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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호 2021년 1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반기업 정서 없애는 게 경제단체의 최우선 과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CJ그룹 회장
동문을 찾아서

“반기업 정서 없애는 게 경제단체의 최우선 과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CJ그룹 회장



방송작가협회 찾아가 협조 논의
중대재해 처벌보다 예방 중요
경사노위 공익위원 중립지켜야

1961년 사회생활, 50년차 현역
법대 졸업, 경영에 실질적 도움
모교 자부심 커…구성원 윤리 지켜야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가장 바빴던 경제인 중 한 명이 손경식(법학57-61·본회 고문)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었다. 지난해 12월 9일에 끝난 정기국회와 바로 이어진 임시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은 그야말로 법안을 쏟아냈고 다수가 기업의 경영활동을 옥죄는 법안이었기에 국회로, 경제단체들로 발길이 잦았던 것이다.

1월 13일 오전 서울 중구 CJ그룹 본사에서 만난 손 회장은 “이틀에 한 번은 마포구 경총 사무실에 간다. 그래야 여의도 정치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인들과의 잦은 만남에도 법 제·개정 상황은 재계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대담·글 : 하임숙
(영문91-95)
채널A 보도제작에디터·본지 논설위원


-건강해 보이셔서 좋습니다. 연말에도 국회를 여러 번 방문하셨지만 결국은 여러 가지 법안들이 통과됐기에 좀 낙담하셨을 것 같습니다.
“올해 초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그래도 자꾸 이야기한 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봐야죠.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일어난 사업장의 대표자를 처벌하겠다고 했던 법안을 대표자만 아니라 임원까지 포함해 좀 유동성을 뒀고, 처벌도 당초 징역 3년 이상에서 1년 이상으로 낮췄으니까요.”

-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건 경영계도 동의하는 명제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제 사고가 안 일어나게 하려면 처벌 말고 뭔가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산업재해 사고를 줄이려면 처벌보다 예방에 주력해야 합니다. 예방하려면 그게 다 비용으로 연결되는 건데, 임원 및 대표자 처벌에 초점을 두다 보면 자칫 예방에 쓰여야 할 비용이 임원들 위험수당으로 갈 수도 있고요.”

-기업들이 사고 예방을 위한 실제 조치를 취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거죠.
“그렇죠. 게다가 실제 사고 예방을 위해 진짜 중요한 건 정부의 역할입니다. 외국은 예방 활동을 정부가 합니다. 안전을 관리하는 정부 조직이 있어 현장지도를 강화하고, 근로자 교육도 시켜 줍니다. 우리도 그런 조직이 없는 건 아닙니다. 고용노동부 산하에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있어요. 기업들이 여기에 산재보험료를 내고 있고, 정부 예산도 8,000억원가량 배정이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공단이 기업들의 산재 예방을 위한 활동을 해서 실질적으로 산재를 줄이려고 노력해야지 왜 자꾸 기업에만 부담을 주려고 하는지…. 기업인을 처벌하고 법인에 벌금을 물리면 기업이 알아서 할 것으로 보는 건데, 정부의 책임을 기업에 떠넘기는 측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더구나 경영자를 처벌하려면 어떤 주의 의무가 있는지를 구체화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규정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법이 정밀한 논의 끝에 제정된 게 아니라 노동계도 크게 반발하고 있고, 재계도 반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재계는 보완 입법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시지요.
“최하 징역형을 정한 부분은 어떻게 해서든 손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큰 건설회사들 보세요. 한 기업에 작업 현장이 최대 400개까지 있습니다. 대표이사나 안전 담당 임원이 그 현장을 하나하나 다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대표이사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장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2인 1조로 근무하게 한다거나, 안전 관리관을 파견해서 교육을 시킨다거나 하는 것이죠.”

-그러나 막 통과된 법안을 그런 식으로 보완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네요.
“민주당 내에서도 이 법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상당히 많았고요. 제가 알기론 법을 만든 의원들도 상당수가 마음에 부담을 느끼고 있어요.”

-작년부터 쏟아진 규제 법안 중 기업들이 제일 걱정하는 법안은 어떤 것인지요.
“최근 통과된 법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우선 상법 개정안이 있습니다. 감사위원을 분리 선임할 때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아무리 높아도 의결권을 3%로 제한했지요. 자칫하면 외국인 투자가들이 담합해서 기업의 정보를 빼먹을 사람을 감사로 올리기 쉽게 됐어요. 재계의 항의 끝에 당초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을 합해서 3%이던 걸 각각 3%씩으로 완화하긴 했지만 여전히 불합리합니다.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목소리도 있어요.”

-해외에도 3%룰 비슷한 게 있는지요. 딱 3%는 아니라도 감사위원들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요 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규정 말입니다.
“없습니다. 3%라는 게 어디서 나왔냐 하면 박정희정부 때예요. 당시에 기업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3%룰을 도입했다가 기업들이 항의하니 ‘정관에서 별도로 정하는 바가 있으면 그에 따른다’라는 항목을 법에 넣었지요. 그래서 3%룰이 거의 사문화됐다가 이번 정부에서 다시 살아난 겁니다.”

-걱정되는 법안이 또 있나요.
“노동법 개정안도 문제가 있지요. 이번에 해고노동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하지 않았습니까. 해고된 사람이 노조활동을 하면 노사관계에 더 문제를 일으키면 일으켰지 도움되는 쪽으로 하겠습니까. 파업을 부채질할 수도 있고요. 게다가 대체근로도 불가능하게 돼 있지요. 노조가 파업을 하면 현장 작업이 중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요즘 일반 노조원들의 민의가 높아져서 그나마 다행인 거죠.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공권력이 좀 더 개입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1987년부터 노조운동이 활발해졌는데 당시엔 기업이 우위에 있었으니 권리를 찾는다는 의미에서 당연한 움직임이었지요. 하지만 요새는 기업이 약자입니다. 정부가 노조 편을 들 게 아니라 적어도 중립을 지켜야 합니다. 경총이 재작년 겨울에 유럽 여러 회사들에 조사단을 보낸 적 있습니다. 당시 조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영국, 스페인이 공권력을 동원해 과격한 노조활동을 해결했다는 겁니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노사 대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했고요.”

-우리나라에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경사노위는 사용자측 위원, 노동자측 위원, 공익위원들이 참여하는데 공익위원들이 거의 노조 측에 우호적인 사람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적어도 중립을 지킬 수 있는 이들로 선임돼야 합니다.”

-이낙연 대표 등 여당의 움직임을 보니까 이익공유제도 강행할 분위기던데요.
“그건 쉽지 않을 겁니다. 반발도 크고 원칙을 정하기도 힘들지 않겠어요. 우리나라가 코로나 상황을 뚫고 경제가 잘 되려면 기업에 활력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기업이 활발히 경영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도와주어야지 이익을 나누라고 한다면 난감한 일입니다.”

-여당 의원들은 기업이 살고 경제가 성장해야 우리나라가 산다는 전제에 동의하나요?
“원론은 동의하지요. 그런데 우리 사회가 가치의 대충돌을 겪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 활동을 원활하게 해서 경제를 성장시키자는 가치가 있고, 다른 한 편에선 사회적 약자, 소외된 계층을 도와야 한다는 가치가 있습니다.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양측의 격돌이 있는 것이지요.”

-여당 의원들도 단일화된 게 아니고 내부에서 충돌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국정 운영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역량을 다양하게 갖춘 나라입니다. 정보기술(IT), 5세대 통신(5G), 바이오 분야에서 눈에 띄게 성공하신 분들도 많고요. 우리 국민은 머리가 좋아 인프라만 잘 갖춰주고 판만 잘 깔아주면 뛰어난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규제, 정치 불안, 불안정한 남북 관계 등만 해소하면 더 잘 될 텐데 안타까워요.”

-회장님이 경총을 맡으신 뒤 경총의 위상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예전과 달리 위상이 낮아지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일각에선 통합 이야기도 나오고 있죠.
“저는 통합이 논의될 때가 됐다고 봅니다. 일본만 해도 우리의 전경련 격인 ‘게이단렌(經團連)’에서 노동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경총이 분리돼 나갔다가 다시 합쳐졌지요. 거기서도 노동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되면서 굳이 조직이 나눠질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조직을 키우는 것 못지않게 경제단체들이 시급히 추진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에 만연한 반기업 정서를 없애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됩니다. 국회의원들을 만나 봐도 반기업 정서를 가진 분들이 적지 않더라고요. 노동 문제에 있어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국민적 지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반기업 정서가 사라져야 합니다. 1, 2년 안에 해소될 문제는 아니지만 뭔가 일단 시작은 해둬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경총 내부에도 이런 일을 전담하는 부서를 만들어 올해부터 활동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반기업 정서라는 게 정치권의 지속된 프로퍼갠더의 결과이기도 하지요.
“맞습니다. 요즘 대기업들이 대놓고 탈세하거나 법을 안 지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언젠가 어느 국세청장이 이런 말씀을 하더라고요. ‘요새 세무조사를 할 땐 어느 기업이 외형을 누락해 탈세했다는 것을 중점적으로 다투는 게 아니다. 주로 세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두고 싸우는 것이다.’ 특히 기업들에 대한 감시의 시선이 이렇게 촘촘한 요즘 누가 세금을 떼어먹으려고 위법 행위를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반기업 정서가 잘 안 없어지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TV 드라마나 영화인 것 같아요. 기업 또는 기업인이 나쁜 짓 하는 모습을 많이 묘사하거든요.”

-현실에서도 가끔씩 오너 가족끼리 지분 다툼을 벌이는 식의 일이 생기니까요.
“그게 한두 건이 인상이 강해서 그런 건데 대부분은 안 그렇습니다. 그래서 방송작가협회를 찾아가 심사숙고를 부탁드리는 것도 고려하고 있어요. 모범적인 사례도 많으니 그런 사례가 많이 소개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경총 회장의 마지막 해죠. 돌아보면 뭐가 가장 기억에 남으시나요.
“우리가 목소리를 내서 정부 정책에 그나마 일부라도 반영이 될 때가 아무래도 기억에 남지요. 상법 개정안도 사실 최근에 갑자기 나온 게 아니고 2년 전부터 추진됐던 겁니다.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에서 제가 강하게 반대했고, 그 이후 법무부 장관이 실장 등과 함께 경총에 오기도 했습니다. 그때 반대하는 근거를 잘 설명해 추진이 안 됐어요. 지나갔겠거니 생각했던 문제가 다시 불거져 당황스럽습니다만, 결과가 어찌 됐든 경제단체장으로서는 정부 정책에 최소한의 목소리라도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요.”

-1961년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하셔서 올해 50년 되셨습니다. ‘직장인 손경식’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글쎄요.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고, 새로 전진할 수 있는 길을 열려고 끊임없이 노력해 왔습니다. 좌절된 경우도 있지만, 실망하지 않고 부지런히 했습니다.”

-법대를 나오셨는데, 법조인에 대한 꿈은 없었나요.
“어릴 때라 법대를 선택했지만, 대학 중간부터는 경영계 진출을 생각했어요. 세계에서 활동할 수도 있고, 일 하는데 제약도 많지 않잖아요. 하지만 법대를 나왔다는 건 큰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다니며 배운 지식이 기업 경영에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어요. 또 대학 동기들이 법조계, 행정계, 국회에 많이 있으니 든든해요. 의견 교환도 자주 하고요.”

-동문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요.
“한평생 모교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 대학 랭킹에서 순위가 좀 떨어지긴 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교수들과 학생들의 수준이 훌륭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가 차지하는 위상만큼 높은 윤리성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위법이냐 아니냐를 떠나 우리 동문들은 상식적으로 판단해서 옳은 일을 해야 하고 상식적인 판단에서 그른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각자가 서울대 졸업생이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각 분야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손 동문은

△1939년 서울 출생 △1961년 한일은행 입사 △1968년 오클라호마주립대 경영학 석사 △1977년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 △1994년 CJ 대표이사 회장 △2005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2007년 서울대발전기금 발전위원회 공동위원장 △2018년 한국경영자총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