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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호 2023년 1월] 뉴스 기획

개원 1주년 국가미래전략원, 서울대 교수의 사회 기여 욕구 담은 ‘용광로’

국가미래전략원 개원 1주년

국가미래전략원은 다양한 협업을 통해 강연·대담·포럼 등 학술행사를 활발히 개최한다.


서울대 교수의 사회 기여 욕구 담은 ‘용광로’
 
국가미래전략원 개원 1주년
 
작년 한 해만 23차례 학술행사
융복합 정책 ‘싱크탱크’ 자임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눈 들어 冠岳을 보게 하라’

정희성(국문64-68) 시인이 1971년 대학신문에 발표한 시 ‘여기 타오르는 빛의 聖殿이’의 일부다. 워낙 유명해 서울대 동문에겐 물론 우리 국민에게도 익숙한 구절이다. 반세기 동안 시대는 변했고 일각에선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모교에 거는 기대가 특별하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더욱 치열해진 기술 경쟁과 분열하는 국제 협력, 고령화 및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위기와 성별·세대별 갈등, 인간 문명의 한계를 꼬집은 코로나19 팬데믹까지. 허공을 딛고 걷는 것 같은 막막한 현실 속에서 2022년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하 전략원)이 출범했다. 오는 2월 24일 개원 1주년을 맞는 전략원을 지난해 12월 28일 둘러보고 김병연(경제81-85) 원장과 만나 인터뷰했다.
 
2016년 시작된 국가정책포럼이 시초
모교가 국가정책의 조력자 역할을 자임하면서 여러 활동을 한 건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회 국가정책포럼이 시작이었다. 학계의 논의가 과연 실제 정책에 반영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불식시키려는 듯 당시 박원순(SGS 9기)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 원희룡(공법82-89) 제주지사 등 유력 정치인이 대거 참석했었다. 이후에도 국가 핵심 의제와 관련해 꾸준히 공론의 장을 열었지만, 단발성 이벤트 라는 한계를 벗어나긴 힘들었다. 

2019년 국가전략위원회(이하 위원회)로 거듭났을 때에도 논의할 주제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발전적 형태를 띠긴 했으나 사회적 과제를 이슈화해 밀고 당길 수 있는 제도화된 프로세스의 필요성은 여전했다.

이에 2020년, 오세정(물리71-75) 총장은 올해 2월 차기 총장에 취임하는 유홍림(정치80-84) 사회대학장에게 정책 싱크탱크 설립 방안의 연구 책임을 맡겼다. 김병연 현 원장은 연구팀의 자문위원장을 맡았고 이어 이를 제도화하는 절차를 추진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국가미래전략원. 반기문(외교63-70) 제8대 유엔사무총장이 서울대 초빙석좌교수 및 명예원장을 맡아 함께 이끌고 있다. 위원회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5년 동안 20차례의 포럼 개최와 더불어 2021년 10월 ‘코리아리포트 2022: 다음 정부의 길’을 발간한 반면 전략원은 출범 후 1년 동안 포럼·강연·토론회 등 총 23차례의 학술행사를 개최해 더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 초청 강연 및 대담, 에드윈 J. 퓰너 헤리티지 재단 아시아연구센터 회장 초청 토론회 등 전략원 단독 학술행사뿐 아니라 제도와 생활 속 민주주의에 대해 연구·교육하는 ‘민주주의 클러스터’, 방역을 비롯해 감염병이 사회 전체에 끼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팬데믹 클러스터’, 기술 주권의 지속적 확산과 과학 인재 양성을 연구하는 ‘과학과 기술의 미래 클러스터’, 경제안보지수를 개발하고 현황을 분석하는 ‘경제안보 클러스터’,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 감소 문제에 대비하는 ‘인구 클러스터’, 미중 갈등을 축으로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의 대응 전략을 연구하는 ‘글로벌 한국 클러스터’ 등 6개 하위 클러스터의 활약이 더해진 것이 비결이다.

유홍림 차기 총장, 클러스터장 역임
이들 클러스터는 위원회 때 발간한 코리아리포트 2022의 주요 내용과 유홍림 학장이 전략원의 설계도를 그릴 때 제안한 연구 주제 중 서로 겹치는 분야를 대상으로 공청회와 운영위원회를 거쳐 선정했다. 클러스터의 장을 뽑는 과정도 흥미진진하다. 해당 분야의 뛰어난 전문가이지만 클러스터엔 참여 의사가 없는 교수에게 의뢰, 클러스터장 후보를 3순위까지 추천받아 1순위부터 차례로 접촉했다. 일각에선 교수 본연의 책무인 연구와 교육만으로 바쁜 서울대 교수들이 과연 참여할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 그러나 6개 클러스터장 대부분 1순위에서 선임됐으며, 클러스터별로 평균 7명 이상씩 총 40여 명의 모교 교수들이 전략원 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김병연 원장은 “서울대 교수들이 칼럼을 쓰거나 인터뷰를 하는 등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자신의 지식과 연구를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어떤 목마름 같은 게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모교 교수들 또한 국민과 소통하고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통로 역할을 전략원에 기대하는 셈. 김 원장은 또 “서울대 역사상 이렇게 활발히 외부와 소통하는 건 드문 일 같다”고 덧붙였다. 작년 2월 개원식 직후부터 국내 주요 일간지에서 협력을 제안해 왔다고.

“전략원 운영의 대원칙은 서울대의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는 동시에 학외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입니다. 전략원 차원에서 주최했던 학술행사는 중앙일보와 조선일보가 많이 보도했고, 민주주의 클러스터는 SBS D포럼과 함께 ‘다시쓰는 민주주의’란 주제로 생방송을 했죠. 감염병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중앙일보는 팬데믹클러스터와 협력해 5회에 걸쳐 전면 기획기사를 실었고요. 인구문제 클러스터는 동아일보와 포럼을 진행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미래 클러스터는 한국고등교육재단과 협력해 응용공학의 메카인 독일 프라운호퍼와 업무협약을 맺었고요. 글로벌 한국 클러스터는 최근 일본 전문가 및 기관들과 현지에서 밀도 있는 회의를 했습니다. 서울대란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동시에 외부 기관과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고 있죠.”
 
언론·연구재단과 종횡무진 ‘콜라보’
연구의 독립성을 위해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연구용역은 일절 받지 않는 국가미래전략원. 그러나 경제안보 클러스터는 국가의 요구와 학내의 판단이 일치해 출범한 케이스다. 현재는 국제질서가 요동치면서 경제가 무기화되는 시점이자, 경제와 안보가 융합하는 시점. 윤석열 정부 들어 경제안보가 강조되면서 탄력을 받았다. 데이터 분석으로 위험을 최소화하는 정량분석팀과 전직 외교부 인사들이 획득한 지식을 자료화하는 정성분석팀으로 구성돼 향후 경제안보 상황을 평가하는 지수를 개발, 공개함으로써 정부와 기업의 효과적인 대응에 기여할 방침이다.
전략원은 항구적 사회과제를 긴 호흡으로 연구하는 동시에 조직의 유연성을 특징으로 한다. 전략원이 상부로서 하위 클러스터를 지원하지만, 그렇다고 원장이 클러스터장의 상관은 아니다. 각 클러스터는 3년 이상 독립적·자율적으로 활동하며, 즉시적 일시적 과제에 대해선 태스크포스(이하 TF)를 구성해 운용한다. 미국·중국·러시아·북한 등 주변국 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활동 중인 ‘4대 지정학 TF’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인류가 맞닥뜨리는 과제는 모두 융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문은 여전히 분절적 성격을 띠고 있어요. 각 클러스터는 고유의 주제로 나뉘었을 뿐 다양한 학문 분야의 전문가를 두루 포섭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만 해도 경제·교육·노인·인권 등 사회 전체에 끼치는 영향이 막대하잖아요. 방역 전문가들만 모여 결정한 정책은 적절한 대응이 아닐 가능성이 크죠. 많은 국가에서 방역을 위해 전국적으로 휴교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는 게 밝혀지고 있습니다. 외려 학력 격차는 더 커졌고요. 전략원이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매뉴얼을 개발해 제2, 제3의 코로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기여할 것입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고요.”
나경태 기자



인터뷰

“연구 독립성, 재정 독립성에 비례…동문들 성원 기다립니다”


김병연
경제81-85
국가미래전략원장
모교 경제학부 교수
 
김병연 원장은 국가미래전략원(이하 전략원)의 전신인 국가정책포럼 때부터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다. 주요 일간지에 칼럼을 게재하고 통일평화연구원장을 맡는 등 다양한 경험을 두루 갖춰 전략원이 학외 기관과 왕성한 협력을 도모하는 데 필요한 최적임자로 꼽힌다.

-전략원이 곧 출범 1주년을 맞는다.
“2021년 11월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원장으로 부임했고, 2022년 1월 처음으로 원장 직함으로 일간지에 칼럼을 썼다. 다음 날 바로 청와대 고위인사가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정부 부처가 서로 협력해서 대처해야 할 사회 문제들이 마구 들이닥치는데 아직도 교육부 따로, 외교부 따로… 분절적으로 정책 방안을 갖고 올라온다고 하더라. 정부서도 필요성을 통감하고 있던 차에 서울대가 융복합적 정책 연구를 하겠다니 고맙다고 했다.”

-그동안의 성과를 꼽는다면.
“각 클러스터의 주제별로 기본적인 연구 성과를 축적하고 그 중요성에 대해 여론을 환기한 게 가장 큰 성과가 아니었나 싶다. 2000명이 넘는 모교 교수들의 지식을 종횡으로 엮어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훌륭한 정책을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국가정책위원회의 활동에 비해 ‘서울대’란 경계가 흐릿해진 인상을 받는다.
“어느 정도는 의도한 바다. 서울대 자원뿐 아니라 학외 자원 또한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는데 서울대라는 울타리를 고집하는 게 과연 옳겠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결과다. 마치 섬처럼 독립된 덕분에 사회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학문적 탁월성을 일궜지만, 또 한편으론 그 탁월한 학문적 업적이 국가 발전에 얼마나 쓰였는가에 대해선 자신하기 어렵다. 서울대가 거의 모든 학문 분야를 포괄하는 동시에 지적 수월성을 달성하기도 했지만, 모든 것, 예를 들면 사회와의 소통 같은 것까지 잘하는 기관은 아니지 않나. 그런 측면에서 특히 언론과의 협업이 많았다.”

-민주주의 클러스터장인 유홍림 교수가 곧 모교 총장에 취임한다.
“전략원은 본부 산하에 있지만, 독립적 상설기구다. 총장 후보 중 누가 됐든 크게 영향을 받진 않을 거라고 본다. 총장 후보 모두 전략원의 필요성엔 다들 공감하실 터인데, 유홍림 차기 총장은 전략원의 설계도를 그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선출 과정에서 누차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의 역할을 강조하셨으니 전략원을 열심히 지원해 주실 것 같다.”

-전략원이 국가 발전에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국민 개개인의 역량이 향상된 것에 비해 국가의 정책이나 시스템은 이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은 손쉽게 정치인 욕을 하지만 그런 정치인을 뽑은 건 대중이다. 바람직한 정책 방향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고 이는 어느 정도의 지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금까지 전략원이 대중의 관심을 환기했다면 이제부턴 상식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할 방침이다. 국민들로 하여금 좋은 정책, 좋은 정치인을 알아보는 안목을 기르게 돕는다면, 아래서 위로 차근차근 올라가 좋은 정책으로 실현될 것이다. 물론 정책결정자와 국회와의 소통에도 집중할 것이다.”

-끝으로 동문들에게 한 말씀.
“전략원은 관악캠퍼스 내 우석경제관 4층에 있다. 이곳의 건립 비용 대부분을 성기학(무역66-70) 영원무역 회장님, 그리고 동문 여러분의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우선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다. 연구의 독립성은 재정의 독립성과 비례한다. 좋은 연구와 정책 성과로 보답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