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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호 2023년 5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서울대병원은 필수의료의 마지막 방파제다”

김영태 서울대병원장 인터뷰
“서울대병원은 필수의료의 마지막 방파제다”
 
김영태 (의학82-88) 
서울대병원장 



 
3월 15일 서울대병원 제19대 병원장에 김영태 동문이 취임했다. 김 동문은 부모, 누나, 부인, 두 자녀가 모두 의사다. 가족들이 모이면 의학 세미나 수준의 대화가 오갈 정도라고 한다. 현재 병원장실이 있는 대한외래 시계탑 건물은 어린 시절 부친 고 김종환(의학50-57) 모교 명예교수를 따라 드나들던 공간이다. 동문인 아들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다. 의료계, 서울대병원에 대한 애정과 책무가 그만큼 강할 수밖에 없다. 지난 5월 3일 만난 김 병원장은 조용한 말투로 필수의료 붕괴 위기 등 병원 현안에 대해 1시간에 걸쳐 소신을 밝혔다. 취임 기자간담회는 있었지만, 단독 인터뷰는 총동창신문이 처음이다. 

적정 수가, 의료사고 제도 보완 필요
어린이병원 인력풀 확대해 인재 양성
 
폐이식·폐암 분야 세계적 권위자
3대가 서울대학교병원 의사 
 
-취임사에서 ‘필수의료 붕괴 위기’를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의료 상황이 어떤지, 서울대병원 차원에서 어떤 대책을 추진해나갈 계획이십니까?
“제 전공인 흉부외과나 신경외과 지원자가 오래전부터 줄고 있고, 최근 소아과, 산부인과 지망생도 급격하게 줄고 있습니다. 소아과나 산부인과 지원자가 주는 것은 흉부외과, 신경외과 지원자가 주는 것보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동네에 소아과 의원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기초적인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이지요. 

서울대학교병원은 국가중앙병원이기 때문에 적자를 감수하고, 어린이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어린이병원은 아시아에서 1위입니다. 세계 최고의 의료 수준을 모두가 인정합니다만 어린이병원 특성상 환자를 보면 볼수록 적자 폭이 커집니다. 그럼에도 더 많은 투자를 해서 소아과, 산부인과를 전공하려는 의대생이 늘도록 하려 합니다. 이를 위해 어린이병원 전문의 인력풀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마침 대통령께서 오셔서 어린이병원 인력을 증원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도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사후보상 제도를 만들어서 적자를 보전해 주기로 했습니다. 일의 가치가 있고, 병원이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믿음이 있으면 우수한 인력들이 따라오리라 봅니다.

이와 더불어 서울대병원 교수 수도 늘려 필수 의료에 종사할 수 있는 길도 넓히려고 합니다. 필수 의료진은 야구에 비유하자면, 미국 메이저리그의 투수입니다. 젊은이들이 의사의 길로 들어섰다면 메이저리그 투수가 돼야겠다는 포부도 가졌으면 합니다.”  

-필수의료 활성화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는 어떤 정책을 추진해야 할까요?
“소아청소년과의 경우에는 의료수가가 현실화돼야 합니다. 아이들은 주사 한 번을 놓을 때도 어른보다 두 배 이상 힘이 듭니다. 또 아이들을 몇 명 낳지 않다 보니 부모님들의 마음이 지극합니다. 작은 의료사고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예를 들어 귀지를 빼다가 살짝 찔려 피가 나도 고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명감으로 왔던 의사들도 ‘이걸 계속해야 하나’ 자괴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걸 옆에서 본 후배, 동료들도 덩달아 영향을 받고요. 의료사고 문제, 적절한 수가 보장 등이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필수의료분야 이탈을 막을 수 있습니다.” 

-다른 선진국에서 의료사고로 형사처벌 하는 예가 있나요. 
“의도적으로 한 경우에는 당연히 형사처벌 대상이지만, 원인이 명확하지 않을 때, 형사처벌 한다는 것은 생각 못 하죠. 미국도 형사처벌은 매우 드물고요. 영국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어떻게 하면 어린이병원의 적자를 줄이면서도 효과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이 가능할까요?
“어린이병원뿐 아니라 우리 병원 전체가 적자입니다. 비영리기관이고, 국가중앙병원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병원은 교수진이나 의료진이 다른 의료기관에 비해 많습니다. 우리 할 일이 진료뿐 아니라, 교육, 연구, 공공활동도 많기 때문입니다. 진료에 100% 매진하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진료 인력으로만 100% 쓰는 병원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이병원은 더 심각하고요. 그러니 어느 대형병원도 어린이병원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서울대병원까지 안 할 수는 없죠. 국가중앙병원으로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밖에 서울대병원의 문제들이 있다면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해 나갈 계획이신지 포부를 들려주십시오. 
“문제점은 많죠. 일단 병원이 오래돼서 시설이 낙후돼 있습니다. 그리고 불친절하다는 지적도 받죠.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하다 보니까 환자들을 따뜻하게 대할 여유가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조직 문화를 어떻게 바꿀지가 숙제인데, 사실 병원에서 일한다는 게 힘들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축복받은 일이거든요. 환자를 치료하는 선한 직업이기 때문에, 자긍심이 줄어들지 않도록 보상해주고, 스스로 리마인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죠.”

-경기도 시흥의 배곧서울대병원과 서울 노원구 서울대병원 건립 계획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습니까? 그리고 서울대병원에서 대규모 의료시설을 새로 만드는 게 왜 필요한지요?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시흥 배곧의 경우 경인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병상이 무척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서울대 시흥캠퍼스도 있고 주변에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거든요. 의료 서비스 공급이라는 면에서 타당성을 인정받았지요.

두 번째는 서울대병원 전체 기능 측면에서 봐야 하는 게 있습니다. 혜화동 본원 외 분당 서울대병원이 있고 보라매병원과 교통재활병원 등은 위탁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또 소방병원이 완공되면 거기도 위탁 운영을 하게 되고요. 이러한 병원들이 있음으로써 병원 네트워크가 형성됩니다. 이 네트워크의 진료 데이터를 잘 살리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원은 희귀 난치성 질환 진료 병원으로, 분당 서울대병원은 최첨단 스마트 병원으로, 보라매병원은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진료하는 역할, 교통재활병원은 재활이 필요한 분들을 치료하고 있거든요. 각 병원의 데이터를 잘 축적, 활용하면 미래 병원의 모델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서울 노원구의 경우 산업계와 연계해 바이오 클러스터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이에 대해서 병원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다만, 예비타당성 조사도 해야하고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검토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의료정책 중 오랜 논란의 대상 중 하나인 원격의료에 대해서는.
“비용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언젠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런데 미국 메이요클리닉의 경우, 20년 전부터 원격진료를 연구해 왔는데, 아직 본격적으로 못 하고 있어요. 아직은 환자의 안전을 위해 보완해야 할 게 많다는 것이죠. 정밀한 의료 디바이스가 병원 모니터와 연결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전화 또는 온라인상 몇 마디 말과 영상만으로 진료를 보기에는 아직 위험이 많습니다. 빠른 속도로 개인별 의료 디바이스, 통신 등이 발전하고, 데이터가 쌓이다 보면 가까운 미래에 모니터를 보며 진료할 날이 올 겁니다.”  

-병원장님께서는 폐암 치료의 권위자이십니다. 공포의 대상인 폐암 치료와 관련해 환자들을 위한 조언을 구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무조건 담배를 끊어야 합니다. 담배를 피우면 반드시 폐암에 걸립니다. 두 번째는 흡연자 분들은 정기적으로 폐암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폐에 뭔가 생겼다 하면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그대로 따르면 됩니다. 우리나라가 폐암 치료 수준이 높고, 병원들이 평준화돼 있습니다. 어느 병원이든 믿고 맡기시면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의사가 된 동기는 어떻게 되시며, 만족하시는지요.
“부모님이 의사셔서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환자를 돌보고 고치는 삶이 좋아 보였어요. 그래서 의대를 들어왔고, 지금까지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좋은 일을 하고 그에 대해 존경도 받고요. 월급까지 주잖아요.”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셨나요? 대학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이런 답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는 공부만 했습니다.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건지, 공부만 하기도 벅차더라고요. 다른 활동할 엄두를 못 냈습니다. 수업을 한 번도 안 빼먹고 들었어요. 30분 지각 한번 한 게 전부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지요? 
“의사는 의료 지식에 있어서 누구한테도 부족하다는 소릴 들으면 안 된다 생각하고, 정말 지독하게 가르쳤습니다. 전공 의료 지식에 있어서는 완벽해야 한다고 다그쳤던 것 같습니다. 전공의 중에 술 마신 다음 날 컨퍼런스에 안 나오는 제자들한테는 반성문을 받았습니다(웃음).”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흉부외과 2년차 주치의 할 때 인턴이었습니다. 좀 엄하게 일을 시켜서 저를 미워한 줄 알았는데, 잘 따라오기는 했습니다. 적극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 사귀자고 했고, 친하게 됐죠. 지금 소아과 의사입니다.” 

-주변에서 보면 엄마 아빠가 모두 전문직일 경우에 자녀 교육에 쏟는 시간이 적어질 수밖에 없어 공부를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두 자녀를 모두 의사로 키우셨는데, 어떻게 교육을 시키셨습니까?
“공부하라고 압력을 안 준 게 더 좋은 거 같아요. 저도 스스로 공부를 했고, 자식들도 그렇게 한 것 같아요. 복이라고 생각해요. 교육 경쟁이 덜한 강북에 산 것도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가끔 헬스장에서 스트레칭 수준의 운동을 합니다. 무거운 것을 드는 운동은 안 하고요. 트레이너가 몇 번 시켜보더니 저는 무리한 운동보다는 스트레칭 이나 하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나쁜 음식 안 먹고, 술도 최소한으로만 마시고, 규칙적으로 잘 자는 게 건강에 중요한 것 같아요. 정기 건강검진도 잊지 마시고요.”

-마지막으로 병원장님 인생에 나침반 역할을 해준 것은 무엇인지요? 
“막연하지만, ‘올바른 삶을 살자’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올바르게 살면 행복해지는 것 같고요.” 
정리=김남주 기자 
 
대담 : 오정환 (공법83-87) MBC 부장·본지 논설위원


김 동문은
 
이영균 병원장 이후 37년 만에 나온 흉부외과 출신 병원장이다. 폐이식과 폐암 분야 세계적인 권위자로, 지난 2007년 폐기능 소실 환자를 대상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에크모(ECMO, 체외산소공급) 연계 폐이식에 성공했다. 지난 2017년에는 2세 미만 영유아 폐이식에 성공했으며 2018년에는 성인 폐를 소아 환자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폐암 관련 연구논문도 수백편 발표했으며 폐암 표적치료와 면역치료, 수술을 병합하는 다학제 진료로 치료 성과를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아시아흉부심장혈관학회(ATCSA) 조직위원회 사무차장, 세계최소침습흉부외과학회(ISMICS) 이사, 대한흉부외과 국제교류위원, 대한암학회 이사, 대한폐암학회 이사장 등을 맡은 바 있으며 현재 세계폐암학회(IASLC) 아시아 대표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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