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7호 2024년 8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추석 연휴, 청와대에서 특별한 추억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윤병세 (법학72-76) 청와대재단 이사장
추석 연휴, 청와대에서 특별한 추억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윤병세 (법학72-76) 청와대재단 이사장
박근혜 정부의 유일한 외교부장관이자 1981년 이후 최장 재임 외교부장관. ‘오병세’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윤병세 동문에게 다시 일복이 터졌다. 칠순이었던 작년 10월 40년 된 학술단체인 서울국제법연구원 이사장을 맡더니 지난 6월엔 신설 청와대재단 이사장에 임명됐다. 또 5월부터 2년간 ‘AI의 책임있는 군사적 이용(REAIM) 글로벌 위원회’ 공동의장을 맡아 정신이 없다. 청와대재단은 연간 300억원의 예산을 사용하며, 직원만 50명쯤 된다. 관광 명소가 된 청와대의 관리·개방, 역사 문화 공간 조성, 문화재 보존 등의 역할을 한다. 공직에 있을 때 ‘일벌레’로 소문난 그가 다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해서 지난 7월 30일 청와대재단 이사장 집무실에서 윤 동문을 만났다.
박근혜 정부 내내 외교부장관
서울국제법연구원 이사장 맡고
최근 청와대재단 업무까지 ‘일복’
청와대 방문객 2년만에 600만명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 것
-오랜만에 뵙는데, 여전히 공부를 많이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작년말 ‘국제질서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주제로 400페이지 분량의 글로벌 보고서를 써서 전 세계 7000여 곳의 기관, 연구소에 보내기도 했죠. 국내외 회의에 연중 참석하고 언론과 학술지 기고와 인터뷰도 많아 좀 줄여야 될 것 같아요. 9월에 서울에서 중요한 ‘군사적 AI 글로벌 회의’를 주최하게 되어 좀 바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청와대재단 이사장을 맡으셨나 궁금했는데, 인연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시죠?
“참여정부 시절 통일외교안보 수석비서관으로 청와대에서 근무했고 박근혜 정부 때는 매년 150회 전후 청와대에 갔지요. 문체부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니 청와대의 역사성에 대한 이해가 높고, 외교부장관으로 쌓은 풍부한 국제 경험 등으로 청와대를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기에 적임자라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청와대재단을 소개해 주신다면.
“청와대는 1948년 이후 74년간 12명의 대통령이 국정을 펼쳤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현장입니다. 2022년 5월 국민 품으로 돌아온 지 2년 만에 600만명이 찾는 명소가 됐죠. 지난 6월 방문객 통계를 보면 외국인 비중이 36%인데 앞으로 더 올라 가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청와대재단은 청와대가 지닌 역사성과 상징성을 잘 보존하면서 국민에게 개방한 취지에 맞도록 활용하기 위해 지난해 말 설립된 민간기관입니다. 청와대를 역사, 문화, 자연환경이 융합된 고품격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국민 친화적 관람환경을 조성하려고 합니다.”
-외국인 관광객을 좀 더 유인할 수 있는 기획이 있으신가요.
“제가 외교관으로 세계 절반을 돌아다니면서 청와대와 유사한 성격의 왕궁, 대통령실, 총리실, 교황청 등 지도자들의 집무실을 많이 가봤는데 우리가 벤치마킹할 게 많이 있더라고요. 감동을 주는 공간들의 공통점은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잘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콘텐츠를 보완하고, 소프트웨어 쪽을 더 강화하면 방문객 수는 계속 늘어날 거라 봅니다.”
-6월에 취임하셨는데 업무를 꿰뚫고 계시네요.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일 텐데, 또 오고 싶은 고품격 공간이 되도록 차별화되게 만들어야죠. 곧 추석 연휴인데, 가족과 오셔서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가시면 좋을 것 같네요.”
-기획하고 있는 행사가 있을까요?
“청와대 개방 2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글로벌 외교 성과 등을 재미있게 보여주는 전시를 7월말까지 했습니다. 3개월간 전시 공간별 누적 관람객 수가 161만명 입니다. 추석 즈음에는 청와대의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음악회, 예술 전시 등이 진행될 예정이고요. 계절별로 차별화된 행사를 합니다. 예산이 허용된다면 규모가 큰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추가했으면 좋겠어요. 청와대 야외 공간이 특별하잖아요? 청와대의 품격과 어울리는 세계적인 연주단이나 음악가를 초청해 야외 음악회를 해도 좋을 것 같고요.”
대담 : 이우탁(동양사84-88) 연합뉴스 선임기자
-서울국제법연구원 이사장도 맡고 계신데, 소개해주시죠.
“설립된 지 40년 된 국제법 학술연구단체입니다. 고 백충현 교수님께서 ‘약소국은 국제법을 잘 알아야만 국익을 관철할 수 있다. 냉엄한 국제 현실 속에서 한국도 국제법을 깊이 연구해서 정부 정책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전문가들을 지속적으로 양성하자’고 사재를 털어 만든 단체입니다. 전 세계에 이렇게 오래된 국제법 민간 학술단체는 많지 않습니다. 국제재판관을 비롯해 국제법 관련 세계적인 리더들이 꽤 많이 배출됐습니다.
요즘 연구원에서 관심을 두는 분야는 AI를 포함해, 기후변화, 사이버, 우주 등 신흥국제법 영역과 국제인도법, 인태 지역 안보입니다. 1년에 4번 정도 ‘서울 외교 거버넌스 포럼’을 열고 있습니다.
- ‘AI의 책임있는 군사적 이용(REAIM) 글로벌 위원회’ 의장의 역할은 무엇이지요?
“AI의 발전으로 혜택도 많지만 잘못 운용할 경우 심각한 해가 될 수 있죠. 고 키신저 전 미 국무부 장관은 AI가 대량 파괴무기와 연계되어 악용될 수도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방지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죠. REAIM과 관련해서 국제적 규범 형성을 위한 몇 개의 외교 노력이 진행되고 있어요. 그중 하나가 한국과 네덜란드가 주도하는 정부 차원의 트랙이 있고, 민간 차원의 글로벌 위원회가 있어요. 제가 민간 트랙 공동의장을 맡고 있죠. 군사적 측면에서 AI가 야기할 수 있는 리스크를 어떻게 감소시키면서 책임있게 사용할수 있느냐에 대해 포괄적인 건의서를 내려고 합니다.”
-장관 재임 시절에 한국 외교부장관으로는 처음 쿠바에 가셨잖아요. 최근에 한-쿠바 수교도 했는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그렇죠. 사실 2016년 6월에 갔을 때 그냥 간 게 아닙니다. ‘호랑이굴 외교’라는 별칭을 붙이고 쿠바의 경우 1년 반쯤 전부터 치밀한 전략을 짰어요. 2015년 2월에 차관보를 먼저 보내 타진을 하고, 9월에는 양국 외교장관이 유엔 모처에서 비공개 회담을 했지요. 적절한 타이밍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카스트로 쿠바 지도자가 주최하는 중남미 카리브 지역 정상회의 개최 정보를 입수해서 외교장관의 옵서버 참석을 밀어붙였는데 일이 잘 풀렸어요. 당시 조태열 2차관(현 외교장관)이 먼저 가 있고 제가 아프리카와 유럽 순방을 마치고 쿠바 정상회의에 참석했지요. 이어 양국 역사상 최초로 쿠바 현지에서 브루노 로드리게스 외교장관과 공식 외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수교와 관련된 의미있는 대화를 했죠. 그 이후에도 안총기 외교 차관이 또 쿠바를 방문했습니다. 쿠바측은 그때 내심 한국과의 수교는 불가피하다는 결심을 한 것 같고 다만, 북한 요소가 있어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다 올 초 수교하게 됐다고 봅니다. 제가 다녀간 후에 북한에서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제2인자인 최룡해가 8개월 사이에 쿠바를 3번 방문했습니다. 쿠바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나라라 앞으로 양국관계가 정부 및 민간 차원에서 빠르게 발전할 것입니다.”
-현 정부의 외교 방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2차 대전 이후를 보면 주기적으로 국제질서가 격동합니다. 냉전기 다음에 탈냉전기 그다음에 지금을 신냉전기 또는 복합 위기의 대전환기라고도 하죠. 이러한 포스트 탈냉전 시대에 엄청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주요국들은 거의 예외 없이 시대 변화에 맞는 국가 대전략을 세우고 있어요. 윤석열 정부가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해 ‘인태전략’과 ‘글로벌 중추국가론’을 내놨죠. 그동안 남북관계 중심의 좁은 시각에서 벗어난 것이지요. 한미동맹과 한일관계가 좋아지니 역내 협력도 강화되고 글로벌 무대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외교는 국제질서를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죠.”
-한일관계의 흐름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윤석열 정부 출범 이래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주도적 노력을 해 왔고 이에 기시다 정부도 호응해서 한일관계가 큰 틀에서 정상화 궤도로 진입한 것은 평가할 만합니다. 최근 기시다 총리가 연임 포기 선언을 함에 따라 모처럼 구축된 신뢰관계가 더 공고해지기를 기대한 측면에서는 아쉽지만 새로운 일본 총리가 선출되더라도 이러한 흐름을 계속 유지 발전시켜 지속 가능한 협력의 길로 갔으면 합니다. 특히 내년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입니다. 매우 중요한 이정표지요. 1965년 국교 정상화를 한 이후 사이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해 왔는데, 지금의 모멘텀을 잘 살려 내년 60주년에 모든 분야에서 업그레이드 되는 상황이 오길 바랍니다. 특히 우리는북한으로부터의 실존적인 위협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복합 위기 상황이 심해지고 있으니까 인태 지역에서 우방국들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법학도이신데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된 동기가 궁금하네요.
“재학시절은 국내 정치나 대외적으로 변화가 많았던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그런 국내외적인 분위기가 대학가에도 큰 영향을 미쳤죠. 저는 당시 국제법 학회에 참여하며 국제질서에 대해 본격적으로 눈을 뜨게 되었는데 외교관으로 진로를 바꾼 결정적 계기는 3학년 여름방학 때 일본에서 열린 국제학생협회 국제회의 참가입니다. 7월 말~8월 말 후쿠오카부터 홋카이도까지 이동하며 토론식 국제회의를 했습니다. 40여 개국의 학생 대표 200여 명이 모인 행사였죠. 두가지 면에서 충격을 받았어요. 하나는 일본이 이 정도 규모의 국제행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된 나라라는데 놀랐고, 두 번째는 참석한 학생들의 풍부한 국제정세에 대한 식견과 유창한 외국어 능력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보다 약소국이라 생각한 나라의 학생들도 우리보다 뛰어났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싶었죠. 귀국하자마자 프랑스어학원에 등록하고 외교부에 들어갈 준비를 시작했죠.”
-마지막으로 외교관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해주시죠.
“이제 외교를 외교관만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어느 나라나 외교관을 국익 창달의 가장 중요한 인적자본으로 사용하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 위기 시대에 외교관을 하려면 결국은 안목을 넓혀야 합니다. 우주에서 한반도를 보는 기분으로, 또 항상 세계 속에서 한국을 보는 시각으로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고래 싸움에 낀 새우가 아닙니다. 어떤 학자들은 한국이 고래로 성장했다고도 말합니다. 과거처럼 변방 국가로서 남이 짜놓은 국제질서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강대국과 함께 운전석에 앉아 판을 짜는, 그런 주인의식을 키워야 합니다.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목표를 원대하게 잡으십시오.”
정리=김남주 기자
윤병세 동문은 경기고, 모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문제대학원(SAIS)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6년 제10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2007년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정책 수석비서관, 2013~2017년 외교부 장관을 지냈다. 현재 서울국제법연구원 이사장과 청와대재단 이사장 등 국내외 다양한 직책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