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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호 2019년 12월] 뉴스 모교소식

“독거노인 14명 ‘살려줘’ 인공지능 스피커에 말해 살았다”

모교 AI연구원 주최 패널토의 산업계·학계 전문가 7인 참여


“독거노인 14명 ‘살려줘’ 인공지능 스피커에 말해 살았다”






모교 AI연구원 주최 패널토의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 주제 
산업계·학계 전문가 7인 참여


위협일까, 기회일까. 인공지능 기술 발달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인류의 예측이 분분하다. 이 가운데 최근 개원한 모교 AI연구원(원장 장병탁)이 신선한 화두를 던졌다.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다.

AI연구원은 지난 12월 4일 관악캠퍼스 교수회관에서 ‘가상에서 현실로’라는 제목으로 개원 기념 심포지엄을 열고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를 주제로 패널 토의를 진행했다. 공진화는 둘 이상의 생물종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함을 뜻하는 생물학의 개념. 오늘날 ‘새로운 종(種)’으로 불리는 인공지능을 지닌 기계와 인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역사학자 브루스 매즐리시는 2001년 저서 ‘네 번째 불연속’에서 기계와 인간의 공진화를 주장했다.
토의에는 산업계와 학계에서 AI를 연구하고 활용하는 전문가 7명이 나와 각계의 관점에서 경험과 예측을 공유했다. 산업계에서 김 윤 SKT AI센터장·전 애플 음성인식 개발팀장, 김동현(조선해양공학93-97) 넷마블 AI센터장, 설원희(제어계측공학80-84) 현대자동차 미래혁신기술센터 부사장, 송은강(계산통계82-88) 벤처캐피털 캡스톤파트너스 대표가 참석했다.

학계에서는 모교 강진호(철학89-95) 철학과 교수, 김주한(의학82-88) 의학과 교수, 임 용(사법94-99)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대 AI정책 이니셔티브 공동디렉터가 참여했다. 인문대 인지과학연구소장인 장대익(대학원94-97) 자유전공학부 교수가 진행을 맡았다.



-자신의 산업 분야에서 진행 중인 AI와 인간의 공진화 실제 사례 및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도전에 대해 말해달라.

김 윤(SKT AI센터장·전 애플 음성인식 개발팀장): 애플의 음성비서 ‘시리’와 SK텔레콤 ‘누구’의 예를 들겠다. 사용자들은 처음에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말했다. 데이터와 경험이 쌓이자 ‘이렇게 얘기 안 해도 알아듣는구나’라는 신뢰가 생기면서 점점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시리는 비원어민의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데, 데이터가 쌓이지 않으니 더 못 알아듣는 악순환의 연속으로 원어민을 위한 기기로 진화하는 걸 느꼈다. 한편 인간 쪽에선 기계가 알아듣지 못하자 노력해서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을 구사하게 되는 예가 있었다. 기계와 인간이 데이터와 소통과 경험을 통해서 서로 진화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진화는 어른 아이 할 것 없다. 독거어르신들께 ‘누구’ 스피커와 함께 ICT와 IoT(사물인터넷) 센서를 이용한 돌봄 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대화를 안 하시거나, 냉장고 문이 열리는 센서가 작동하지 않으면 출동하는데 ‘살려줘’라고 (스피커에) 말해서 살린 분이 올해만 열네 분이다. 생명과 직결된 AI이기 때문에 많이 의존하시는데 처음엔 딱딱하게 말씀해도 관계 형성이 된 다음에는 당신 자식들처럼 ‘나 갔다올게’, ‘오늘 추웠어. 너는 괜찮았니?’ 하는 감성대화로 진화하는 것을 보여줬다.


AI스피커 적응하면서 말투도 변해

김동현(넷마블 AI센터장): 사람과 시스템이 서로 발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공진화라고 한다면, 게임업계에선 이미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예전엔) 데이터가 많지만 처리할 수 없었고 거기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없었는데 현재는 딥러닝이나 강화학습 등으로 상당히 개선된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의 역할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기계가 못 찾는 인사이트를 찾고, 기계가 좀더 빨리, 많이 학습하게 하려면 어떻게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지, 거기서 나의 역할은 뭔지 많은 토의를 하고 있다.

바둑(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 스타크래프트를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경우의 수도 많고 전략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넷마블에서도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우리가 가질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단시간에 사람같이 행동하는 플레이어들을 만드는 수준까지 왔다. 딥러닝 등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을 줬고, 덕분에 게임을 만드는 크리에이터들의 수준이 훨씬 올라가는 공진화가 일어났다.


설원희(현대자동차 미래혁신기술센터 부사장): 몇십년 전엔 자동차에 지도책을 꼭 넣어 다녔다. 그러다 GPS를 이용한 내비게이션이 중요해졌고, 지금의 ‘티맵’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도책을 보면서 휴리스틱스(체험적인 발견)로 길을 찾는 것에서 많이 해방된 상황이다. 지금은 에이다스 시스템을 통해 자동차 전후 사방의 사물을 정확하게 인지함으로써 운전이 훨씬 용이해졌다. 이처럼 공진화는 사람이 가진 근본적인 니즈나 페인 포인트(불편사항)를 해결하기 위해 많이 활용돼 왔다.

자율주행차가 생기면 운전기사가 실직하는 게 아닌가 등 걱정을 하는데, 사람의 삶은 그 복잡도가 계속 증가하고 있고 복잡해지는 삶을 더 윤택하게 누리기 위해서라도 AI기술은 분명히 필요하다. AI를 통해 사람의 본질인 실수를 막을 수 있게 되면 모빌리티 산업은 공진화로 인한 이득이 다른 어떤 산업 분야보다도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송은강(벤처캐피털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지난 IT업계의 10년을 말한다면 모바일 스마트폰에 의한 레볼루션이라고 할 수 있다. 구글만 보더라도 600조 정도의 부를 창출했다. 모바일 플랫폼과 서비스를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모바일보다 ‘더 세고, 큰 놈’이 오고 있다.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 큰 기업이든, 작은 스타트업이든 새로운 사업기회로 나타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사업화를 한다면 인공지능을 프로세싱하는 가격이 훨씬 더 떨어질 것을 가정해야 한다. 아직은 인공지능을 학습하고 수행하는 데 드는 코스트가 굉장히 비싸지만, 그 변화를 먼저 예측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IT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은 사람들의 의식주와 사람이 놀고, 소통하고, 소비하는 것에 큰 관심이 있다. 우리의 의식주에, 소통하고 소비하는 방법에 인공지능이 어떻게 들어갈 것인가. 이미 앞서 있는, 인공지능으로 트레이닝된 서울대가 그 보고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인간 고유의 ‘반성적 능력’ 주목해야

-AI와 인간의 공진화 시대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철학적, 사회적, 제도적, 법적 문제는 무엇이 있을까.
강진호(모교 철학과 교수): AI의 등장과 급속한 발전은 인간의 본성이 과연 무엇이냐는 오래된 철학적 논제를 새롭게 제기하고 있다. 서양 철학의 고전적 전통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적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과 단지 다른 것이 아니라 우월하다. 인간이 다른 동물을 지배해온 것처럼 혹시 미래의 AI 또한 인간보다 더 우월한 이성적 능력에 의해 인간을 지배할 수 있지 않을까. 알파고가 인류에게 준 충격과 두려움의 근저엔 바로 이러한 생각이 깔려 있다.

앞으로 AI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성적 능력이 아닌 감성, 창의성, 상상력 같은 곳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을 찾아내고자 하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측하지만, 사실 이러한 경향은 잘못됐고 어떤 측면에서 매우 위험하다. AI시대에도 인간의 본질을 이성적 능력에서 찾는 접근이 여전히 유효하고 오히려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성적 능력의 핵심은 바로 반성적 능력, 즉 자신의 믿음과 욕구, 감정이 올바른지 반성하고 그 이유를 찾는 능력이다. 현재의 AI는 이러한 반성적 능력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어디에서도 그런 AI는 만들지 않는다. AI시대 인간과 기계의 진정한 공진화를 위해서는 인간다움의 본질을 이루는 반성적 능력을 우리가 적극 함양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혁신하고 사회문화 조건을 조성해야 한다.


김주한(모교 의학과 교수·의과대학 시스템바이오정보의학 센터장): AI, 빅데이터, 차세대시스템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두 가지라고 본다. 프라이버시와 디바이드(격차)다.

자동차산업을 예로 들면, 내연기관이 왜 갑자기 전기자동차로 바뀔까. 연료가 모자라지도 않고, 내연기관 성능이 전기보다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러나 환경에 대한 걱정이 있고 자율주행을 포함해 모든 게 전자화되는 등의 이슈가 있다. 이렇게 사회적인 걱정, 즉 이것을 통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지, 격차가 생기거나 환경에 문제가 생기는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새롭게 큰 산업이 만들어지는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만들어온 기술을 쫓아가는 게 아니라 이런 문제를 포괄적으로 보고, 미리 준비하고 필요한 기술과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더 크게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인공지능에 법 학습시키는 것이 과제

임 용(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대 AI정책 이니셔티브 공동디렉터): 법이나 제도 관점에서 인공지능에 대해 많이 우려하시는데, 인공지능은 지금까지 법 제도와 관련 인류를 괴롭힌 세 가지, ‘법 자체의 오류, 집행 과정의 왜곡, 실수를 포함한 오판’이라는 문제를 개선하고 좋은 미래를 구현할 잠재력이 있는 기술이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보장하려면 기술은 신뢰 가능(trustworthy)하고 그 결과가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acceptable)해야 하며, 법과 제도는 그 인공지능 기술의 목표들이 실현되도록 권능 부여형(enable)이 돼야 하고 실제로 준수 가능(workable)해야 할 것이다. 그 관점에서 법의 역할이 중요하다.

법 분야에서는 AI에게 어떻게 법을 학습시킬 것인지가 굉장히 큰 과제다. 또 지금은 AI에 대해 결과 중심적 사고를 많이 하는데 실제로 법이나 사회는 굉장히 절차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AI 기술 자체를 절차 중심으로 구현하는 게 기술적으로 큰 도전이 될 것 같다.


정리=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