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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호 2020년 7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코로나로 고생하는 6·25 참전국, 서울대 이름으로 지원 어떤가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동문을 찾아서
 
코로나로 고생하는 6·25 참전국, 서울대 이름으로 지원 어떤가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대담 : 김환영 중앙콘텐트랩 대기자  
 
 
김종훈(건축69-73) 한미글로벌 회장이 본회 상임부회장을 맡아 총동창회의 사회공헌 활동에 힘을 보탠다. 김 동문은 사회복지법인 ‘따뜻한 동행’과 사단법인 ‘CEO지식나눔’ 등을 창립해 사회공헌에 앞장서고 있다. 한미글로벌에서 행복 경영을 실천해 ‘대한민국 100대 CEO’에 15번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엔 사전 관리의 중요성을 담은 책 ‘프리콘’을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6월 26일 서울 삼성동 도심공항타워 내 한미글로벌 집무실에서 김환영(외교81-85) 중앙콘텐트랩 대기자가 그를 만났다. 

-총동창회에서 중책을 맡으셨다고요.
“아직 정해진 건 없고요. 이희범 회장과 사회공헌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요. 서울대 동창회라면 국내에 머물지 말고 글로벌하게 활동하자고 조언했습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이 6·25 참전국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입니다. 현재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는데, 우리의 선진 의료기술이 필요한 곳이 많을 겁니다. 의대 출신들이 얼마나 뛰어납니까. 도울 방법이 있을 거예요. 한국은 감사할 줄 알고 은혜 갚는 민족이라는 것을 서울대 이름으로 전하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사회에 서울대, 서울대 출신에 대한 불신 수준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회공헌 활동이 필요하고요.
“서울대가 산업화, 민주화 과정에서 국가 발전에 기여했지만 정보화시대, 4차혁명이 진행되는 오늘날엔 존재감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좋지 않은 뉴스의 주인공으로 서울대 출신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하고요. 윤리적으로 깨끗해야 하고 섬김의 리더십이 절실하죠.”

-잘 먹고 잘사는데 뭉치기까지 하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습니다. 
“이익집단화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죠. 사회공헌을 비롯해 국가 사회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죠. 특히 아직도 만연한 부정부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서울대 출신이 중심이 돼야 합니다. 모교에서도 윤리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하고요.”

-미국 사회에서 대학 동문들이 서로 챙겨주는 일은 우리보다 훨씬 빈번하고 당연시한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들의 국가 사회에 대한 봉사와 기여가 컸습니다.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등 큰 부자들을 보세요. 전 재산을 내놓잖아요. 대한민국 큰 부자 중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미국은 확실히 성공한 리더들 사이에 기부하지 않으면 왕따 당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성공한 기업인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지속가능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어요. 지속가능성의 핵심은 기부거든요. 유수 기업들은 기부, 봉사를 넘어 사회적 가치 창출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문화가 우리에게 이식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책 ‘프리콘’ 반응은 어떤가요?
“여기저기서 유익하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며칠 전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가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에 앞서 처음부터 완벽한 성공을 준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고 하더군요.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실패했을 때, 그 실패가 의미 있지 도덕적 해이 등으로 실패하는 것은 자산이 될 수 없죠. 처음부터 성공하는 길을 가는 게 본인이나 사회에 유익하지 않겠습니까? 대학생 창업 멘토링 할 때 ‘대학 졸업하자마자 창업할 생각 말고, 사회 경험을 쌓은 뒤, 어느 정도 수준이 됐을 때 사업을 해도 늦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한미글로벌을 그렇게 창업하셨지요? 
“중소기업에서 출발해 삼성물산에서 경험을 쌓았어요. 1996년 한미파슨스를 창업했죠. 바로 IMF를 겪으며 환율 문제로 고생도 했지만, 글로벌 스탠다드 기업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외국 투자자들 건설 프로젝트를 많이 수행했죠.”

-한미파슨스에서 한미글로벌로 사명을 변경한 이유는?
“미국 파슨스 그룹과 합작법인으로 출발하면서 한미파슨스로 지었죠. 우리 회사는 창립 4년째부터 해외에 진출했습니다. 국내에서는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의 개념이 생소해 확장성에 문제가 있었어요. 중동에 진출하다 보니 현지 파슨스 그룹과 갈등을 빚게 됐습니다. 파슨스 그룹에서 중동 시장이 꽤 큰 포션을 차지하고 있었거든요. 왜 여기까지 와서 자기네 이름을 쓰느냐는 거지요. 우린 해외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고요. 그런 일련의 일들로 한미글로벌로 사명을 바꿨습니다.”

-현재 우리 건설 시장에서 PM을 받는 비율이 얼마나 됩니까?
“정확한 통계는 없어요. 대략 10~20%가 PM 서비스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건설 3대 축이 발주자, 설계자, 시공자입니다. 사실 이 3대 축이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철저하게 관리하면 PM 업체가 필요 없죠. 그러나 품질, 안전, 원가 측면에서 원래 계획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원가에서 적게는 10~20%, 많게는 두 배, 세 배 오르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합니다. 한국 건설업체 가운데 중동 등 해외에서 손해난 프로젝트가 많아요.”


우리나라에 건설관리업 처음 도입
2019년 세계 9위 PM회사로 성장 
68세 모교 건축학 박사 학위 취득 
“꾸준히 책 읽는 사람, 깊이가 달라”
-그런데 왜 안 받을까요?
“우리 노력 부족도 있고, 건설업체 수준의 문제입니다. 사실 건설 외 경영 분야에서도 맥킨지 등의 경영 컨설팅 업체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 업체가 건설업에서 이런 컨설팅 업체의 일을 하는 셈입니다. 이러한 업무는 지식경영을 바탕으로 한 선진국형 비즈니스입니다. 뛰어난 기술력과 우수한 인력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하거든요. 현재 미국 업체들을 제외하곤 우리 회사가 세계 9위, 미국 업체를 포함하면 30위 정도의 수준입니다.”

-국내 첫 건설관리 회사로서 한미글로벌을 연 매출 3,000억원, 직원 1,500명 규모의 건실한 중견업체로 키워왔습니다. 그 과정에 고난도 있었겠지요.
“외환위기 때 달러 환율이 800원대에서 2,000원으로 급등하면서 어려움에 봉착했고,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때 급여를 제대로 주지 못하기도 했죠. 구성원들과 고통 분담은 하지만 절대 해고는 없다고 선포했어요. 그런 과정에서 응집력이 생겼고요. 창립 초기부터 구성원이 행복한 회사를 비전으로 삼고 정직, 안전, 고객, 탁월, 공헌이라는 핵심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전 직원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매월 조회할 때 핵심가치와 비전, 미션을 제창하고 자기 몸에 항상 지니고 다닙니다.”

-삼성에 남았으면 조금은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을 텐데, 후회한 적은 없으세요.
“후회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그렇지만 생각하는 대로 실행하고 뭔가를 성취했을 때 그 맛은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늘 새로움을 꿈꿔 사업이 체질에 맞습니다.”

-독서경영을 도입해 국내 여러 기업에 영향을 주기도 했는데.
“직원들의 성장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인당 연간 온라인 교육 포함해 140시간 교육이 이뤄집니다. 그중에 독서가 있죠. 책을 보는 사람과 안 보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확연한 차이가 생깁니다. 깊이가 달라요. 교육, 독서가 궁극적으로 구성원의 행복과 연결돼 있습니다.”

-직원에게 안식년제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안식년제는 제가 쉬고 싶어서 만든 제도예요. 2005년 무렵 번아웃이 왔어요. 어떻게든지 쉬어야겠다 해서 제가 첫 수혜자가 됐죠. 5년 일하면 2달의 유급 휴가가 주어집니다. 다만 평소 우리 회사의 업무 강도는 무척 센 편입니다. ”

-신입사원 면접에서 중시하는 것은.
“열정을 중요하게 봅니다. 글로벌 회사이기 때문에 평균 이상의 영어가 돼야 하고요. 그 외 학력, 스펙 아무것도 보지 않습니다. 젊은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처음부터 완벽한 직장에 들어가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중소·중견 기업이 자기의 능력을 펼치기에는 좋습니다. 본인이 잘하면 경영자와 일할 기회도 오고요. 대기업 퇴사율이 생각보다 높습니다.”

-회장님에게 서울대는 어떤 의미입니까.
“1968년 사대부고 졸업 당시 사고를 쳐 무기정학을 당하는 바람에 입학 원서도 내지 못했습니다. 재수해서 운 좋게 입학했어요. 당시 건축과 경쟁률이 높았거든요. 모교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은인이자 자부심의 원천입니다. 서울대 출신은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고요.”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1학년 때는 고등학교 때의 껄렁끼가 남아서 공부 안 하고 놀았어요. 당시 3선 개헌 반대 데모가 한창이었는데, 열심히 참여했죠. 공릉동에서 중랑교 지나 외대까지, 정말 데모다운 데모였어요. 2학년 때부터 공부를 좀 했습니다. 학과 공부 서클인 ‘주택문제연구회’에서 농촌주택 문제에 관심을 가졌어요. 4학년 때는 중랑천 일대 판자촌의 실태를 조사하고 리포트를 썼고요. 6, 7명의 가족이 부엌도 없이 방 하나에 사는, 굉장히 열악한 상황을 보기도 했지요. 공릉동 기숙사에서 2년 정도 살면서 좋은 친구들을 사귄 추억도 있습니다.”

-연애는 안 하셨습니까.
“1, 2학년 때 미팅이 유행이라 열심히 했지요. 제가 홍대 미대 여학생들과 다리를 놔서 친구들과 단체 미팅을 했죠. 제 파트너보다 친구 파트너가 마음에 들어 만나기도 했고요.(웃음)”  

-모교에서 68세에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서울대가 워낙 철두철미해서 고생 좀 했습니다. 학위 시작한 지 14년 만에 받았으니까요.  왜 이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아야 할까, 수없이 물어봤습니다. 내가 겪은 경험과 배운 지식을 후학들에게 남겨야겠다는 심정으로 박사 학위 논문을 집필했어요. 후배 교수, 회사 직원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지요. 2017년 당시 최고령 졸업자로 학위를 받아 무척 감격스러웠습니다.” 

-삼성물산에서 첫 현장 소장 발령지가 호암교수회관이었다고요.
“호암교수회관 지을 때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88올림픽이 열린 1988년 공사가 시작돼 1990년 마쳤어요. 올해가 준공 30주년입니다. 서울대학교 내에 이병철 선대 회장 아호인 ‘호암’을 딴 최초의 기증공사였기 때문에 규모와 관계없이 그룹에서는 매우 중요한 공사였습니다. 이건희 회장님께서 기공식, 준공식 모두 참석하셨으니까요. 
건설부지가 그린벨트 내 지역이고 배드민턴 동호회가 일부를 사용하고 있었어요. 당연히 반발이 있었지요. 다른 곳에 이전해 주기로 하고 공사를 시작했죠. 900주의 수목을 벌목했는데, 관악구청 녹지과 직원이 나와서 난리를 치는 거예요. 당시 그린벨트 관리가 매우 엄격하던 시절입니다. 이 사건 때문에 여러 날을 구청에 불려 다니는 등 무척 고생했습니다. 벌목 사건을 비롯해 사전 준공 처리 등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계신데 회장님께 영향을 준 사람이 궁금합니다.
“스티브 잡스, 리콴유, 이순신, 헬렌 니어링을 들 수 있습니다. 모두 자서전 등의 책을 통해 접한 인물입니다. 스티브 잡스 자서전이 900페이지가 넘고, 리콴유 자서전은 2,000페이지(두 권)에 달합니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어요. 현 시대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들 이야기를 젊은이들이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그 삶을 모방하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게 배웠고요.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는 소탈한 인간미, 애국심을 느꼈어요.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란 책에서 사랑과 인생, 죽음에 대한 성찰이 무척 감명 깊었습니다.” 

-회장님에게 남은 소명이라면.
“창업 때 세 가지를 생각했어요. 매출 1조원 달성, 구성원이 행복한 회사, 세계 10대 PM회사. 우리 비전이죠.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 흔적을 뚜렷하게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회사를 성장시켜 후배들에게 남겨주고 싶어요. 오래전에 자식들에게는 넘겨주지 않는다고 천명했고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
“기업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소명이 많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비롯해 여러 사회적 난제 해결에 기업이 나서야 합니다. 정부에만 맡길 일이 아니에요. 능력은 오히려 사기업들이 월등히 낫습니다. 기업의 1차적 목적은 이익 창출이겠지만 어느 정도 충족이 됐다면 사회적 이슈, 더 넓게 인류의 행복 증진을 위해 기여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정리=김남주 기자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오른쪽)이 김환영 중앙콘텐트랩 대기자와 만났다.

김 동문은
1949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6·25 전쟁 때 대구로 피난,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대 사대부고와 모교 건축과 졸업 후 중소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삼성물산을 거쳐 1996년 한미글로벌(전 한미파슨스)을 창업, 국내 최초로 건설사업관리(PM/CM)사업을 도입했다. 24년간 세계 58개국에서 2,500여 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미국, 영국, 국내 전문기업을 성공적으로 M&A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중이다. 

지난해 미국의 세계적인 건설전문지인 ‘ENR(Engineering News Record)’에서 세계 9위의 PM/CM회사로 선정됐다. 행복 경영을 실천하며 9년 연속 일하기 좋은 기업(GWP, 최근 3년 대상), 노사문화우수기업(고용노동부), 가족친화기업(여성가족부)에 뽑혔다.

베스트셀러 경영 에세이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2010)와 ‘완벽을 위한 열정’(2016), ‘프리콘’(2020) 등을 저술했다. 프리콘의 인세 전액은 ‘따뜻한 동행’으로 들어간다. 
건설산업비전포럼 창립 공동대표, 건설산업선진화 위원장, 사회복지법인 따뜻한 동행 설립,  CEO지식나눔 창립, 한반도국토포럼 창립, 서울사이버대학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가족 가운데 서울대인으로 부친이 서울대 상대의 전신인 경성 고상을 나왔고 형이 법대 19회다. 취미로 등산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