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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호 2020년 10월] 뉴스 기획

기부자와 장학생의 만남: 박희망 동문과 수능만점 송영준 씨

“장학금은 나를 믿어준다는 증표, 그 믿음 지키는 사람될 것”

박희망 동문(왼쪽)과 그의 장학생 송영준 씨가 지난 9월 23일 서울 영등포에 있는 박 동문의 회사 앞 골목에서 포즈를 취했다.


기부자와 장학생의 만남

“장학금은 나를 믿어준다는 증표, 그 믿음 지키는 사람될 것”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채 50일도 남지 않았다. 해마다 수능 만점자들은 세간의 주목을 받지만, 자유전공학부 20학번 송영준 씨만큼 화제가 된 인물은 드물다. 출신 고등학교인 김해외고에 입학해 처음 치른 시험에서 전교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받았다가 3년 후 치른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대역전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가정 형편 때문에 과외는커녕 학원도 다녀 본 적이 없는 그가 일궈낸 작은 기적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박희망(AIC 9기) 남성정밀 대표가 그 감동에 응답해 학부 4년 동안 등록금 전액을 지원한다. 본회 ‘희망특지장학금’을 통해서다. 2006년 박 동문이 본회 장학빌딩 건립기금으로 출연한 1억원을 운용해 매 학기 2명의 재학생에게 등록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 남성정밀은 1999년 6월 출범해 올해로 창립 21주년을 맞았으며, 2019년 기준 400억원이 넘는 매출을 달성한 김해지역 기반 금속단조제품 제조업체다. 고향 선후배이기도 한 박희망 동문과 송영준 씨를 지난 9월 23일 서울 영등포에 있는 박 동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코로나19로 인해 2학기 장학금 수여식도 생략됐습니다. 아쉬움은 없는지.
박희망 : “제 장학생 중 한 명이 지난 8월 후기 학위수여식 때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졸업식이 온라인으로 대체돼 학위 받는 것도 못 보고, 예전처럼 장학증서도 직접 못 주고, 이대로 ‘빠이빠이’ 한다는 게 너무 아쉬웠어요. 밥 한번 먹자고 약속을 정했고, 내친김에 다른 장학생들도 초대했죠. 학생들도 저도 정말 즐거운 식사였습니다. 장학금 수여식과는 별도로 학기마다 한 번씩 장학생들과의 만남을 이어가려고 해요.”
송영준 : “그 모임에 저도 참석했습니다. 회장님과는 세 번째 만남이었죠. 회장님 지인 한 분과 장학생 4명이 함께했습니다. 어른들과의 식사 자리여서 한편으론 불편하지 않을까 긴장했는데 정말 편하게 대해주시고, 참석인원이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아서 장학생들끼리 친해질 수 있게 배려해주셨어요.”

-두 분은 같은 지역 출신이기도 합니다. 혹시 예전에도 인연이 있었는지, 장학금 지원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박희망 : “신문기사를 통해 송 군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전까지 장학생은 학교의 추천을 받아 선정했는데, 송 군은 사전에 제가 면접을 보기도 했죠. 처음 연락했을 땐 전화도 안 받았어요(웃음). 홀어머니 밑에서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았을 텐데 사교육 없이 수능 만점을 받았다니 무척 대견했죠. 송 군한테서 저와 닮은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중학생 때 아버지를 여읜 송 군처럼 저도 7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요. 송 군이 장학금을 받긴 하지만 제 손으로 생활비를 벌어 공부하고 있는 점도 낮엔 일하고 밤엔 학교를 다녔던 제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했어요. 어려운 여건에서 성장한 사람이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송 군에게 거는 기대가 커요.”

박 동문은 경남 남해 출신이지만, 김해에서 30년 넘게 회사를 꾸려가고 있으니 고향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하는 송영준 씨와 계속한 인터뷰.

“장학금은 누군가 나를 믿어주고 있다는 증표라고 생각해요. 중학교 때부터 장학금을 받았는데, 특히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기억에 남아요. 고등학교 들어와서 처음 치른 배치고사에서 127명 중 126등을 했을 때, 일찌감치 공부를 포기하고 공고로 전학해 빨리 취업해야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때 담임선생님이 저를 붙잡고 격려해주시면서 장학금을 알아봐 주셨어요. 선생님의 믿음에 보답하고 싶어서 미친 듯이 공부했고요. 평범하진 않은 가정환경에서 사교육 없이 수능 만점을 받은 것이 화제가 돼 희망특지장학금 외에도 여러 기업과 재단에서 장학금을 주셨습니다. 장학금을 받는다는 건 그 믿음을 업고 가는 거라 생각해요. 저를 신뢰해주시는 분들께 부끄러운 사람이 돼선 안 된다고 다짐하게 되죠. 경제적 안정뿐 아니라 성찰과 성장의 기회까지 주신 셈이에요.”

-김해장학재단, 정산장학재단, LH 등에서도 장학금을 지원했습니다. 다 합치면 얼마나 돼요?
“구체적인 액수는 말씀드리기 어렵고요(웃음). 나중에 보니 집에 빚이 좀 있더라고요. 등록금과 생활비만 남기고 다른 장학금은 모두 빚을 갚는 데 썼습니다. 이후에도 다른 재단과 기업에서 장학금을 주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사양하고 있어요. 저는 이제 어느 정도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이 되거든요. 더 어려운 형편에 있는 학생에게 고루 기회가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코로나 때문에 등교할 일이 별로 없죠? 요즘 대학 생활 어떤가요.

“1학기 땐 기숙사에 살면서도 수업은 계속 비대면으로 들었어요. 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 학생식당을 순회하기도 했고요. 예술계 식당 밥이 맛있더군요(웃음). 기말고사 때 세 과목을 대면으로 시험 쳤는데, 그때 처음 교수님 얼굴을 실물로 뵈었습니다. 화상으로 대화 나누던 동기들과도 처음 만났고요. 아무래도 좀 서먹서먹하긴 했죠. 2학기 들어서는 서울대입구역 근처 원룸에서 자취를 시작했어요. 기숙사 생활에 비해 기본 생활비가 더 들긴 하지만, 더 자유롭고 독립된 공간을 갖고 싶었거든요. 월요일엔 오후, 화·목·금요일엔 오전 오후에 걸쳐 비대면 수업을 듣고, 토요일과 일요일엔 일을 합니다. 고등학생 3명에게 과외지도를, 분당 소재 입시학원에서 학습 코칭을 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수요일 하루 쉽니다.”

송 씨의 일상을 듣자, 박 동문이 건강 관리에 더 신경을 쓰라고 말했다. 나이 들면 체력을 기르는 게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공부도 체력이 뒷받침돼야 할 수 있는 거라며 하루 1시간 이상은 운동에 투자하라고 따뜻하게 조언했다.

-사교육 없이 수능 만점을 받아 화제가 됐는데, 사교육계에 한발 담그고 계시네요. 좀 아이러니합니다.
“그러게요(웃음). 과외를 받은 적은 없지만, 고등학생 때도 친구들이 공부 관련 질문을 많이 해와서 과외지도 자체는 낯설지 않습니다. 다만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인지, 이전까진 학원에 가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건지, 학습 코칭하면서 사교육계의 면면을 전해 들을 땐 신기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스타강사의 수업을 듣기 위해 3층 접수실부터 1층 현관까지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것이 특히 그랬죠. 사교육 시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과외지도하는 학생이 못 풀던 문제를 풀게 될 땐 가르치는 보람도 느꼈습니다. 또 다른 수능 만점자로 키워보고 싶어요.”


장학생 송영준
사교육 없이 수능 만점 화제
주말엔 과외·학습 코칭 부업

기부자 박희망
어려운 여건서 성장한 사람
크게 성공할 가능성 보고 뽑아


-1학기 성적 잘 나왔나요? 대학공부를 해본 소감은.
“고등학교 땐 ‘이걸 왜 배우나’ 싶었던 데 비해 대학공부는 쓰임이 눈에 보여서 좋았어요. ‘서울대 수업’이라는 점도 의욕을 북돋웠고요. 지난 학기 성적은 총점 3.96점을 받았습니다. 다른 인터뷰에서 학점을 공개했더니 고등학교 후배가 제 성적을 알고 있더군요(웃음).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수업에서 평균을 많이 깎아 먹었어요. 수강할 때도 어려웠는데 성적도 B+로 비교적 낮게 나와 만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었습니다. 2학기 땐 더 열심히 공부해야죠.”

-이번 학기에 기대되는 수업이 있다면.
“‘시민 생활의 법적 이해’란 수업이요. 고등학교 때부터 법학에 관심이 많아서 ‘누가 좀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생각했거든요. 혼자 공부하려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교양서적을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고요. 로스쿨 교수님한테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여서 기대가 됩니다.”

-여러 인터뷰에서 검사가 되고 싶다는 장래희망을 일관되게 밝혀왔습니다. 검사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중학교 때까진 막연히 멋있다고 생각했고요. 고등학교 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정의구나’ 하는 깨달음에서 검사를 희망하게 됐습니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그런 성향이 있어요. 고2 때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은 정당한가’를 주제로 토론을 준비하면서 처음 법 공부를 접했습니다. 어려운 만큼 재미있었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좀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다른 진로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가 식당 일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다리가 편찮으셔서 쉬고 계세요.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생활비를 부쳐 드리고 있습니다. 제 위로 누나가 한 명 있는데, 타 대학 간호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에요. 간호실습 중이라 많이 바빠서 제가 주로 어머니를 챙겨 드리고 있어요.”

-로스쿨에 진학하면 학비가 더 많이 들 텐데.
“학원과 과외 일을 꾸준히 할 생각이에요. 지금 일하는 학원의 선생님이 과외 소개를 해주셨는데, 수능 만점자 프리미엄이 있으니까 ‘(과외비를) 더 부르라’고 하셨어요. 그렇지만 제가 제 공부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해서 남들 받는 만큼만 받겠다고 했죠. 대학원 진학할 즈음엔 저도 경력이 붙을 테니까 그땐 더 많이 받아도 되지 않을까요(웃음).”
송 군은 주말에 번 돈으로 본인의 생활비를 충당하고, 어머니 생활비로 매달 120만원을 부친다고 한다.

-수능을 앞두고 새삼 언론의 재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또다시 개인사가 회자 되는데 불편하진 않은지.
“처음 저를 대할 땐 불편할 수도 있는 가정환경이에요. 그러나 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버지가 없을 수도 있죠. 그게 되게 특별하고 희귀하고 감춰야 하는 그런 사실은 아니잖아요. 대학 와서 만난 친구들이 ‘어, 얘 아버지 안 계신데…’ 하며 어떻게 저를 대해야 할지 몰라 괜히 미안해 하거나 왠지 조심스러워 하거나 그럴까봐 걱정했는데, 원래 배려심이 없는 친구들인지(웃음) 전혀 상관없이 저를 대해줘요. 그게 고맙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해요. ‘내 취미는 탁구야’ 얘기할 수 있는 것처럼 가족관계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서울대에서 있었던 추억을 꼽는다면.
“고1 때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을 데리고 대학탐방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때 처음 서울대에 와 봤죠. 관정도서관을 올려다보며 ‘와, 여긴 정말 학구열이 불타는 곳이겠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고 ‘나도 여기 와서 공부하고 싶다’ 생각했었어요. 그땐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먼 미래의 꿈 같았는데, 입학하고 다시 그 자리에 서서 도서관을 올려다보니까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