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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호 2019년 11월] 기고 에세이

인정받기보다 인정해 주길

양호승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본회 상임부회장


인정받기보다 인정해 주길


양호승
경제74-78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본회 상임부회장



면 소재지에서 더 들어가는 분교 출신인 나는 우리 7남매 중에서 유일하게 서울대학교에 다녔다. 도내에서 제일 간다는 중학교에 들어가지 못하였지만 지방 명문 고등학교를 거쳐서 멀고도 험한 오르막 길을 올라 서울대에 들어오게 되었다. 할아버지께서 훈장을 하셨으니 교육계에 종사하신 셈인데, 워낙 시골에 터를 잡고 계시는 바람에 그리 되었다. 그러니 서울대인이 된 것은 나의 인생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event) 중 하나이며, 우리 집안에도 그렇다.

반면 도청 소재지에서 자란 처가는 9남매 중 7남매가 서울대를 다녔다. 예로부터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고 했는데, 서울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청 소재지 정도는 보내 놓았어야 했나 보다. 지방대 출신인 둘째 처남과 둘째 처형의 아이큐가 제일 높았다는 것인데, 평소 양보심이 강한 두 분이 당시의 가정 형편을 생각하여 자진하여 지방대에 진학하였다. 나중에는 장인어른께서 사업에 크게 성공하셨으나 당시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때였기 때문이다.

두 분은 지금도 집안에 일이 있으면 발벗고 나서서 희생하신다. 처가 식구들에게 서울대에 간다는 것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두 분은 가정공동체를 배려하는 깊은 마음가짐으로 인하여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실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처가와 같은 기록은 나오기 힘들 것이다. 우선 7남매 이상을 낳을 가정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 지금은 태교부터 시작하여 온 가족이 자녀 교육에 전력투구를 한다. 입시제도도 저학년 때 방심하면 이후에는 만회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 70년대에 대학진학률은 20% 대였는데, 지금은 70% 대다. 지방 명문 고등학교가 사라져서 서울대 입학생의 서울 출신 집중도는 더 높아졌다.

그만큼 서울대를 들어가기가 우리 때보다 몇 배는 어려워졌다고 본다. 굳이 처가의 기록을 깨려고 한다면 이미 서울대에 들어간 학생 8명을 입양하면 형식상으로는 가능은 할 것이다.

물론 고시 패스나 취업도 더 어려워졌다. 지금 태어났다면 서울대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행정고시와 사법시험에 합격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판사로 임용되지도 못했을 것이고 대형 로펌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서울대생은 과거에 비하여 사회적 출신 구성이나 배경이 다소 다를 것이다. 그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서울대인이 공유하는 변하지 않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값싼 등록금에 방대한 시설에서 우수한 교수진의 가르침을 받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혜택을 입었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서울대인이라는 사실만으로 무시당하지 않고 어느 정도 인정받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평생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은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보상이다.

다음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갖는 영향력이다. 사회가 잘되거나 잘못되거나 아름다운 미담이거나 부정부패 소식이거나 거기에는 대부분 모교 출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회적 대립 구도에서는 쌍방이 모교 출신인 경우가 많다. 그만큼 각계에서 동문들이 긍정적인 면이든 부정적인 면이든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다만 내가 바라는 바는 이미 큰 혜택을 받은 서울대인은 사회에 그냥 단순한 영향력이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주는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정쟁을 해도 무언가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고대한다. 또 현재의 이권과 먹거리를 둘러싼 이전투구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역사의식으로 평가받는 서울대인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서울대인은 이미 인정받고 들어가기 때문에 자신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생각보다, 서울대인에게 부족하다고 보이고 둘째 처남과 둘째 처형 같은 비서울대인에게서 더 잘 나타나는 특질인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에 봉사하는 마음가짐까지 가진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