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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호 2019년 9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일본 경제는 불황에서 벗어났다

동문 칼럼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

일본 경제는 불황에서 벗어났다


박상준(경제84-88) 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일본경제가 여전히 불황인 것으로 생각하는 한국인이 많지만, 일본에 관한 정보가 편파적으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미 불황에서 벗어났다. 지난 5년 동안 일본의 20대 인구는 60만명 감소했지만, 20대 정규직 취업자는 33만명 증가했다. 불황의 가장 큰 특징은 일자리의 감소이다. 정규직 취업자 수가 늘고 있는 나라의 경제가 불황이라는 것은, 따라서 어불성설이다. 


지난 30년 일본 사회의 변화를 보면 나는 중용의 가르침인 “집기양단, 용기중어민 (執其兩端, 用其中於民)”이 생각난다. “양 극단의 말을 잘 헤아려, 가장 적절한 것을 백성에게 쓴” 사람은 유교에서 이상적인 군주로 묘사하는 순임금이다. 권력의 중심이 군주가 아니라 일반 백성이 된 현대 사회에서, 중용의 덕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요구된다. 


내가 일본 생활을 시작한 1999년의 일본은 버블이 붕괴한 지 거의 10년이 다 되도록 부실채권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금융계는 좀비 기업에 대한 지원을 끊지 못하고 있었다. 좀비 기업이 망하면 그 기업에 대한 대출이 부실채권이 되고, 은행 경영진은 책임을 추궁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들은 이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은행의 도덕적 해이에 눈을 감았다. 칼을 들이댔다가 기업이 파산하면 실업자가 늘 것이고, 정치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는 서로 적당히 봐주고 감싸주는 일본식 온정의 극단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좀비 기업의 연명은 건강한 기업까지 병들게 하고 있었다.


부실채권이 처리되고 금융부문이 정상을 되찾은 것은 2001년 고이즈미 개혁이 시작되고 나서의 일이다. 고이즈미의 경제팀은 좀비 기업에 대한 지원을 끊고, 망할 기업은 망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의 문화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균등한 분배보다 효율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사원 비중이 급속히 올라갔고, 일본이 자랑하던 직업안정성이 노동유연성에 밀려 훼손되기 시작했다. 경제가 벼랑 끝으로 밀리던 2000년대 초의 일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개혁의 아픔을 두려워하고 여전히 과거의 관행에 사로잡혀 있던 결과, 금융에서 시작된 균열이 제조업으로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3년 아베노믹스가 시작될 때까지 일본기업은 10년 이상 임금을 거의 올리지 않았다. 여력이 없기도 했지만, 효율성 제고에는 노동비용의 절감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3년 아베노믹스를 시작하면서는 직업안정성과 임금 인상이 다시 화두가 되었다. 효율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직업·임금·노후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면서 소비가 위축되고,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되었다는 반성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고, 효율성과 안정성의 양 끝 가운데 어딘가에서 가장 적절한 중간 지점을 찾고 있다.


한국에는 지금도 효율성과 안정성의 양 끝만 잡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많은 직장인들이 60세를 채우지 못하고 직장을 떠나는 것이 현실인데도 기업 경영진 중에는 노동유연성의 제고만을 한국 경제의 최대 과제로 믿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반면, 노조 지도자 중에는 기업이 벼랑 끝에 서있어도 임금인상과 인력조정불가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효율성과 안정성 사이에서 중용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