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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호 2020년 3월] 뉴스 본회소식

박호전 특지장학금 출연동문과 ROTC 장학생 인터뷰

“내 장학금 받고 다 잘돼서 술 한병씩 들고 오세요”

박호전 동문과 ROTC 장학생들이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왼쪽부터 소위 임관하는 김형석·축구 유튜버 김찬희 장학생, 박 동문, 모교 공대 박사과정 김희원·모교 의대 군 위탁 장학생 방의철 동문, 4학년에 진학하는 최창환 장학생.



“내 장학금 받고 다 잘돼서 술 한병씩 들고 오세요”

박호전 동문과 ROTC 후보생


매 학기 본회 장학금 수여식 때면 ROTC 제복을 단정하게 갖춰 입은 한 무리의 재학생들이 단상 위에 도열한다. 박호전(경영62-66)·김영희(작곡62-66) 동문 부부의 특지장학금 수혜자들이다. 전공도 학년도 제각각인 ROTC 후보생들을 ‘특별 지목’했으니 김영희 동문은 몰라도 박호전 동문은 필시 학군장교 출신일 거라 짐작했었다. 그러나 박 동문은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수차례 학제 개편을 거치면서 출신 단과대학마저 경영대와 경제학부로 나뉘었다. ‘서울대인’이라는 공통분모 외엔 특별한 접점이 없는데 ‘서울대인’이라는 것 하나만 보고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아스콘·레미콘 업계 선도기업 삼덕 회장인 박 동문은 2009년 본회 장학기금으로 10억원을 출연, 그 이자 수익으로 2011년부터 현재까지 60여 명의 ROTC 후보생에게 약 5억5,0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상대동창회 향상장학재단을 통해서도 후배 사랑을 실천한다.

박 동문과 특지장학생 김희원(전기정보08-14) 모교 공대 박사과정 재학생, 김찬희(체육교육09-13) 축구 유튜버, 방의철(산림과학14-18) 모교 의대 군 위탁 장학생, 김형석(종교16-20) 3월 육군 소위 임관예정자, 최창환(성악17입) 모교 4학년 진학생 등을 지난 2월 24일 여의도에 있는 한 식당에서 만났다. 박 동문의 비서로 일하면서 10년 동안 장학생들을 관리해온 삼덕 김숙아 부장도 함께했다. 

 공학박사·유튜버 장학생 눈길
“좋은 소식 전하는 게 보답”

“젊은 후배들 왁자한 웃음에
 덩달아 젊어지는 기분이에요”

-2009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선 영·호남 지역 재학생들에 대한 지원을 희망하셨습니다. 애초 구상과는 많이 다른 것 같은데요.
박호전 “김종섭(사회사업66-70) 스페코삼익그룹 회장의 권유가 영향을 끼쳤습니다. 학창시절엔 인연이 없다가 사회 나와서 만난 절친이죠. 김 회장이 학군장교 출신이었고 모교 ROTC 동문회 회장을 역임했어요. 장학기금 출연 결정을 하고 얼마 안 있어 김 회장이 저를 찾아와 ROTC 후보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권했습니다. 모교 학군단이 대한민국 최초의 학군단이자 최대 규모의 학군단인데, 시간이 갈수록 희망 학생이 줄어 위상이 쪼그라들고 있다, 장학금으로 지원을 독려해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가는 데 힘을 보태달라고요. 모교의 우수한 인재들이 군에 좀 더 오래 머물면서 복무하면 사회진출 전부터 조금이나마 더 국가에 기여하게 될 거라 기대하고 김 회장의 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방의철 “우리나라는 국방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은 것 같아요. 미국의 경우는 군인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이 문화의 일부로 형성돼 있습니다. 모교 출신의 우수한 인재들이 군에 많이 남아서 군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 공헌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점에서 박 회장님의 장학금 지원은 우리 군의 발전에도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여파로 본회 장학금 수여식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쉬움은 없는지.
김희원 “회장님과 장학생들은 장학금 수여식 때가 아니더라도 수시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회장님의 회사명을 딴 ‘삼덕장학회’란 이름으로 기수별 모임을 매월, 기수 통합 모임을 매 학기마다 열고 있어요. 기 회장이 동기 장학생들과의 연락을 맡아 모임 참석 여부를 확인해 김숙아 부장님에게 전달하면 삼덕빌딩 회장님 방에서 만납니다. 장학생들이 따로 만날 때 드는 비용도 영수증을 내면 김 부장님이 지출된 경비 일체를 처리해주세요. 주머니 사정 뻔한 학생들끼리 만나도 비용 부담이 없으니 마음이 편하죠. 무엇보다 박 회장님께서 저희 할아버지뻘 되는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격의 없이 호탕하게 대해주시니까 만나 뵐 때마다 항상 반갑고 좋습니다.”

김찬희 “저희는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거죠(웃음).”

박호전 “이번 학기에도 개강 전 2월 18일, 제 사무실에서 장학생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준비했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됐지만. 이런 젊은 친구들 십수 명이 모여 즐겁게 어울리며 ‘와아’하는데, 그 웃음소리가 회장실을 쩌렁쩌렁 울립니다. 술 한 잔씩 했으니 목소리는 더 커져서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어디 난리 난 줄 알 거예요(웃음). 그저 그런 모습이 흐뭇한 거죠. 좋은 기운을 받았는지 저도 덩달아 젊어지는 것 같고요. 장학금 수여식 때 보면 우리 장학생들이 키도 크고 인물도 훤합니다. 국가가 보증하는 청년들과 제가 이렇게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가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지난 2월 24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식당에서 박호전 동문과 ROTC 장학생들이 만났다.



-장학생 입장에선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어떤 식으로든 보답을 해드려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을 것 같아요.
방의철 “장학금은 말 그대로 열심히 공부하라고 주신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열공’의 동기가 돼요. 제가 2학년 때까진 학점이 3.2 정도였는데 장학금을 받은 3, 4학년 때는 4.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김희원 “학부 졸업하고 대학원 와서 다시 박 회장님의 장학금을 받고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장학생 한 명 한 명의 장래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해주시고 조언도 해주세요. 대학원 진학을 희망한다는 학부 때 드렸던 말씀을 저는 잊고 있었는데 회장님께서 먼저 기억해주시고 장학생으로 뽑아주셨어요. 저는 다른 장학생들보다 긴 시간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회장님 뵐 때마다 부담이 되긴 해요. 저희가 회장님께 감히 어떤 물질적인 보답을 하긴 힘들 것 같고, 장학생들이 저마다 좋은 뉴스거리를 만들어 오는 게 나름의 보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회장님께 전할 만한 좋은 뉴스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더 열심히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운 좋게도 두 개의 좋은 뉴스를 갖고 왔습니다. 

결혼은 아니고요(웃음). 인공지능을 활용한 동영상 슬로모션 제작 대회에서 저희 연구실이 세계 2등을 했습니다. 회장님께 소소한 뉴스를 전해드리면 ‘그거 돈 되나?’ 물으셔서(웃음)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빠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 중엔 스타트업을 설립해 시장에 내놓을 계획입니다. 다른 하나는 제가 실리콘밸리에 있는 IT기업 ‘인비디아’에 인턴을 가게 됐습니다. 자율주행을 연구하는 부서에 가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할 예정입니다. BMW, 벤츠 등 세계의 명차에 적용될 거고요.”

박호전 “나 기자, 앞으로 몇 년 후에는 이 사람을 인터뷰하러 가게 될 거예요.”(일동 함성)

-최근 학교의 장학제도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장학생 당사자로서 어떤 의견이신지.
최창환 “가정 형편으로 따지면 저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역 후엔 여자친구와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갈 생각도 하고 있거든요. 박 회장님 덕분에 뜻밖의 혜택을 받게 돼서 이전 장학제도에 만족합니다. 안 바뀌었으면 좋겠어요(웃음).”

방의철 “성적이든 가정 형편이든 장학금을 지원하는 기준이 어느 한쪽에 편중되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장학금 받았다고 꼭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집안 형편과 공부에 대한 열의 사이에 특별한 연관성도 없는 것 같습니다. ROTC 후보생의 경우는 방학 동안에 군사 훈련을 받아야 해서 ‘스누 인 더 월드(SNU in the world)’ 같은 학교의 좋은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전보다 모교 학군단의 위상이 많이 낮아졌고요. 장학생을 선발할 때 학생들이 처한 이런 다양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으면 합니다.”

김희원 “대학원을 다녀 보니 학부 때 장학금 기회가 많았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 연구실에 대학원생이 20명 정도 되는데 장학금을 받는 학생은 4명 안팎에 불과합니다. 외부 장학금이 대부분이고 학점순으로 잘라서 주기 때문에 보이지 않게 갈등을 겪기도 해요. 조교로 일하면서 받는 장학금도 있지만 한 학기에 제한돼 나머지 다섯 학기는 자비로 충당해야 합니다. 전역 후 취직을 해서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기술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꿈을 좇아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습니다. 1년 등록금이 1,000만원쯤 돼요. 장교로 군 생활하면서 모은 돈도 좀 있고 학부생 때처럼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할 수도 있지만,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 갓 스물 넘겼을 때처럼 학교를 다닌다고 하면 회의감이 들죠. 

집안 형편이 넉넉해 부모님이 도와주신다고 해도 나잇값 못 하는 거 아닌가 싶어 또 고민하게 되고요. 카이스트나 포스텍은 대학원생 전원이 전액 장학금을 받고 기숙사도 무료로 제공됩니다. 외려 돈을 모아 갖고 나오기도 해요. 서울대는 그런 지원이 거의 없고 생활 물가도 더 비싸서 연구생들의 어려움이 많습니다. 

제가 요즘 주목받는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고, 열심히 해서 국가기술 발전에 공헌할 자신도 있는데, 이런 고민 때문에 포기하고 싶진 않았어요. 박 회장님 장학금이 정말 큰 힘이 됐죠. 대학원엔 석사과정도 있고 석박사 통합과정도 있고 박사과정도 있습니다. 각 학과마다 성격도 다르고요.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았다는 신뢰를 얻으려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이 제시돼야 할 텐데 이처럼 학과 성격도, 과정도 다양하다 보니 장학금에 대한 공정성 논란을 해소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김찬희 “박 회장님 같은 독지가가 많으면 문제가 더 쉽게 해결될 텐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으니 안타깝네요.”


박호전·김영희 특지장학생들이 보내온 감사 편지.



-장학생으로서 장학사업 동참은 언제쯤 예상하시나요.
김형석 “장학금을 받으러 갈 때마다 나는 언제쯤 주는 입장이 돼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합니다. 솔직히 이제 곧 소위 임관하는 제 입장에선 아직 답이 없는 문제예요. ‘성공’이라는 게 쉬운 일도, 조급하게 쫓는다고 되는 일도 아닐 테니까요. 다만 앞서 말씀하신 김희원, 방의철 선배의 얘기를 들으니 장학금이 필요한 데가 참 많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1 대 1로 조금씩 지원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을 때 크게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학생들이 쭈뼛해 할 수 있는 이 질문을 길게 이어가려 하자 박호전 동문이 손사래를 치며 화제를 돌렸다. 김찬희 동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김진짜’를 소개하며 대화를 유도했다.

-김찬희 동문은 유튜버로 상당한 수익을 올린다고 들었어요.
김찬희 “유튜브를 시작한 지 1년 정도 됐는데 예상치 못하게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습니다. 인기가 늘면서 수입도 자연스레 올라갔죠. 그런데 저작권 관련 문제로 채널이 하루아침에 삭제됐습니다. 그 누구보다 저작권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고 가이드라인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36만 구독자를 잃게 됐죠. 원래 꿈은 영국 프로축구 리그의 코치였습니다. 유학 가서 지도자 과정을 밟았고, 9부 리그 아마추어 팀에서 코칭을 하면서 운동생리학 석사과정을 밟기도 했습니다. 막상 현지에 가보니 인종차별의 벽이 너무 높았어요. 안정환 선수가 얼마 전 방송에서 했던 말이 귀에 콱 꽂히더라고요. ‘용병으로는 손흥민, 박지성 쓸 수 있다. 그러나 군인으로 치면 코치는 지휘관인데 그런 중책을 아시아인에게 맡긴다?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고요.

결혼하고 떠난 유학이라 절박하긴 했지만, 벽을 실감하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동안은 축구가 너무 싫었어요. 애증이었겠죠. 이런저런 사업을 해봤지만, 결국엔 축구로 돌아왔습니다. 경기 해설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업로드 했죠. 오랫동안 공부한 분야라 그런지 정말 많은 축구 팬들에게 뜻밖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지만, 더 많은 분들이 축구를 재밌게 즐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김희원 “저는 찬희 형 유튜브에서 해설을 본 다음 중계방송을 시청해요. 형 입담이 워낙 뛰어나서 축구에 별 관심이 없는 저도 영상을 보고 있으면 경기가 궁금해지거든요. 최근 올라온 축구 해설 영상에선 눈 덮인 중고등학교 운동장에서 경기 상황을 직접 재현하는데 그것도 무척 재밌더라고요(웃음). 해설하는 그대로 공이 날아가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축구 실력도 수준급이에요.”

기회를 놓칠세라 박호전 동문이 김찬희 동문의 자랑을 이어갔다.

박호전 “찬희가 공을 차면 골대 끝에 걸린 손수건을 맞힙니다. 땅에 퉁겨진 공을 차서 농구 골대에 골인시키기도 하고요. 저와 제 아내도 찬희의 영상을 즐겨 봅니다.”

안타까운 마음 때문인지 박 동문은 저작권 문제가 불거진 회사의 사장을 찾아가 설득해 보라고 길게 조언했다. 참가 장학생 중 막내인 최창환 학생의 이름을 부르며 진로계획을 묻기도 했다. 와인을 즐겨 마시는 박 동문의 취향을 헤아려 이날 참석한 장학생 중 두 명이 각자 와인을 한 병씩 가져왔다. 박 동문은 “우리 장학생들이 다 잘 돼서 이런 술이 말로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점심 장사를 끝낸 식당 종업원들이 청소를 다 마칠 때까지 박 동문과 장학생들의 이야기는 길게 이어졌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