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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호 2021년 8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AI 교육, 과목 만들고 시험 친다고 될 일인가

강태중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
 
 
AI 교육, 과목 만들고 시험 친다고 될 일인가

강태중
교육75-79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


인공지능은 초학문적 미래 문명
모든 교과 제대로 가르치는 게 먼저

 
AI(인공지능)가 미래의 대세다. 모두들 그렇게 이야기한다. 경제를 이야기하거나 문화를 이야기하거나 교육을 이야기하거나, ‘전문가’들이 한결같다.

그런 전망이 크게 틀릴 것 같지는 않다. 전문가들의 말이어서 신빙할 만하기도 하지만, AI라는 것이 결국 인류의 미래 문명에 함축될 수밖에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은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는 방향으로 발전해왔고 또 그렇게 발전해 갈 것이다. AI는 바로 그런 기술의 요체인 셈이다.

단순하게 보면, AI는 사람과 다름없는 기계를 만드는 기술이다. 인류는 필경 초인의 경지에 닿는 기계까지 만들 것이다. 그런 기계야말로 사람의 수고를 전폭적으로 덜어줄 것이고, 그런 기계를 개발할 동력은 인류가 걸어온 과학기술의 역사에 이미 들어있다.

지난 2016년 이른 봄, 우리는 ‘알파고’(AlphaGo)를 통해 AI의 위력을 가까이서 확인했다. 가장 지능적인 게임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는 바둑에서, AI는 세계 일인자를 물리쳤다. 설마 하던 사람들은 경악했고, 사건의 현장이었던 우리나라에선 충격이 더욱 컸다. ‘알파고 신드롬’이 번졌고, 머지않아 기계에게 밀려날 인류에 대한 걱정 소리가 한동안 언론을 장악했다. 미래의 ‘일자리’와 ‘먹거리’가 기계(AI)와 싸우는 데 달렸다며, 이길 방도를 위한 훈수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5년여가 흐른 지금, AI에 대한 관심과 우려는 더욱 확신에 차고 팽배해졌다. 그 사이에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유입돼 크게 유행하고 있고, 2030년까지 인간 직업의 47% 정도를 기계가 앗아갈 것이라는 논문도 무비판적으로 회자됐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자연스럽게 교육에 대한 비판과 충고로 이어지고 있다. 미래의 생존(또는 경쟁력)을 위해 학교교육에 근본적인 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교육이 본디 미래를 위한 국가사업이라는 점에서, 논의가 이렇게 흐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미래 교육에 대한 논의들은 너무 안이하고 부박하다. 학교교육 체제를 하나의 기계처럼 여기고, 일상적인 경험만으로도 교육을 재단하기에 충분한 것처럼 다룬다. 학교의 부품(요소) 하나를 갈아끼우면 교육이 확 달라질 것처럼 여기고, 가르치고 배우는 현상에 뭐 대수로울 게 있겠느냐는 듯이 가볍게 다룬다. 이런 경향에는 학식에 따른 차이도 없어 보인다. 한 유력 신문은 우리나라 최고 대학 총장님들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고 몇 주 전 보도했다.

“내년 대선 후보들은 AI 교육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어야 한다. 초·중·고교생들이 AI를 제대로 배우도록 교육과정 개편에 나서지 않으면, 20년 후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할 우려가 크다. … 현재 초등학교, 중학교 전체 수업 시수의 1% 이하인 정보 교육을 AI 시대에 걸맞게 대폭 확대하고, 대학 입시에도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와 같이 주장하기 전에 총장님들은 적어도 세 가지를 자문해보았어야 했다. 첫째, AI 교육이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어야 할까? 둘째, 교육 시간을 늘리고 대입에 반영하면 교육이 제대로 될까? 마지막으로, AI 교육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기만 할까?

총장님들도 잘 아실 거다. AI는 어떤 한 과목의 영역이 아니다. 그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는 철학(윤리)적인 안목이 필요할 것이고, 수학이나 과학을 중심으로 키울 수 있을 논리력이나 분석력은 물론, 인문과 예술의 상상력까지도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AI 교육을 위해서는 사실상 모든 교과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요구된다. 특히, 입시로 학생들을 책상에 붙잡아 앉힌다고 교육이 될 리 없다는 건 우리 교육사가 입증해 준다.

미래의 AI를 위해서는 우리 통념을 재고해야 한다. AI는 사람의 일을 빼앗아 간다고 으레 전제하지도 말고, 그 기술을 남(다른 나라)보다 빨리 선점해서, 따라올 혜택을 우리만 독점하는 게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 여기지도 말아야 한다. AI는 생계를 위한 일(labour)의 수고를 덜어주고, 우리가 바라는 일(work)을 더 즐길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그리고 AI가 증대시킬 소득은 개발자나 투자자에게 모두 귀속시킬 것만은 아니다. 커진 ‘파이’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나뉘도록 미래를 가꾸는 게 훨씬 더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 미래를 위해 우리는 물론 치열하게 AI 교육을 논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AI 과목을 만들고 입시에 반영하면서 공부 시간도 늘려야 할지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학교교육은 오히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 인류 역사가 정련시켜 온 교과 하나하나가 학교에서 좀 더 온전하게 가르쳐지도록, ‘정상화’를 제대로 추구하는 것이 AI 교육의 정도(正道)를 가는 것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