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20호 2021년 7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청년 정치인으로 선수 교체?

제1야당 대표도 30대, 청년 약진 섣부른 지적보단 응원·격려할 때

느티나무 칼럼

청년 정치인으로 선수 교체?



신예리

영문87-91
JTBC 보도제작국장
본지 논설위원


5시간31분05초. 필자가 앵커로서 세운 최장 시간 생방송 기록이다. 자정부터 해 뜰 때까지, 말 그대로 밤을 꼴딱 새우며 진행한 ‘JTBC 밤샘토론’ 100회 특집(2018년 10월 12일 방영)을 통해서였다. 밤샘에 이골이 난 앵커야 그렇다 쳐도 출연자들이 평소의 두 배가 넘는 방송 시간을 버티기 힘들 거란 우려가 사전 기획 단계에서 나왔다. 그래서 짜낸 묘안이 바로 선수 교체. 5개 정당의 국회의원과 청년 대표가 짝을 이뤄 출연하되 각 의원이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시점에 자연스럽게 청년 논객과 배턴 터치를 하도록 한 거다. 그 어떤 토론 프로그램에도 등장한 적 없는, 참으로 신박한 포맷이 아닌지.

중년의 국회의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고 토론 테이블이 청년들로 모두 채워진 시점은 대략 새벽 3시반쯤. 혈기 방장한 남녀 논객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그날 필자가 마지막으로 제시했던 논제는 다름 아니라 ‘청년의 참여 가로막는 정치, 어떻게 바꿔야 할까’였다. “청년 정치인이란 꼬리표를 붙여놓고 2부 리그 취급하는 차별이 문제”, “기성 정치인의 배려로 갑자기 발탁해 공천 주는 방식은 지속 불가능”, “청소년 시절부터 예비 당원으로 영입해 미리미리 싹을 키워야”…. 앞서 다른 이슈에선 적잖은 이견을 노출했지만 청년을 홀대하는 정치 풍토를 싹 다 갈아엎어야 한다는 대목만큼은 여야 청년 대표들이 한 목소리를 냈다.

제1야당 대표도 30대, 청년 약진
섣부른 지적보단 응원·격려할 때

마침내 길고 긴 방송이 마무리되고 우르르 해장국집으로 뒤풀이를 가면서 그네들이 필자에게 남긴 말은 이랬다. “국장님~ 다음엔 우리가 1부에서 토론하게 해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시간이 모자랐다고요.” 미안한 마음에 웃으면서 “그러마”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밤샘토론’이 지난해 말 막을 내리게 됐다. 소식을 접한 한 청년 정치인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제 우린 어디 가서 목소리를 내야 하나요?” 첫 회부터 젊은 논객들을 출연시키며 청년 정치인에게 문호를 활짝 열어온, 유례없는 프로그램의 폐지를 못내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반 년. 한 번의 선거를 치르고 다가오는 또 다른 선거를 준비하며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밤샘토론’의 단골 청년 논객 중에 각 당의 국회의원과 비대위원, 최고위원이 나오더니 급기야 최근 제1야당의 대표 자리까지 거머쥐면서다. 마침내 토론장을 넘어 현실 정치판에서도 ‘선수 교체’가 이뤄지는 것일까. 아직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강준만 교수(전북대)가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에서 일찌감치 설파했듯 선거 때만 되면 “청년들을 늙은 정당의 주름살을 가려주는 비비크림 같은 존재로 이용”해왔던 구태를 반복하는 건지도 모르니 말이다. 들끓는 2030 민심에 혼쭐이 나서 이번만큼은 진심이라고 우기고들 있지만 과연 그런지는 두고 볼 일이다.

청년 정치인들의 약진과 함께 벌써부터 그들의 한계를 꼬집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하지만 지금은 섣부른 지적질보다는 따뜻한 응원과 격려가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경륜과 경험으로 무장했다는 기성 정치인들이 실망만 안겨준 데 지친 국민들이 바야흐로 이들의 젊음과 패기에 희망을 걸기 시작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