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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호 2021년 2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대입전형 제도 변경은 제로섬게임

백순근 모교 교육학과 교수

대입전형 제도 변경은 제로섬게임


백순근
교육80-84
모교 교육학과 교수


입시 땜질로는 대학 발전 요원
좋은 대학 좋은 전공 육성해야


우리 사회에 ‘입시 한파’라는 독특한 말이 있듯이,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수험생과 학부모는 물론 학교나 대학의 교직원들도 본격적으로 대입전형의 세부 절차들이 진행된다는 사실에 더욱더 긴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해마다 대입전형은 우리 사회에 다양한 뉴스들을 제공하면서 전 국민의 관심 속에서 치러진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대입전형을 일종의 전쟁처럼 치르는 나라는 유래를 찾기 어렵다. 우리가 이토록 대입전형에 매달리는 이유는 어느 대학을 졸업했느냐 여부에 따른 유·무형의 인센티브 차이가 너무 크게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입전형이 수험생 개인에게는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또 그가 속한 가족과 학교와 지역에서는 구성원들의 명예와 자존심이 걸린 중요한 일로 인식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대입전형은 교육 분야를 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를 총망라하는 매우 중요하고 포괄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으며, 소위 전쟁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의 규칙이라 할 수 있는 대입전형 제도 혹은 전형자료의 반영 비율 등은 개별 지원자의 합격 확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행 대입전형 자료는 크게 세 가지, ①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②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그리고 ③대학별 전형자료, 즉 논술고사·면접 및 구술고사·실기시험 등이다. 여기서 수능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이며, 학생부는 단위 고등학교에서 관리하는 것이고, 대학별 전형자료는 개별 대학에서 관리하는 것이다.

학생을 선발할 때 어떤 전형자료의 반영 비율이 더 높으냐에 따라 학생 간, 학교 간, 지역 간 유불리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지원자의 당락을 결정하는 ‘평가권’을 누가 더 많이 갖느냐 하는 정치적 역학 관계의 변동을 유발하게 된다.

예컨대, 수능을 중시하면 국가의 교육통제력과 권한이 증가하게 되고, 암기 능력이 뛰어난 학생이나 사교육 기회 등 교육 여건이 좋은 대도시 지역의 학교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된다. 학생부를 중시하면 시·도교육청과 고등학교와 교사들의 권한이 증가하게 되고, 리더십이 뛰어난 학생, 중·소도시나 읍·면 지역 학교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된다. 그리고 대학별 전형자료를 중시하면 대학과 교수들의 권한이 증가하게 되고, 개별 대학의 요구에 따라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 가정이나 학교의 학생이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된다.

아울러, 수능을 중시하면 전국적인 기준에서 수능 성적이 높은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겠지만, 단위 고등학교의 교육 활동의 특성이나 개별 대학의 건학이념 등을 살리기 어렵게 된다. 학생부를 중시하면 단위 고등학교의 권한이나 운영의 자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지만, 학교 간, 지역 간 학력 차이 등을 반영하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대학별 전형자료를 중시하면 해당 대학의 건학이념이나 특성을 살리는 데는 기여하겠지만, 국가 수준의 교육정책이나 단위 고등학교의 교육 활동의 특성을 살리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특정 입학전형 자료만을 중시하게 되면 특정 학생이나 집단에게만 상대적으로 유리해질 수 있고, 우리나라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향해야 할 자율화, 다양화, 전문화, 첨단화, 세계화를 추진하는 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입학 전형자료 반영 비율의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흔히 국가 권력을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으로 나누어 상호 간의 견제와 균형을 유지해 국가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듯이, 대입전형 자료의 중요도를 균형 있게 유지하여 학생 선발을 위한 평가권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함으로써 다양한 학생, 학교, 대학, 지역의 존재를 인정하고, 균형과 조화 속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위정자들은 대입전형 규칙이나 제도를 바꿈으로써 현재의 과도한 경쟁 상황을 완화하고 국가 교육력을 높이려고 시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시도는 비록 특정 학생이나 집단에게는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결국 일종의 제로섬게임(zero-sum game)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바뀌면 매번 대입전형 규칙이나 제도를 바꾸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되어버린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라도 대입전형의 과도한 경쟁을 완화하면서 국가 교육력을 높일 수 있는 일종의 포지티브섬게임(positive-sum game)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대입전형 규칙이나 제도의 변경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전형자료 반영 비율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학생들이 기꺼이 진학하고 싶어 하는 좋은 대학과 좋은 전공을 많이 육성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개별 대학이 변화와 혁신을 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행·재정적 지원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 예컨대 학벌에 의한 양극화, 직업 간의 양극화, 계층 간의 양극화 등을 완화하기 위해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지속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