정적 쩐꾸옥뚜언을 군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2차 침략을 앞두고 왕이 전국의 촌로들을 모아 저항할지 항복할지 물었다. 촌로들이 싸우겠다고 외치면서 전쟁의 주체가 백성이 되었다.

베트남 병사들은 팔에 몽골군을 죽이자는 문신을 새겼고, 왕이 부르면 어디서든 수만명이 창을 들고 모였다. 역사에 고정된 법칙은 없지만, 그때는 베트남의 화합이 몽골의 혁신을 이겼다. 

곧 20대 대선이 실시된다. 후보마다 나라를 발전시킬 개혁안들을 내놓는다. 그러나 국민을 한데 모으겠다는 약속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혁신도 필요하지만, 분열된 사회의 화합이 절실한데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