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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호 2021년 6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실력주의와 공정

김희원 한국일보, 본지 논설위원 칼럼
관악춘추

실력주의와 공정



김희원
인류89-93
한국일보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서울대 동문이라면 능력주의(meritocracy)에 긍정적일, 그리고 수혜자일 가능성이 크다. 오직 실력으로 경쟁하고 선발하겠다는 이 능력주의가 최근 정치권의 이슈다. ‘공정 경쟁’을 비전으로 제시하며 이준석씨가 국민의힘 당대표에 출마하자 20대 청년층이 호응하고 변화를 바라는 보수층이 가세해 바람을 키웠다. 그러나 이 세대교체와 변화에 박수를 치기에는 우려되는 면이 적잖다.

가령 엑셀과 토론 실력 등을 시험 쳐 공천자격을 주는 것은 ‘공정한’ 방식일까. 젊은 고학력자에게 유리한 능력이란 점도 문제지만, 그것이 좋은 정치인을 가려내는 기준이냐가 더 문제다. 이선호씨 사망 같은 사회 이슈에 공감하고 해결을 고민하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일 텐데 엑셀과 토론이 이를 보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정 경쟁’의 지향점은 소수자 할당제를 모두 없애고 사실상 학력으로만 경쟁하자는 ‘능력자끼리의 줄세우기’에 가깝다. 이 주장이 젊은층에 소구하는 것은 청년들 다수가 이미 공정 개념을 줄세우기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가령 본교 캠퍼스 학생들이 총학생회 임원을 맡은 분교 캠퍼스 학생을 향해 ‘본교생 흉내 낸다’고 비난한 일을 보자. ‘성적순 줄세우기’가 공정하다는 믿음이 있기에 새치기를 비난하듯 분교 차별을 당연시한다.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청년층이 분노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건이다. ‘줄 뒤에 있어야 할’ 비정규직이 ‘내 노력의 대가에 마땅한’ 정규직 자리를 가져가는 것을 참지 못한다.

이럴 때마다 언급되는 ‘공정’ 단어는 두렵기까지 하다. 나보다 노력이 덜한 이들이 내 몫만큼(또는 그 이상)을 가져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팍팍함에 마음이 무겁고, 그 노력과 실력의 기준이 학력과 성적이라는 편협함에 숨이 막힌다. 근본적으로 좋은 일자리가 너무 적고, 경쟁은 치열하고, 대체로 대학 졸업장이 결과를 나눈다는 현실이팍팍함과 편협함을 낳았을 것이다. 이해는 하지만 올바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실력주의가 만연할 때 다툴 자리에 끼지도 못할 고졸·지방대 출신 청년들은 더더욱 패배자의 자리로 내몰릴 뿐이다.

삶의 연륜이 쌓일수록 나는 내가 얻은 능력과 그 보상이 온전한 내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공동체 약자·소수자를 품어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 청년층의 뒤틀린 공정 인식을 자극하는 정치는 공동체의 연대를 와해할 위험이 있다. 부디 우리 사회가 양극화와 갈등의 도가니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