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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호 2020년 8월] 뉴스 모교소식

홍수 막고 더위 식히고 작물도 키우고 일석삼조 서울대 옥상 빗물 텃밭

텃밭 아래 수십톤 빗물 ‘옥상 위의 댐’


홍수 막고 더위도 식히고 작물도 키우고… 일석삼조 서울대 옥상 빗물 텃밭

올여름 50일째 이어진 역대 최장 장마 가운데 관악캠퍼스 35동(공과대학) 옥상에 있는 ‘빗물 텃밭’이 주목받고 있다. 빗물 텃밭은 한무영 건설환경공학부 교수가 옥상에 빗물을 저장해 홍수를 막자는 목적으로 제안, 2012년 840㎡ 규모로 조성됐다. 지역 주민과 학내 구성원이 가꾸는 텃밭 아래 저수판이 빗물을 최대 170톤까지 저장, 폭우시 빗물 유출을 늦추고 폭염에는 건물 온도를 내려주는 효과가 있다. 올여름 50일째 이어진 역대 최장 장마 가운데 관악캠퍼스 35동(공과대학) 옥상에 있는 ‘빗물 텃밭’이 주목받고 있다. 빗물 텃밭은 한무영 건설환경공학부 교수가 옥상에 빗물을 저장해 홍수를 막자는 목적으로 제안, 2012년 840㎡ 규모로 조성됐다. 지역 주민과 학내 구성원이 가꾸는 텃밭 아래 저수판이 빗물을 최대 170톤까지 저장, 폭우시 빗물 유출을 늦추고 폭염에는 건물 온도를 내려주는 효과가 있다.


텃밭 아래 수십톤 빗물 ‘옥상 위의 댐’

홍수 방지 목적 한무영 교수 제안

긴 장맛비가 반짝 멎은 8월 12일, ‘빗물박사’ 한무영(토목공학73-77) 건설환경공학부 교수와 함께 35동 옥상 빗물 텃밭을 찾았다. 2012년 한 교수의 주도로 조성된 빗물 텃밭에 해바라기와 옥수수, 고추, 토마토 등 각종 꽃과 작물이 키를 다투며 자라나고 있었다. 쏟아진 비를 흠뻑 머금어 흙도, 식물도 촉촉하고 싱싱했다.

이 텃밭이 특별한 이유는 빗물을 저장할 수 있는 구조 때문이다. 비가 내리면 빗물이 텃밭 바깥으로 흐르지 않고 모인다. 밭 가장자리에 야트막한 벽을 둘러 오목하게 만든 덕이다. 모인 빗물은 흙으로 스며들어 흙 아래 설치한 저수판에 고이고, 저장량을 넘기면 배수된다. 저수판과 흙 사이 부직포를 깔아 흙이 유실되는 것을 막았다. “옥상 전체 면적 중 절반인 840㎡(255평) 규모 텃밭에 최대 170t까지 빗물을 저장할 수 있어 홍수 방지 효과가 있다”는 한 교수의 설명이다.

한 교수가 처음 빗물 텃밭을 제안한 것도 2012년 모교에 홍수 방지용 대형 저류조를 만들자는 논의 과정에서였다. 그는 “비가 많이 오지 않으면 무용한 대형 저류조 대신, 옥상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저장하자”고 주장했다. 때마침 옥상공원 사업을 추진하던 서울시의 지원과 한 교수의 사비를 반씩 합해 건설환경공학부 건물 옥상에 빗물 텃밭을 만들 수 있었다.

홍수 방지 효과는 바로 확인됐다. 텃밭을 만든 이듬해 중부지방에 폭우가 내렸다. “20시간 동안 239mm의 비가 내렸고 옆 건물은 분당 50mm까지 빗물 유출량이 급증했습니다. 35동은 유출량이 최대 분당 20mm에 불과했고 유출도 3시간 정도 지연됐죠. 당시 40t의 빗물을 저장했고요. 매번 물난리가 나는 강남역의 빌딩 일부라도 이 방법으로 빗물을 잡아 주면 큰 탈이 나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옥상 텃밭에 선 한무영 교수
한무영 교수가 옥상 텃밭에 섰다.

텃밭은 건물 상부의 온도를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측정 결과 폭염에 옆 건물의 콘크리트 옥상 표면 온도가 47도에 육박할 때, 텃밭이 있는 35동 옥상 온도는 21도에 불과했다. 옥상 온도가 낮아지면 건물 내부 온도도 내려간다. 겨울에는 단열 효과가 있어 냉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다. 이러한 효과를 입증해 2015년 오스트리아 에너지 글로브 재단으로부터 ‘에너지 글로브 어워드 국가상’을 받았다.

홍수 방지와 에너지 절약 외에 한 교수가 꼽는 빗물 텃밭의 이점은 커뮤니티다. 가로 1m, 세로 3m짜리 개인 텃밭 25개를 재학생과 교수, 교직원, 지역주민이 분양받아 일구고 공동 텃밭에서 감자와 배추를 함께 기른다. 벌통을 두고 도시 양봉을 하는 주민도 있다. 철철이 감자 수확과 김장, 꽃차 담그기 행사 등을 열어 텃밭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8만원의 분양비를 받고 매년 빠르게 신청이 마감된다. 관악구 주민인 임홍재(영문71-78) 전 주베트남대사와 조온영(회화74-78) 동문 부부도 이곳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다.

비어 있는 200여 개의 서울대 건물 옥상을 빗물 텃밭으로 가꾸면 학교에 좋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한 교수가 아이디어 하나를 제안했다. 동창회에 ‘서울대 기후 위기 대응 펀드’를 만들어 동문들이 서울대 옥상을 빗물 텃밭으로 바꾸는 주체가 되자는 것이다. “동문들이 자신이 졸업한 단과대 옥상에 빗물 텃밭을 조성하면 어떨까요. 소일거리도 되고, 주말에 손주들 데리고 와서 자랑도 하고요. 이미 토목공학과 동문들이 ‘서토밭’이란 이름으로 텃밭을 받아 경작하고 있어요. 의대 ‘서의밭’, 법대 ‘서법밭’ 등이 생겨나고 전국의 캠퍼스로도 퍼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빗물 텃밭 한쪽에는 탱크를 두고 빗물을 모아 조경과 청소 용수로 쓴다. 학내 변기를 초절수형으로 교체하는 일도 진행해온 한 교수는 “학내 변기 8,000개 중 500개를 30만원짜리 초절수형 변기로 바꿨더니 물 10만 톤을 절약했고, 수도요금 2억원을 아꼈다”며 “장학금뿐만 아니라 모교에 텃밭을 가꾸고, 초절수형 변기로 교체해주는 작은 일로도 동문들이 모교와 후배들을 도울 수 있다”고 역설했다.

내년 정년퇴직을 앞둔 한 교수는 누구든 빗물 텃밭을 가꾸는 데 참고할 수 있도록 노하우를 담은 책을 쓰고 있다. 정년 후엔 “10여 년간 해온 개도국 빗물식수화 사업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