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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호 2019년 10월] 문화 전시안내

선조들이 돌에 새기고, 후세가 종이로 남기다

모교 박물관 기획 불후의 기록전

지난 10월 2일 박물관 불후의 기록전 관람객들이 광개토대왕비 탁본을 관람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모교 규장각과 박물관이 소장한 광개토대왕비 탁본 4점을 비롯해 모교 중앙도서관 소장 탁본과 동국대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 등 외부 기관의 희귀 탁본을 선보인다.

 
박물관 기획전
선조들이 돌에 새기고, 후세가 종이로 남기다
 
 
돌은 오랜 옛날부터 영원을 희구하는 이들의 주재료였다. 돌로 탑을 쌓고 무덤을 지었으며, 중요한 글과 그림 또한 돌 위에 새겼다. 금석(金石) 위에 종이를 대고 먹을 두드려 만드는 탁본은 이러한 영원성을 이어가고자 하는 수단이었다. 글씨를 감상하고 모방하려는 예술·교육 목적도 있었다. 이 욱(종교82-89)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칼럼 ‘종교문화 다시읽기’에서 ‘탑본(榻本 탁본의 유의어)은 카피를 통해 돌이 지닌 공간적 제약성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적 있다.
 
광개토대왕비와 진흥왕 순수비, 반구대 암각화, 성덕대왕 신종 등 사방에 흩어져 있고 시대를 달리 하는 금석문의 탁본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10월 2일 개막해 12월 7일까지 열리는 모교 박물관(관장 전봉희) 기획특별전 ‘불후의 기록’ 전이다. 금석문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불후’에서 제목을 따왔다.
 
전시는 모교 박물관과 중앙도서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범대학 등 교내 기관이 소장한 주요 탁본을 모았다. 동국대 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 등 교외 기관에서도 소장 탁본을 제공해 역사적 가치가 높은 탁본들을 한곳에 전시할 수 있게 됐다. 모교 규장각과 박물관이 각 2점씩 소장한 고구려 광개토대왕비 탁본 4점을 비롯해 태종무열왕릉비, 선사시대 울주대곡리반구대암각화 등 비석과 종명(鐘銘)의 실사 크기 탁본이 박물관 두 개층에 걸쳐 장대한 위용을 자랑한다. 학내 기관 사이에도 이동에 우려를 표했을 만큼 다루기 조심스러운 유물임을 생각하면 좀처럼 볼 수 없는 귀한 전시다.
 
 
모교 박물관 ‘불후의 기록’전
‘광개토대왕비’ 탁본 등
교내외 희귀 탁본 한 자리에
12월 7일까지 무료 개방
 
 
전임 관장으로 지난 8월까지 전시를 준비한 남동신 전 박물관장은 개막식에서 “2000년대 들어와 탁본에 대해 각 소장기관이 눈을 떴다”고 전시 배경을 설명했다. “모교에서 10년 전부터 기초조사를 하며 서울대에 희귀본과 유일본을 비롯한 좋은 탁본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연구 성과를 일반에도 공유하고 싶어 전시를 기획했다”는 설명이다.
 
박물관은 탁본들을 탁본된 시기가 아닌 원본 금석문을 기준으로 △선사시대: 문자의 여명 △삼국시대: 신성한 문자 △통일신라시대: 간절함은 예술이 되어 △고려시대: 구도(求道)의 자취 △조선시대: 청완(淸玩)에서 고증으로의 다섯 개 섹션으로 나눠 선보였다. 벽 양면 가득 울주대곡리반구대암각화(박물관 소장)와 울주천전리각석(동국대 박물관 소장) 탁본을 걸었다. 고래와 들짐승 형상의 숨은그림 찾는 재미가 쏠쏠하고, 울주천전리각석 탁본에서는 신라 법흥왕이 남기고 간 한자 명문을 볼 수 있다.
 
삼국시대 섹션에서는 단연 광개토대왕비 탁본이 눈길을 끈다. 고개를 한참 꺾어 봐야 할 만큼 스케일이 크다. 국내에 남은 몇 안되는 원석 탁본으로 몇 글자씩 책처럼 엮은 탁본첩 형태도 나란히 선보였다. “비를 그대로 찍어낸 족자 형식의 전탁본은 한번에 비의 크기와 규모를 볼 수 있어 좋고, 탁본첩은 비의 앞 뒤 옆면과 부가 정보까지 상세히 담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권주홍 학예사의 설명이다. 전시에서 가장 처음으로 보게 되는 ‘점제현신사비’는 한반도에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금석문으로 알려져 있다. 김명환 중앙도서관장은 “원본 비석들이 그동안 많이 마모됐는데 이번 전시의 탁본은 오래전에 만든 것이어서 최근에 탁본한 것들과 달리 매우 상태가 좋다”고 귀띔했다.
 
통일신라시대 불교 주제의 금석문과 국왕이 아닌 개인을 위한 비가 등장하기 시작한 흐름은 고려시대 고승들을 위한 기념비와 묘지명 제작으로 이어진다. 원효의 비인 ‘고선사서당화상비’는 미상이던 원효의 입적 시기를 알린 유물이다. 고려 전기 문신인 최사추 묘지명은 탁본 없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유물을 지난 8월에 제작한 탁본과 함께 전시했다.
 
 

위 사진 금석청완(조선 1680년대, 국립중앙박물관). 아래 왼쪽부터 태종무열왕릉비(통일신라 660년 이후, 모교 중앙도서관), 울주대곡리반구대암각화 세부(신석기 후기∼청동기, 모교 박물관), 성덕대왕 신종 비천상(통일신라 771년, 모교 박물관),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 일부(통일신라 8-9세기, 모교 중앙도서관).

 
 
조선시대 섹션의 키워드 ‘청완’은 조선 사대부들이 서재에 놓고 즐긴 문방사우와 고서, 금석 등을 뜻하는 말이다. 문인사대부들은 아름다운 글씨를 찾아 전란에서 살아남은 전국의 석문들을 탁본하고 이들을 엮어 금석첩을 펴냈다. 추사 김정희는 학문으로서 금석학을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오래 전 사라진 금석문을 발굴하는 데 매진한 추사는 진흥왕 순수비인 황초령비와 북한산비를 고증해내고 그 쾌거를 북한산비의 측면에 기록했다. 두 비의 탁본이 삼국시대 섹션이 아닌 조선시대 ‘청완’의 섹션에 자리한 이유다.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는 왜란으로 인해 파손된 하부의 글씨를 뒷면에 다시 새겼고 이를 필사해 탁본을 완성했다. 조선 후기의 비 중수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중앙도서관 소장 희귀본이다.
 
교내외 기관에서 다수의 희귀한 탁본이 모인 만큼 전시물마다 출처를 눈여겨보게 된다. 전봉희 관장은 개막식 인사말에서 “서울대 안에 이렇게 좋은 탁본이 많이 있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남동신 전 관장은 “박물관의 이름으로 열리는 전시회지만 중앙도서관과 규장각이 공동으로 전시한다는 의의가 있다. 동국대에서도 사전 조사 과정에서 사실상 처음 밖으로 나온 유물을 기꺼이 대여해줬다”며 참여 기관들에 감사를 전했다.
 
박물관은 “탁본을 통해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먹으로 나타난 글씨와 도상에서 탁본의 서예사 및 미술사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도를 전했다. 오전 11시 및 오후 3시 두 차례 전시 해설을 운영한다. 12월 7일까지, 오전 10시~오후 5시 운영하며 월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은 휴관. 무료. 문의: 02-880-8094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